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
하느님의 종들의 종 바오로 주교는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공포한다. |
서론 |
[일치교령] 1.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을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촉진하려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의 하나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고 유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많은 교파들이 사람들에게 저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상속자라고 내세우고, 참으로 모든 이가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이 갈라지시기라도 한 것처럼1)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명코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며,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
역사의 주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에 대한 당신 은총의 계획을 지혜롭게 인내로이 수행하시며, 최근에는 서로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에게 회심과 일치의 열망을 더욱 풍부히 불어넣기 시작하셨다. 어디에서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에 자극을 받아, 갈라진 우리 형제들 사이에서도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운동이 날로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다. 세계 교회 운동이라 하는 이 일치 운동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시라고 고백하는 개인과 공동체가 개별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공동체에서 그들은 복음을 들었고 또 저마다 자기 교회이며 하느님의 교회라고 한다. 거의 모든 이가 그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이며 가시적인 하느님의 교회를 갈망하고 있다. 이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며, 세상이 복음에 돌아서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을 받도록 온 세상에 파견되었다. |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그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고찰하며, 이미 교회에 관한 교리를 선언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 사이에 재건하여야 할 일치의 열망에 넘쳐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에 응답할 수 있는 도움과 길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
제 1 장 일치 운동의 가톨릭 원칙 |
2. 교회의 일치와 단일성 |
[일치교령] 2.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새로 나게 하시어 하나로 모으시도록 하신 데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에 나타났다.2) 외아드님께서는 십자가 제단에서 당신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바치시기 전에 믿는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 그리고 당신의 교회 안에 놀라운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고 이룩한다. 또 당신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고,3) 협조자 성령을 약속하셨다.4)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영원히 머무르실 것이다. |
십자가에 높이 달려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시어, 성령을 통하여 신약의 백성인 교회를 하나인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불러 모으셨다. 사도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시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에페 4,4-5).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갈라 3,27-28)이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는 온 교회를 가득 채우시고 다스리시어 신자들의 저 놀라운 친교를 이루시고 모든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결합시키시어, 교회 일치의 원리가 되신다. 성령께서는 은총과 봉사 직무를 나누어 주시고5) 여러 가지 임무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부요하게 하신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다”(에페 4,12). |
이 거룩한 당신 교회를 세말까지 온 세상에 세우도록, 그리스도께서는 가르치고 다스리고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열두 사도단에 맡기셨다.6) 사도들 가운데에서 베드로를 뽑으시어, 그가 신앙 고백을 한 다음에 베드로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기로 결정하시고 그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약속하셨으며,7) 또 그가 사랑 고백을 한 다음에는 모든 양 떼를 그에게 맡기시어 믿음 안에서 그들의 힘을 북돋아 주고8) 완전한 일치 안에서 양 떼를 치게 하셨다.9) 그러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요긴한 주춧돌로10) 또 우리 영혼들의 목자로11)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 곧 베드로의 후계자를 으뜸으로 하는 주교들의 충실한 복음 선포와 성사 집전과 사랑의 통치를 통하여 성령의 활동으로 당신 백성이 자라나기를 바라시며 하나인 신앙의 고백과 하느님 예배의 공동 거행과 하느님 가족의 형제적 화목으로 일치 안에서 당신 백성의 친교를 이루어 주신다. |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의 하나인 양 떼로서 만민 가운데 솟은 깃발처럼12) 온 인류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달하며,13) 천상 고향을 목적지로 삼아 희망을 안고 나그넷길을 가고 있다.14) |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양한 임무를 주시는 성령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교회 일치의 거룩한 신비이다. 이 신비의 최고 표본과 최고 원리는 삼위의 일치, 곧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일치이다. |
3.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 |
[일치교령] 3. 하느님의 이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이미 분열이 생겨났으며,15) 사도는 이 분열을 단죄하여야 한다고 엄중히 책망하였다.16) 후세기에는 더 많은 불화가 생겨, 적지 않은 공동체들이 가톨릭 교회의 완전한 일치에서 갈라졌으며, 어떤 때에는 양쪽 사람들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공동체들 안에서 태어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 분열 죄로 비난받을 수는 없으며, 가톨릭 교회는 그들을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그리스도를 믿고 올바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톨릭 교회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들과 가톨릭 교회 사이에는 교리나 때로는 규율 문제에서 또는 교회의 조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차이가 있어, 완전한 교회 일치에 적지 않은 장애가, 때로는 중대한 장애가 가로놓여 있지만, 일치 운동은 바로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세례 때에 믿음으로 의화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17) 마땅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은 그들을 당연히 주님 안의 형제로 인정한다.18) |
더 나아가서, 교회 자체를 세우고 교회에 생명을 주는 요소나 보화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 오히려 탁월한 많은 것들이 가톨릭 교회의 눈에 보이는 울타리 밖에도 있을 수 있다. 곧 기록된 하느님 말씀, 은총의 생활, 믿음, 바람, 사랑, 성령의 다른 내적 선물과 가시적 요소들이 그러하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께 모이는 이 모든 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에 귀속된다. |
그리스도교의 적지 않은 거룩한 행위들도 우리와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각각의 교회나 공동체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루어지는 이 행위들은 의심 없이 은총의 생명을 실제로 낳아 줄 수 있으며, 또한 이 행위들이 구원의 친교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말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이 갈라진 교회들과19) 공동체들이 비록 결함은 있겠지만 구원의 신비 안에서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 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은 개인이든 그들의 공동체이든 교회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루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함께 살아가도록 그들에게 베푸시고자 하신 저 일치,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이 천명한 저 일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앞장서는 한 사도단에 신약의 모든 보화를 맡기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지상에 세우시려는 것이었으며, 어느 모로든 이미 하느님 백성에 소속된 모든 이는 그 몸에 완전히 합체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지상 순례를 계속하는 동안 비록 그 지체들 안에서 죄로 상처를 입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며,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약에 따라 천상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영광을 충만히 받아 누릴 때까지 하느님의 온유한 인도를 받는다. |
4. 일치 운동 |
[일치교령] 4. 오늘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감도를 받아 기도와 말과 활동으로,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저 완전한 일치에 다가서려는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일치 활동에 슬기롭게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
“일치 운동”은 교회의 여러 가지 필요와 시대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증진하도록 일으키고 조직하는 활동과 사업으로 이해된다. 먼저, 갈라진 형제들의 상황을 공정하고 진실하게 반영하지 못하여 그들과 상호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말과 판단과 행동을 삼가는 모든 노력을 말한다. 그다음에는, 여러 교회나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심으로 조직한 모임에서 적절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각각 자기 교파의 교리를 깊이 설명하고 그 특성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대화”를 말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모든 이가 두 교파의 교리와 생활에 관한 더 올바른 인식과 더욱 공정한 평가를 하게 된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요구하는 대로 공동선을 위한 온갖 일에서 그 교파들이 더욱 폭넓은 협력을 추구하고 또 가능한 곳에서는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바친다. 마침내 모든 이가 교회에 관한 그리스도의 뜻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당연히 요청되는 쇄신과 개혁 활동을 줄기차게 추진하여야 한다. |
이 모든 것을 목자들의 감독 아래 가톨릭 신자들이 지혜롭게 또 인내로이 이행할 때에, 공정과 진리, 화합과 협력, 형제애와 일치의 선익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조금씩 교회의 완전한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당신 교회에 주신 일치,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그 일치가 가톨릭 교회 안에 있다고 우리는 믿으며 세상 종말까지 그 일치가 날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
완전한 보편적 일치를 바라는 개인들의 준비 작업과 화해는 본질적으로 일치 활동과 분명히 구별되지만, 둘 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결코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 활동에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교회 일에서 그들과 교류하며,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맨 먼저 바로 그 자신들이 가톨릭 교회 자체에서 무엇을 쇄신하여야 하고 실천하여야 할 것인지 진지하고 세심하게 살펴, 교회 생활이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전수하여 주신 가르침과 교리를 더욱 충실하고 더욱 분명하게 증언하도록 하여야 한다. |
가톨릭 교회는 비록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진리와 은총의 온갖 수단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들이 거기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살지 못하여,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과 온 세상에 교회의 얼굴이 제대로 빛나지 못하고 하느님 나라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추구하여야 하며,20) 각자의 처지에 따라, 예수님의 겸손과 죽음을 자기 몸에 지니고,2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실 때까지22) 날이 갈수록 교회가 깨끗해지고 새로워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에 따라, 필요한 일에서 일치를 보존하며, 여러 가지 영성 생활과 규율에서, 다양한 전례 예법에서, 또한 계시 진리의 신학적 탐구에서 마땅한 자유를 지켜야 하고, 모든 일에서 사랑을 닦아야 한다. 이러한 행동 방식으로 신자들은 교회의 진정한 보편성과 더불어 사도 전래성을 날로 더욱 온전하게 드러낼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우리와 갈라진 형제들에게서 발견되는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들을 공동 유산에서 나온 것으로 기꺼이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피를 흘리기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다른 이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부요와 힘찬 활동을 인정하는 것은 마땅하고 구원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놀라운 분이시고 놀라운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
또한 갈라진 형제들 안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이나 다 우리 자신의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음을 결코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면 결코 신앙의 참된 보화와 대립될 수 없으며, 오히려 언제나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를 더욱더 완전히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은, 세례로 교회에 들어왔지만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한 자녀들에게서 교회가 그 고유의 충만한 보편성을 실현하는 데에 장애가 되고 있다. 더욱이 교회 자체로서도 그 현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충만한 보편성을 드러내기가 어렵게 되었다. |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가톨릭 신자들의 일치 활동 참여가 날로 늘어나고 있음에 기꺼이 주목하고, 전 세계의 주교들이 이 운동을 슬기롭게 추진하고 현명하게 지도하도록 권장한다. |
제 2 장 일치 운동의 실천 |
5. 일치를 향한 모든 이의 관심 |
[일치교령] 5. 일치 회복은 신자이든 목자이든 온 교회의 관심사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이나 신학과 역사 연구에서 누구나 다 힘껏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이러한 관심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형제적 결합을 어느 정도 드러내며, 하느님의 호의에 따라 충만하고 완전한 일치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
6. 교회의 개혁 |
[일치교령] 6. 교회의 모든 쇄신은1) 본질적으로 교회 소명에 대한 충실성의 증대에 있다. 이는 의심 없이 일치 운동을 추구하는 이유이다. 나그넷길에 있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 또 인간적인 지상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이 개혁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 받고 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관습에서나 교회 규율에서나 교리의 진술 방법에서 ? 이것은 신앙의 유산 자체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올바르지 않은 것이 보존되어 왔다면 적절한 시기에 마땅히 바르게 혁신되어야 한다. |
그러므로 이러한 쇄신은 일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쇄신은 교회 생활의 여러 가지 양상을 통하여, 이를테면 성경 운동, 전례 운동, 하느님 말씀의 설교와 교리 교육, 평신도 사도직,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 혼인의 영성,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활동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일치 운동의 미래 발전을 밝게 비추어 주는 길조와 보증으로 여겨야 한다. |
7. 마음의 회개 |
[일치교령] 7. 진정한 일치 운동은 내적 회개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실, 새로운 마음,2) 자기 자신의 포기, 사랑의 자유로운 실천에서 일치의 열망이 솟아오르고 익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극기와 겸손, 온유한 봉사와 너그러운 형제애의 은총을 성령께 간청하여야 한다. 이방인들의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1-3). 이 권고는 특히 우리 가운데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태 20,28)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속하도록 성품에 오른 이들에게 한 것이다. |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이 다”(1요한 1,10). 요한 사도의 이 증언은 또한 일치를 거스르는 죄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도록 하느님께 또 갈라진 형제들에게 겸손되이 간청한다. |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이 다”(1요한 1,10). 요한 사도의 이 증언은 또한 일치를 거스르는 죄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도록 하느님께 또 갈라진 형제들에게 겸손되이 간청한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따라 더욱 순수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만큼 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촉진하고 또 실천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실, 신자들은 더욱 긴밀한 친교로 성부와 말씀과 성령과 결합될수록 그만큼 더 깊이 더욱 쉽게 서로 형제애를 두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8. 기도의 일치 |
[일치교령] 8. 이러한 마음의 회개와 거룩한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사적 공적 기도와 더불어 모든 일치 운동의 혼으로 여겨야 하며, 마땅히 영적 일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
구세주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친히 성부께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하시며 열렬히 간청하신 그 기도를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바치려고 자주 모이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익숙한 일이다. |
“일치를 위한” 기도나 일치 운동을 위한 모임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허용될 뿐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이와 같은 공동 기도는 분명 일치의 은총을 얻는 참으로 효과적인 방법이며, 가톨릭 신자들과 갈라진 형제들을 지금까지 결합시켜 온 유대의 진정한 표지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
그러나 성사 교류를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회복을 위하여 분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성사 교류는 특히 두 가지 원칙, 곧 교회 일치의 표명과 은총 수단의 참여에 달려 있다. 일치의 표명은 흔히 성사 교류를 금지한다. 은총의 배려는 때때로 성사 교류를 권장한다. 구체적인 교류 방법에 대해서는, 주교회의가 고유 정관의 규범에 따라 달리 제정하거나 성좌에서 달리 제정하지 않으면, 지역 주교의 권위로 시간과 장소와 사람의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현명하게 결정하여야 한다. |
9. 상호 이해 |
[일치교령] 9. 갈라진 형제들의 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에 따라 선의의 연구를 하여야 한다. 적절한 준비를 갖춘 가톨릭 신자들은 갈라진 형제들에게 고유한 교리, 역사, 영성 생활, 예배 생활, 종교 심리, 문화 등에 관하여 더 나은 지식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특히 신학 문제들을 쌍방이 각기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는 모임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고위 성직자들의 감독 아래에서 그러한 모임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전문가들이어야 한다. 이러한 대화에서 가톨릭 교회의 진정한 입장도 더욱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갈라진 형제들의 생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신앙도 그들에게 더 적절히 보여 줄 수 있다. |
10. 교회 일치를 위한 양성 |
[일치교령] 10. 신학과 다른 학문, 특히 역사학의 교육은 일치 운동의 견지에서도 사건들의 진상에 더욱 부합하도록 전수되어야 한다. |
미래의 목자들과 사제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특히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에 대하여, 논쟁적으로가 아니라 철저하게 연구된 신학에 정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실제로, 신자들과 수도자들에게 필요한 영성 교육과 양성은 사제들이 받는 교육에 크게 좌우된다. |
오늘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사도직에서 특히 일치 운동으로 생겨난 문제들과 그 성과들을 알아야 한다. |
11. 신앙 교리의 표현과 설명 방법 |
[일치교령] 11. 가톨릭 신앙의 표현 양식과 방법이 형제들과 나누는 대화를 결코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 모든 교리를 명확하게 온전히 제시하여야 한다. 가톨릭 교리의 순수성을 손상시키며 그 본래의 확실한 뜻을 흐려 버리는 저 거짓 평화주의처럼 일치 운동과 다른 것도 결코 없을 것이다. |
그와 동시에 가톨릭 신앙은 갈라진 형제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방법으로 더 깊이 더욱 바르게 설명되어야 한다. |
더 나아가 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가톨릭 신학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를 탐구할 때에, 진리에 대한 사랑과 애덕과 겸손으로 연구해 나가야 한다. 가톨릭 교리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렇게 형제적 경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3) 더욱 깊이 깨닫고 더욱 분명히 드러내도록 모든 사람을 이끄는 길이 열릴 것이다. |
12. 갈라진 형제들과 이루는 협력 |
[일치교령] 12.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든 민족들 앞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공동 노력과 상호 존중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 희망을 증언하여야 한다. 현대에는 사회 영역에서 널리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다 공동 활동을 하도록 부름 받고 있으며, 더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모든 그리스도인은 더욱더 그러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협력은 그들을 이미 서로 묶어 주는 그 결합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며, 종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더욱 밝은 빛 속에 드러내는 것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협력은 더더욱 완성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는, 인간 존엄성의 올바른 존중을 위하여, 또는 평화 증진을 위하여, 또는 복음의 사회 적용을 위하여, 또는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학문과 예술을 진보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또 기아와 재난, 문맹과 빈곤, 주택난이나 불공정한 부의 분배와 같은 현대의 곤경에 대한 온갖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는 이러한 협력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는지 또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길을 닦을 수 있는지 쉽게 배울 수 있다. |
제 3 장 로마 사도좌에서 갈라진 교회와 교회 공동체 |
13. 여러 가지 분열 |
[일치교령] 13. 그리스도의 혼솔 없는 속옷을 찢어 놓은 분열의 주요한 두 부류에 눈길을 돌려 본다. |
그 첫째는 동방에서 생긴 것으로서,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의 교의 정식 논쟁에서, 또는 그 후대에 들어 동방 총대주교좌와 로마 사도좌 사이의 교회적 친교의 단절로 생겨난 것이다. |
또 다른 분열은 그 뒤 4세기가 더 지난 다음, 서방에서, 일반적으로 ‘종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들에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서 국가나 교파의 공동체들이 로마 사도좌에서 갈라져 나갔다. 가톨릭의 전통과 제도가 부분적으로 존속되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에서는 영국 성공회가 특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이러한 여러 가지 분열은 그 발단과 시대와 장소 때문만이 아니라 특히 신앙과 교회 제도에 관련된 문제의 성격과 중요성에 따라 서로 매우 다르다. |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여러 그리스도인 단체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경시하지 않고 또 분열을 넘어 존속되어 온 그들의 유대를 간과하지 않으면서, 일치 운동을 현명하게 실천하도록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기로 한다. |
I. 동방 교회들에 대한 특별 고찰 |
14. 동방 교회들의 특성과 역사 |
[일치교령] 14.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는 수세기 동안 고유한 자기 길을 걸으면서도 신앙과 성사 생활의 형제적 친교로 결합되어 왔다. 그들 가운데에서 신앙과 규율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공동 합의로 로마 사도좌의 지도를 받았다. 동방에서는 많은 개별 교회 또는 지역 교회가 번영하였으며, 그들 가운데에서 총대주교좌 교회들이 첫자리를 차지하였고 또 적지 않은 그 교회들이 영예롭게도 바로 사도들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 거룩한 공의회는 중요한 사실의 하나로 모든 이에게 기꺼이 상기시키고자 한다. 동방 교회에서는 지역 교회들이 마땅히 자매들로서 지녀야 하는 관계, 믿음과 사랑의 친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저 형제 관계를 보존하려는 노력과 관심이 매우 컸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
또한 동방의 교회들이 처음부터 간직하고 있는 보화들 가운데에서 서방의 교회가 전례, 영성 전통, 법질서에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 동정 마리아에게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교리가 동방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들에서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신앙을 보존하려고 그 교회들은 많은 고통을 겪어 왔고 또 겪고 있다. |
사도들이 전해 준 유산은 여러 가지 형태와 방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맨 처음부터 이곳저곳의 교회에서 그들의 품성과 생활 조건의 다양성에 따라 다르게 발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외부 원인에 더해져 상호 이해와 사랑의 부족으로 분열의 빌미가 되었다. |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이에게, 특히 동방 교회들과 가톨릭 교회 사이에서 바람직한 완전 일치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려는 사람들에게 권고한다. 동방 교회들의 기원과 발전의 이러한 특수 상황, 그리고 분열 이전에 그들과 로마 사도좌 사이에서 유지되어 왔던 상호 관계의 특성을 마땅히 고려하고,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바란다. 이 권고를 신중하게 따르면 지향하는 대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
15. 동방 교회의 전례와 영성 전통 |
[일치교령] 15.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는지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신자들은 주교와 일치하여, 특히 교회 생활의 원천이고 미래 영광의 보증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사람이 되시어 고난을 겪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나아가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되었다. 따라서 각 교회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나며,1) 또 공동 집전을 통하여 교회 일치가 드러난다. |
에페소 세계 공의회는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모친이라고 장엄하게 선언함으로써 성경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본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였고,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전례 예배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성모님을 찬양한다. 또한 그들이 공경하는 많은 성인들 가운데에는 보편 교회의 교부들도 있다. |
그 교회들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므로, 적절한 상황에서 교회 권위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지는 어떤 성사 교류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것이다. |
동방에는 특히 수도 생활이 드러내는 저 풍요로운 영성 전통이 있다. 거기에서는 실제로 거룩한 교부들의 빛나는 시대부터 저 수도 영성이 꽃피었고, 뒤에 그 영성이 서방으로 흘러들어 이를 원천으로 삼아 라틴계 수도회가 생겨났으며, 그다음에도 동방에서 거듭 새로운 힘을 받아 왔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관상하도록 인간을 온전히 드높여 주는 동방 교부들의 이 풍요로운 영성에 가톨릭 신자들이 더 자주 다가가기를 간곡히 권고한다. |
동방 교회들의 극히 풍부한 전례와 영성 자산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보존하고 육성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전통을 충실히 지키고 동서 그리스도인들의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이가 알아야 한다. |
16. 동방 교회 고유의 규율 |
[일치교령] 16. 또한 동방 교회들은 이미 초세기부터 교부들과 교회회의나 세계 공의회가 승인한 고유의 규율을 따랐다. 위에서 말한 관습과 관례의 다양성은 교회 일치에 지장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교회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그 사명을 다하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다. 온갖 의혹을 불식하고자, 거룩한 공의회는 동방 교회들이 온 교회에 필요한 일치를 명심하고 자기 신자들의 품성에 더 적합하고 영혼의 선익 도모에 더 적절한 고유 규율에 따라 자기 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전통적 원칙을 언제나 충실히 지켜 오지는 않았으나, 이 원칙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일치 회복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
[일치교령] 16. 또한 동방 교회들은 이미 초세기부터 교부들과 교회회의나 세계 공의회가 승인한 고유의 규율을 따랐다. 위에서 말한 관습과 관례의 다양성은 교회 일치에 지장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교회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그 사명을 다하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다. 온갖 의혹을 불식하고자, 거룩한 공의회는 동방 교회들이 온 교회에 필요한 일치를 명심하고 자기 신자들의 품성에 더 적합하고 영혼의 선익 도모에 더 적절한 고유 규율에 따라 자기 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전통적 원칙을 언제나 충실히 지켜 오지는 않았으나, 이 원칙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일치 회복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
17. 신비를 드러내는 동방 교회의 특성 |
[일치교령] 17. 정당한 다양성에 대하여 위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교리의 다양한 신학적 표현에 대하여도 선언하고자 한다. 계시 진리의 탐구에서 하느님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다양한 방법과 접근법을 동방과 서방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계시된 신비의 어떤 측면을 어떤 때에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더 적절히 이해하고 더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므로 그러할 때에 그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흔히 대립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보완한다고 말하여야 한다. 동방 교회들의 진정한 신학 전통과 관련하여, 그 전통이 참으로 탁월한 방법으로 성경에 뿌리를 박고, 전례 생활로 육성되고 표현되며, 살아 있는 사도 전승과 동방 교부들과 영성가들의 저술에서 양식을 얻고, 올바른 생활 제도와 그리스도교 진리의 완전한 관상을 지향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동방 자녀들이 이 세습 자산을 지키며 이에 따라 더욱 순수하고 완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서방 전통을 따르는 형제들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음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전통 안에 있는 영성과 전례와 규율과 신학의 이 모든 자산이 교회의 완전한 보편성과 사도 전래성에 귀속된다고 선언한다. |
18. 결론 |
[일치교령] 18. 이 모든 것을 깊이 고찰한 다음에, 이 거룩한 공의회는 과거의 거룩한 공의회들과 교황들이 선언한 대로 친교와 일치를 회복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필수 사항 외에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아야”(사도 15,28) 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밝힌다. 또한 교회 생활의 여러 제도와 형태에서, 특히 기도에서 또 교리에 관한 대화와 현대 사목 임무의 더 긴급한 요구에 대한 형제적 대화에서 점차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또한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의 목자들과 신자들이 더 이상 동방에서 살지 못하고 고국을 멀리 떠나 살아가는 이들과 관계를 맺어, 온갖 경쟁심을 물리치고 사랑의 정신으로 그들과 형제적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권고한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 일을 온 마음으로 추진하여 동서방 교회를 갈라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두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견고한 주춧돌로 삼아 마침내 하나의 집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2) |
II. 서방의 갈라진 교회와 교회 공동체 |
19. 이 공동체들의 상황 |
[일치교령] 19. 서방에서 중세 말엽에 시작된 저 중대한 위기나 그 후대에 로마의 사도좌에서 갈라져 나간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은 그리스도교 백성이 과거 여러 세기 동안 교회적 친교 안에서 살아 왔던 오랜 생활 때문에 가톨릭 교회와 특별한 친근 관계를 맺고 있다. |
이러한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은 그 기원과 교리와 영성 생활의 차이 때문에 우리와 다를 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다르므로, 거기에 대하여 공정하게 서술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여기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
가톨릭 교회와 화해하려는 평화의 열망과 일치 운동이 아직 모든 곳에 파급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일치 정신과 상호 존중이 점차 자라나기를 바란다. |
그러나 이 교회들이나 교회 공동체들과 가톨릭 교회 사이에는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특성의 차이만이 아니라, 특히 계시 진리의 해석에서 매우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일치를 위한 대화를 더욱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이 대화의 토대와 격려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할 몇 가지 요점을 다음에 제시하고자 한다. |
20.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 |
[일치교령] 20. 우리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고 주님이시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심을 공적으로 선언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드리는 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본다. 물론 강생하신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 구원 활동, 교회의 신비와 직무, 구원 활동에서 차지하는 마리아의 역할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가볍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갈라진 형제들도 그리스도를 교회 일치의 원천과 중심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고 우리는 기뻐한다. 그들도 그리스도와 일치하려는 소망에 사로잡혀 더욱더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며 어디에서나 여러 민족들 가운데에서 자기 신앙을 증언하려고 한다. |
21. 성경 연구 |
[일치교령] 21. 성경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사랑과 존경은 우리 형제들을 항구하고 치밀한 성경 연구로 이끌어들인다. 복음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다”(로마 1,16). |
성령을 부르며, 그들은 바로 성경에서 하느님을 찾고 있다. 예언자들이 예고한 분,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그러한 하느님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 하느님이신 스승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가르치고 수행하신 일들,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관상한다. |
우리와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만, 성경과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와 달리 저마다 참으로 다르게 생각한다.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일에서 정통 교도권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
그러나 거룩한 말씀은 바로 대화 자체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는 탁월한 도구가 되어, 구세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제시하시는 저 일치를 이루게 할 것이다. |
22. 성사 생활 |
[일치교령] 22. 세례성사는 언제든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바르게 주고 또 필요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받는다면, 누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새로 태어나게 된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다”(콜로 2,12).3) |
그러므로 세례는 세례를 통하여 새로 태어난 모든 사람을 묶어 주는 일치의 성사적 끈이 된다. 그러나 세례 그 자체는 오로지 시작이며 출발일 뿐이다. 세례는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생명을 얻도록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완전한 신앙의 고백, 바로 그리스도께서 바라신 구원의 제도로 들어가는 완전한 합체, 마침내 성찬의 친교를 나누는 완전한 참여를 지향하고 있다. |
우리와 갈라진 교회 공동체들은 비록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완전한 일치를 우리와 함께 이루지 못하고 또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고 우리는 믿지만, 그래도 그들은 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이 만찬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만찬, 다른 성사들, 예배, 교회의 직무에 관한 교리를 대화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
23.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활 |
[일치교령] 23. 이러한 형제들의 그리스도인 생활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자라나고, 세례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길러진다. 이러한 삶은 개인 기도, 성경 묵상, 그리스도인 가정생활, 하느님을 찬양하려고 모인 공동체의 예배에서 드러난다. 또한 그들의 예배는 공통된 옛 전례의 분명한 요소들을 때때로 보여 주고 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와 찬양에서 열매를 맺는다. 또한 생생한 정의감과 진실한 이웃 사랑도 생겨난다. 이러한 신앙은 또한 정신적 육체적 불행을 덜어 주고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사회생활 조건을 더욱 인간답게 개선하며, 세계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적지 않은 활동들을 펼쳐 왔다. |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도덕 문제에서 언제나 가톨릭 신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또 현대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똑같은 해결책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그리스도인 덕행의 근원인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 한 사도의 가르침에 순종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복음의 도덕적 적용에 관하여 일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
24. 결론 |
[일치교령] 24. 이렇게 일치 운동의 실천 조건과 지도 원칙을 간단하게 제시한 뒤, 이제 우리는 신뢰하는 마음으로 눈을 들어 미래를 바라본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신자들이 일치의 참된 진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온갖 경솔함과 무지한 열정을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 곧 우리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이어받은 진리에 충실하고, 가톨릭 교회가 언제나 고백하는 신앙에 합치하며, 주님께서 당신 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그 충만함을 지향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자녀들의 활동이 갈라진 형제들의 활동과 결합되어, 하느님 섭리의 길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고 또 성령의 미래 인도를 가로막지 않고 발전하여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그리스도의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화해시키려는 이 거룩한 목표는 인간의 힘과 재능을 초월한다는 것을 공의회가 잘 알고 있음을 밝힌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에, 우리를 위한 성부의 사랑에, 성령의 능력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둔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이 희망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로마 5,5 참조). |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은 이 교령의 모든 것에 낱낱이 찬성하였다. 본인은 그리스도께서 본인에게 부여하신 사도 권한으로 존경하는 교부들과 더불어 이를 성령 안에서 승인하고 결정하고 제정하며, 공의회에서 제정한 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포하기를 명령한다. |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
1964년 11월 21일 |
가톨릭 교회의 주교 바오로 자서 |
교부들의 서명이 따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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