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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부] 예수님이 말씀하신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는 누구일까?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복선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01 조회수7,044 추천수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일까? 에 이어진 글입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신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는 누구일까?



 

 

마태복음 23,35와 루카복음 11,51를 보겠습니다.


마태 23,35

루카 11,51

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마태오: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 / “루카: 즈카르야는 동일인 일까?


 

* 같은 장소에서 순교한 사건을 다룬 두 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데칼코마니 같은 문장중에서

단 하나의 다른 점은


 

루카11,51 에서는 즈카르야라고 나와 있고, 마태 23,35에서는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라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즈카르야는 베레크야의 아들이라는 것.

, 즈카르야의 아버지의 이름이 베레크야라는 가계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 이름과 관련하여 이와 비슷한 사례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른 복음에서는 이름없이 사람에 대한 묘사만 나오거나 짧은 이름으로 나오지만, 한복음서에만 특별히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시몬 시몬 바르요나 (마태 16,17)

- 바라빠 예수 바라빠 (마태 27,17)

- 예리코의 눈먼 이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 (마르 10,46)

- 빌라도 본시오 빌라도(루카 3,1)

- 나르드 향유를 부은 어떤 여자 마리아 (요한 12,3)

- 귀 잘린 대사제의 종 말코스 (요한 18,10)

 

 



이런 사례들을 비추어 봐도,

같은 장소에서 순교한 사건을 다룬 두 복음서에서

루카: ‘즈카르야마태오: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라고 나온 성경 말씀을 의심의 여지없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 본론으로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살해당한 즈카르야는 누구일까요?


 

 

자료실에서 즈카르야를 찾아보았습니다.


   ▶즈카르야(11.5)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명 즈카르야(Zachary)
축일 11월 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약인물, 예언자, 사제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가리야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이던 성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카르야)는 마리아의 사촌인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의 남편이다. 그는 아비야 반에 속하는 제관으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며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았다. 그의 차례가 되어 분향하는 직책을 수행하던 중에 천사의 발현으로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의 탄생 예고를 들었다. 그는 이 사실을 의심함으로써 벙어리로 지냈고, 요한의 탄생 이후에 그의 혀가 풀렸다(루카 1장 참조). 전승에 의하면 그는 세례자 요한이 있는 곳을 대라는 헤로데의 명을 거절했기 때문에 성전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해온다.


 





엘리사벳의 남편이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르야는

전승에 의하면 그는 세례자 요한이 있는 곳을 대라는 헤로데의 명을 거절했기 때문에 성전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해온다.고 합니다.






 

 

어느 전승에서 그런 내용이 전해져 내려올까요?

 


성경자료실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성경] 성서 외경 문학
작성자   주호식(jpatrick쪽지 번  호   756
작성일   2004-11-20 오후 11:27:41 조회수   1710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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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
성서 외경


(전략)


그외 다른 복음서들은 4개의 정전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들, 특히 예수의 어린시절과 부활후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복음서들의 특징을 다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운 일이므로 여기에 몇가지 흥미있는 부분들을 소개하겠다.
 
2세기에 저술된 {야고버 원(元) 복음}은 마리아의 유년시절,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예수의 탄생 및 소년시절 등을 전해주는 복음이다. 24장으로 구성된 이 복음은 원래 세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이 하나로 편집된 것이다. 제1부(1-16장)는 마리아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마리아가 두살때에 이미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였다고 하며, 또한 마리아의 부모 안나와 요아킴에 대해서도 전한다. 제2부(7-21장)는 {요셉의 비밀}이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조배에 대해, 제3부(22-24장)는 무죄한 어린이들과 즈가리아의 순교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 복음의 저자는 유대인계 그리스도인으로 성모 마리아의 평생동정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 복음}은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소년 예수가 행한 여러가지 기적들을 우화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의 양(養) 아버지 요셉의 생애와 죽음에 관해 전하는 {목수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수께서 요셉의 임종을 도우시면서 그의 공덕을 치하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에 교회는 요셉 성인을 임종자의 주보로 정하고 있다.


(후략)



 

 



2세기에 저술된 야고보 원복음에 무죄한 어린이들과 즈카르야의 순교에 대해 전하고 있다.”합니다.






 

 

구글에서 야고보 원복음을 찾아 즈카르야의 살해 부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전략)

 

엘리사벳도 자기 아들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숨길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으슥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신음하며 , 주님의 산이여, 아기와 나를 받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엘리사벳은 산을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산이 즉시 쪼개지고 그들을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주려고 천사가 나타났다.

요한을 찾던 헤로데가 하인들을 제단에서 봉사하고 있던 즈카르야에게 보내서 네 아들을 어디 숨겼느냐?”라고 추궁했다.

즈카르야가 나는 하느님의 사제이자 제단에서 일하는 종인데, 아들이 어디 있는지를 어떻게 안단 말이오?”라고 대꾸했다.

하인들이 돌아가서 경과를 보고하자, 헤로데가 격분하여 그 자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하인들을 보내서 네 아들이 어디 있는지 솔직하게 말하라. 네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너도 잘 알지 않느냐?”라고 전하게 했다.

하인들이 명령을 이행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나는 하느님의 순교자요. 그가 내 피를 보겠다면, 주님께서 내 영혼을 받아주실 것이오.

게다가 당신들은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다는 것을 아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성전과 제단의 입구, 즉 구획을 가르는 곳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백성들은 그가 살해되었을 때 그 사실을 몰랐다.

인사를 하는 시간에 사제들이 성전에 들어갔는데도 즈카르야가 관례에 따라 그들을 만나서 축복해주지 않았다.

사제들이 계속해서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즈카르야가 나오지 않자, 한 사제가 제단이 있는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 땅바닥에 피가 응고된 것을 보았다.

즈카르야는 살해되었다. 그 피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의 피를 씻어내지 말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사제가 두려움에 떨면서 밖으로 나와 보고 들은 대로 알렸다. 사제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사실을 확인하였다.

 

(후략)





야고보 원복음서에서는 즈카르야는 성전과 제단의 입구, 즉 구획을 가르는 곳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고 나와 있습니다.


 

이 전승에서는 마태오복음 2335절과 루카복음 1151절에 나와 있는 그대로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성전과 제단의 입구, 즉 구획을 가르는 곳 근처에서’.

살해되었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성지 아인 카렘에 있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에 가면 야고보 원복음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 김상원 신부님의 이스라엘 성지 순례기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 했습니다.

(출처: http://blog.daum.net/jjuba52/13801310)








실재하는 이스라엘 성지 아인 카렘에 있는 성당의 벽화에서도 위경인 야고보 복음서의 내용이 전승으로 내려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   성당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사진들







야고보 원복음서의 전승이 실제로 이스라엘에 있는 성지에서 벽화와 유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  굿뉴스 자료실에서 가져온 또 다른 자료 입니다




[이스라엘] 아인 카림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 즈카르야의 노래
작성자   주호식(jpatrick)  쪽지 번  호   355
작성일   2007-10-15 오후 4:36:40 조회수   245 추천수   0
  세례자요한탄생기념성당_즈카르야의노래_SH101533.JPG  [738107]
  세례자요한탄생기념성당_즈카르야의노래_SH101534.JPG  [868259]
아인 카림에 있는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 한 쪽 벽면에 여러 나라 말로 쓰여진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물론 한국어도 있습니다. ‘포도밭의 샘’이란 의미를 지닌 엔 케렘(히브리어) 또는 아인 카림(아랍어)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로부터 서쪽으로 대략 8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아인 카림은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으로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과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중략)

아인 카림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 ‘주님의 선구자’ 나신 자연동굴
 
예루살렘 남서쪽 유대 도시 아인 카림은 동정 마리아가 석녀로 알려졌던 엘리사벳(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 늘그막에 은총으로 잉태한 사실을 알고 찾아갔던 성모님 방문 성당과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으로 유명한 성지이다. 지난주에 소개한 성모님 방문 성당은
즈카리아(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와 엘리사벳의 여름집이 있던 곳에 세워진 교회로 여기에서 엘리사벳과 요한 모자가 헤로데의 박해를 피한 기적의 바위를 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의 잉태 고향(출생지)이다. 매년 로마가톨릭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 동안 그리스도에 앞서 태어나, 그분의 길을 닦다가 순교한 세례자 요한의 소리를 듣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세례자 요한 탄생일(6월 24일), 수난(8월 29일), 잉태일(9월 24일) 등을 축일로 지내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 세례자 요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예수 친히 “여자의 몸에서 난 사람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없다”고 했던 세례자 요한의 태생지를 찾는 순례객은 오늘도 줄을 잇는다.
 
세례자 요한은 즈카리아와 성녀 엘리사벳의 사이에서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동정 마리아의 수태고지와 마찬가지로 요한도 천사의 탄생 예고를 통하여 늦둥이로 태어났다. 요한이 태어날 당시, 아버지 즈카리아는 불신한 벌로 일시적인 벙어리 상태였다. 이때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자, 즈카리아의 집안에서는 즈카리아라고 해야 한다, 아니다 하며 의견이 대립됐다. 이를 본 즈카리아가 석필로 이름을 썼다. ‘Johannes(요한)’. 이렇게 명명된 아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세례자 요한은 생후 6개월 만에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당시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를 통해 구세주가 태어났음을 알게 된 헤로데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는 대박해를 가할 때, 또래인 요한도 죽을 위기에 처했다. 엘리사벳의 품에 안긴 요한은 더 이상 도망길을 찾지 못한 채 큰 바위에 가로막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엘리사벳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 안에 피신한 요한 모자는 화를 면했다. 이 얘기가 바로 성모님 방문성당에 있는 기적의 바위에 얽힌 전승이다.
 
 (후략)





성지(聖地)는 성전(聖傳)의 내용을 확인해 주고 있고, 성전(聖傳)은 성경(聖經)의 내용을 보완해주고 있음에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얻은 저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마태오 2335절에서 언급하신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 루카 11,51에서 언급하신 즈카르야는 역대기하 24,20-22에 언급된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아닌,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리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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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제가 자료를 찾아 다니며 느낀 점이 있는데,  바로 성전(聖傳)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신교 사이트에서 본 자료들은 모두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죽은 즈카르야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며, 성경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럴 듯한 논리를 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개신교 자료 몇 가지 예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23:35)?


분명히 구약성경에 "역사적으로" 마지막으로 순교한 사람은 우리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아벨의 피로부터 우리야의 피까지"가 아니라,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라고 하실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수님 당시 히브리 성경의 순서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야 대신에 사가랴를 언급하신 것은 예수님 당시의 구약 히브리어 성경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과 책의 배열 순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략)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의로운 피를 언급하실 때, 역사적인 연대기 순을 따라 말씀하시지 않고, 성경책에 기록된 순교자들의 순서를 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88&page=14)


<즈카르야에 관련된 다른 자료들 >


*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35)

http://allakro.org/?mid=sub_03_06_02&page=26&document_srl=4344


* 아벨, 사가랴(35) / 아벨은 인류 최초의 피살자이며(4/8), 사가랴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순교자였다(대하 24/20-22).

http://www.peacech.com/xe/index.php?document_srl=58933&mid=board_calendar


* 예수께서 마태 23:35에서 (그리고 누 11:50, 51에서) 하신 말씀

http://wol.jw.org/ko/wol/d/r8/lp-ko/1200000880


*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는 ?

http://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59&wr_id=180&sfl=wr_9&stx=complete


*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는 마지막 순교자인가?

http://revsuh.blogspot.kr/2006/08/blog-post_12.html

 

 

 







 위의 자료들에 나오듯, 자신들의 논리를 펼수 밖에 없는 이유는,

프로테스탄트측(개신교)에선 성전(聖傳)을 인정하지 않기에, 성경을 이해하기에 꼭 필요한 성전과 성경의 연결고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성경에서만 근거를 찾으려 하다보니,  마태오 23,35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살해당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를  (같은 이름인 즈카르야 중에, 성전에서 비슷하게 죽었다고 하여) '성전뜰에서 돌에 맞아 죽은'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로 몰아가는 우(愚)를 범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성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논리를  성전처럼 이어가는 형국이 된 것이지요.


 오직 성경! 만을 외치는 그들이지만, 막상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었던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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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우리가 지닌 풍부한 영적 자산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가톨릭 교리서에 나와 있는 성전과 성경과의 관계를 올립니다.




 

II. 성전과 성경의 관계


   하나의 공통적 원천


  80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46) 이 둘은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신비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81 “성경은 성령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47)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48)


   사도전승과 교회 전승들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이것으로 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분은 의견을 주시면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수정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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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복선 (lbs)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같은 맥락의 글이라 [1부]와 [2부]를 같은 곳에 모았습니다. 웬일인지 2부글의 모든 버튼이 먹히질 않는군요. 제목도 2부 제목으로 수정하고 싶고, 전에 올렸던 글도 삭제하고 싶은데... 굿뉴스에서 해결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2014-08-01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제가 [2부]로 올린 글에 문제가 있나 봅니다. 모든 버튼이 작동이 안되고 있습니다. 추천/반대는 물론, 수정이나 삭제도 안되는군요. 굿뉴스에 문의하니 답변이 오기를...제가 인용한 글 중에 특정한 스크립트가 있어서 버튼이 안먹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답변할 내용이 길어서 댓글로 달기에는 벅차서 답변글로 따로 올리고 싶었으나 모든 버튼이 작동이 안되어 불가능하더군요. 그나마 댓글 영역은 문제가 없기에, 질문 댓글마다 저의 답변 댓글을 달았으니 양해 바랍니다.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올려 주신 자료 잘 읽어 보았습니다.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를 칭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자료들을 공부해 보니 "베레크야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무렵에 활약한 예언자 즈카르야의 아버지였다. 23,35에선 두 즈카르야를 혼동했음이 분명하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참조) 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신약성경에서 인용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구절들은 주로 구약성경에 나온 구절들이나 인물들로 알고 있기에 교회의 공식 입장은 어떤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일단 한님성서 연구소에 질문을 넣어보았습니다.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아버지가 베레크야라는 단서가 어디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이정임님의 질문에 감사 드리며 답변 드리겠습니다. *[괄호] 부분은 이정임님의 질문입니다. [주해서에서 "베레크야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무렵에 활약한 예언자 즈카르야의 아버지였다. 23,35에선 두 즈카르야를 혼동했음이 분명하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참조) 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 많은 주석서에서, 두 즈카르야중 한 즈카르야는 이름이 같은데 시대상황으로 보나 순교했다는 말이 없으니 그 분은 아니고, 또 한 즈카르야는 성전부근에서 죽음을 당해서 유사하기는 한데 아버지 이름이 다르니, 두 즈카르야를 혼동했다고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언급하신 그 즈카르야를 두 분중에서만 찾으려 하니 그런 답이 나오는 것이지요. 저는 예수님이 언급하신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는, 그 두분중에 한 분이 아니라 제3의 즈카르야에서 찾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이어집니다.) 야고보의 원복음서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 요한을 찾던 헤로데가 하인들을 제단에서 봉사하고 있던 즈카르야에게 보내서 “네 아들을 어디 숨겼느냐?”라고 추궁했다. 즈카르야가 “나는 하느님의 사제이자 제단에서 일하는 종인데, 아들이 어디 있는지를 어떻게 안단 말이오?”라고 대꾸했다. 하인들이 돌아가서 경과를 보고하자, 헤로데가 격분하여 “그 자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하인들을 보내서 “네 아들이 어디 있는지 솔직하게 말하라. 네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너도 잘 알지 않느냐?”라고 전하게 했다. 하인들이 명령을 이행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나는 하느님의 순교자요. 그가 내 피를 보겠다면, 주님께서 내 영혼을 받아주실 것이오. 게다가 당신들은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다는 것을 아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성전과 제단의 입구, 즉 구획을 가르는 곳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 .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이어집니다) 아래 네 가지 말씀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전승 :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전과 제단의 입구, 즉 구획을 가르는 곳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2) 마태 23,35 :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당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 (3) 루카 11,51 :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간 즈카르야.” --- (4) 2역대 24,21 : "주님의 집 뜰에서 돌을 던져 죽임 당한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 (많은 주석서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분) 저는 (1), (2), (3) 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 그리고 성경과 성전을 통해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다면은 루카복음사가는 왜 즈카르야의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멸망한 즈카르야의 피, 그러면 바로 2역대 24,20-22의 그 즈카르야를 바로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 모세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 그리고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을 꾸짖으시는 장면이므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보다 2역대 24,20-22의 그 즈카르야가 그들에게 더 많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그리고 저는 그렇다면은 루카복음사가는 왜 즈카르야의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멸망한 즈카르야의 피, 그러면 바로 2역대 24,20-22의 그 즈카르야를 바로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 모세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 ===▶ 이는 이정임님 생각이십니다. 과연 이정임님 말씀처럼, 그당시 사람들이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멸망한 즈카르야의 피.' 그러면 여호야다의 아들 그 즈카르야를 떠올렸을까요? 성전이 여염집도 아니고, 드넓은 성전에서 죽었다고 하여 다 같은 장소가 아닙니다. '성소와 제단 사이' 라고 하면, 성전의 중심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분명히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그 장소-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죽었다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때 그 즈카르야를 떠올렸겠지만, 그가 거기서 죽었지 않았다면, 그 장소에서 죽은 다른 즈카르야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 이어집니다) 저는 신구약을 통틀어서 돌에 맞아 죽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구절들을 일일이 전수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런 구절안에는 한결같이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죽은 방식인 "돌에 던져 죽임-석형"을 뜻하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언급하신 즈카르야가 죽어간 구절(마태23,35와 루카11,51)에는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석형당할 때 사용된 단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언급하신 즈카르야와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다른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임을 당한 장소도 달랐고, 다른 죽음을 당한 인물이니 그 두 즈카르야는 동일인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을 꾸짖으시는 장면이므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보다 2역대 24,20-22의 그 즈카르야가 그들에게 더 많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까요? ] ===▶ 비유를 들 때에는 말의 맥락에 맞춰서 하는 것이지 더 알려져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역대기하 24,18-21을 보면,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을때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하다가 요아스왕의 명령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고, 마태 2,16과 전승인 야고보 원복음서 23장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현세의 왕위에 위협을 느낀 헤로데의 명령에 의해 죽어간 인물입니다. 마태 2,3-4을 보면, 유다인의 임금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의 말에 깜짝 놀라, 헤로데는 수석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메시아가 태어난 곳을 물어 보고 그들은 예언서에 나타난 것을 알려 줍니다. 즉, 그들은 헤로데가 무죄한 피를 흘리도록 도운 협력자가 된 것이지요. 예수님 활동기간 내내, 현세적이고 기득권을 누리려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본질을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번번히 대립을 하였습니다. 그런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실때 과연 어떤 즈카르야의 죽음을 비유로 든 것이 더 합당할까요?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구약의 피살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례 두 가지를 든다. 아벨은 인류의 첫 피살자요 (창세 4,8-10), 제관 겸 예언자인 즈카르야는 유다 임금 요아스(기원전 835-796년)의 지령 으로 번제의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피살되었다(2역대 24,20-22).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각주 50번 발췌 -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죽임을 당한 원인, 죽은 장소, 죽어간 모습이 어떠한지 확인하시도록 2역대 24,18-21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 .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 이어집니다) 주석서 보다는 성경이 더 정확하겠지요? 2역대 24,21 * 주석서 : 번제의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피살되었다. * 성경 :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성경과 주석서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지요? 제 생각에는 주해서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라는 것을 보니, 이때에는 구약성서는 번역되지 않았을 때 였어서 그 주해서가 다른 주석들을 참고하여 작성한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47-48) 저는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간 즈카르야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이 구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이와 똑같이 예수님 당신의 제자들이 복음선포를 할 때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만 ...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저는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간 즈카르야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이 구절(위에 인용한 루카 11,47-48)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간 즈카르야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정임님처럼 '역할을 이해' 하실 수도 있겠고, 성경이나 성전이나 문헌등 교회의 자료들을 통해서 '신분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질문자의 취지에 따라, 성경과 전승인 야고보 원복음서와 자료실에 있는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성소와 제단사이에서 살해당한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 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석 성경의 각주를 보시면 ...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5 참조) 주석성경 각주: 28.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너희"가 이 사제를 죽인 것이 아니라, 이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너희"라는 말을 씀으로써 이러한 조상들과 자손들의 연속성과 연대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설명으로 볼 때 ...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라고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만 ...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6 추천(0)

    [주석 성경의 각주를 보시면 ...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5 참조) 주석성경 각주: 28.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너희"가 이 사제를 죽인 것이 아니라, 이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너희"라는 말을 씀으로써 이러한 조상들과 자손들의 연속성과 연대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설명으로 볼 때 ...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라고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만 ... ] ===▶ 주석서의 어떤 설명 부분에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 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된다고 생각 되시는지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현세적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한 헤로데왕과 그 옆에서 안위를 누리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협력에 의해, 무죄한 피를 흘린 희생당한 사제였습니다.(마태2,2 ; 2, 16 ; 야고보 원복음서23장 ) 조상들과 자손들의 연속성과 연대성 측면에서도,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에 결코 뒤지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석성경 각주 27.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2역대 24,20-22에 나오는 사제이다. 이 사제의 이름이 칠십인역 에서는 아자르야인데 히브리 말 성경에서는 즈카르야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이름이 베레크야가 아니라 여호야다이다. 아무튼 이 인물이 맞을 경우, 마태오 복음서의 이 구절이 말하는 두 살인은, 히브리 말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 살인을 말한다(히브리 말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역대기로 끝난다.) 주석성경 신약 123쪽에서 발췌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위에 인용하신 주석내용을 읽어보면, 추정한 내용을 전제로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그 결론에 논리를 꿰맞추고 있습니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 아무튼 이 인물이 맞을 경우,.....마태오 복음서의 이 구절이 말하는 두 살인은, 히브리 말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 살인을 말한다(히브리 말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역대기로 끝난다.) ] 전제가 틀렸는데, 어떻게 결론이 맞을 수 있겠는지요?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만약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가 헤로데의 명을 어겨 살해되었다면 그럼 누가 살해한 것일까요? 헤로데의 명령에 의해 헤로데의 군사들이? 아니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인 자기 민족이? 헤로데의 명령을 어겨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헤로데의 군사들에 의해서 성전에서 살해되었다면 ... 예수님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실 이유가 있으실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14-08-02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전승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헤로데가 사내아이들을 죽일 당시에 그도 죽임을 당했다고 나옵니다. * 헤로데의 명령으로 누가 가서 죽였을까... 군사들? →마태2,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여호사다의 아들 즈카르야는 누가 죽였을까...바리사이와 율사들? →2역대 24,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두 군데 다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 안에는 군사도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도 포함되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꾸짖으신 대상'만 볼게 아니라, 바리사이나 율사들을 '꾸짖으신 이유'를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나 율사들은 현세적인 것,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 대접받고자 하는 것...등 위선에 관한 문제가 더 큰 이유이지,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그랬던 것처럼 우상숭배를 주 문제로 삼아서 꾸짖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현세적인 탐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제였기에,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실 때, 비유를 드시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 찬미 예수님! 이복선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맨 마지막에 올려주신 내용에 대한 이해... 마태 23,29-36 까지의 주제라고 할까? 예수님께서 아벨의 피부터 베레크야의 아들을 살해한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고 싶으신 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에 대한 이복선 님의 의견과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나 율사들을 꾸짖으신 이유가 현세적인 것,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 대접 받고자 하는 것, 그러한 것은 29절 이전에 다루신 문제고 29절 이하 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것과 다른 이야기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삶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수님께서 파견하시는 제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 ... 뭐 그런 결론을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만 ...

    2014-08-07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답변 작성중에 질문을 또 올려 주셨군요. 제가 본글을 쓰게 된 동기는, 박윤식님께서 '마태 23,35 에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를 두고 많은 주석서에서는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라고 나오는데 과연 그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 복음사가의 기록 오류, - 현재로서는 기록 오류는 불분명 함, - 성경 내용이 맞음 등의 여러 의견이 계실 것 같아, 일반적으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하셨다고 하여 저도 자료를 찾아 보았던건데, 많은 주석서가 성경에서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은 자신들의 추정에 의한 결론을 내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료를 찾아 가는 중에 성경과 성전이 퍼즐조각처럼 맞아지는 것을 처음 알았고, 성전(聖傳)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론으로 예수님이 언급하신,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는 결코 마태오 복음사가의 기록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는 저의 '독특한 해석'이 아니라, '자료들을 통해 도출한 결론'일 뿐입니다. 그외에 저의 관점을 물으신다면 이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가 되는 만큼,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으면 합니다. 한님성서 연구소에 질문을 넣으셨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저도 궁금합니다. 또 다른 기회가 되신다면, 제가 올렸던 글과 자료들을 같이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 이정임 (kr3217) 쪽지 대댓글

    베레크야의 아들이 2역대 24,20-22에 나오는 즈카르야든,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성경 학자들이나 신학자들에게는 물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 그들은 의인과 예언자들을 왜 죽였던가?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그들과 또한 우리들이 의인과 예언자들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죽이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한 것을 더 많이 묵상하는 편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해 보지만 그래도 가끔 이러한 궁금증은 신앙을 한 단계 더 성숙시켜 줄 수 있는 역활도 한다고 보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래 한님성서 연구소에서 주신 답변으로 마감하려고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14-08-07 추천(0)
    이복선 (lbs) 쪽지 2014-08-07 추천(0)

    [ ... 그들은 의인과 예언자들을 왜 죽였던가?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그들과 또한 우리들이 의인과 예언자들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죽이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한 것을 더 많이 묵상하는 편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 ===▶ 이정임님께서, 박윤식님의 질문에 대해 처음부터 그런 맥락으로 말씀하셨다면, 저도 오랜 시간 자료를 찾기 위해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정임님 말씀 마따나, 신구약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중에 즈카르야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뭐가 그렇게 궁금하고 중요하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마태 23,35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 라는 말씀을 두고 대부분의 주석서에서는 복음사가가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를 혼동한 것이라고 나오니까, 질문자이신 박윤식님과 많은 분들이 복음사가의 착각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하셨던 것이지요. 저도, 성경이 옳다는 것을 믿고 싶다는 의지에서 하신 질문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구요. 저는 처음부터 믿고 봐야할 성경이 오류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였고, 그 확신의 근거가 될 자료들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료를 통해 알게된 바를 나누고자 본글을 작성한 것뿐입니다. 그 성경구절에서 '의미하는 바' 혹은 '묵상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나누는 문제와는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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