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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9 조회수5,407 추천수0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

 

 

성경에는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할까요? 익명의 등장인물들까지 합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예수님과 성모님을 제외하면 모세의 이름을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많은 예술 작품과 영화를 통해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가슴에 품고 있거나 손에 든 지팡이를 갈라진 바다를 향해 내뻗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사건들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 알려진 모세이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함께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성경이 전하는 모세의 삶은 너무나 경이롭고 이스라엘뿐 아니라 인간 구원역사에 중요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모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의 처지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던 시기에 탄생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 문헌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살이나 출애굽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출애굽은 유니콘처럼 상상의 산물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문헌에 자신들만을 사람이라고 기록할 정도로 우월감에 젖어있던 이집트인들이 치욕스러운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모세의 탄생, 즉 출애굽의 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16-13세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1열왕 6,1은 솔로몬 통치 4년째가 출애굽 사건이 480년 지난 때라고 합니다. 기원전 970년에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 치세 4년은 기원전 966년이니 여기에 480년을 더하면 기원전 1446년입니다. 하지만 480이라는 수를 구약시대에 이상적인 한 세대로 여기던 40년에 완전수 12를 곱한 상징적인 수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40년을 고대 근동인들의 실제 한 세대인 25년으로 바꾸어 12를 곱하면 300년이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때는 기원전 1266년입니다. [2021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2)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집트 신왕국 18왕조의 아흐모세 1세(기원전 1570-1546년)는 기원전 17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하부 이집트를 점령하여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이방인 왕조까지 세운 힉소스인을 몰아내고 내친김에 가나안까지 점령했습니다. 바로 이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인과 같은 셈족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삼아 박해한 파라오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집트가 영향력을 가나안까지 확장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국력이 쇠한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으리라 추정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모세의 탄생 시기도 기원전 13세기가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 연대를 기원전 13세기로 보는 또 다른 근거가 있는데, 고고학 연구를 통해 이 무렵에 가나안 땅에 새로운 농법이 보급된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산악지방의 계단식 농경과 농사를 위한 빗물의 저장인데, 이전까지는 물이 풍부한 서쪽 해안가에서 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3세기경부터는 새로운 농법 덕에 가나안 전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원인을 이집트에서 발달한 농법을 배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이집트의 구원자 요셉의 시대에 특혜를 누리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인들의 종과 같은 처지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약 칠십여 명에 불과하던 야곱 가문이 하나의 민족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수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급속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억압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탈출 1,10에 나오는데, 이것은 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힉소스인에 의해 이집트의 절반을 점령당한 이후 같은 셈족이던 이스라엘 백성을 경계한 것입니다. 또다시 셈족의 침입이 있을 때 수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내에서 호응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이집트 역사 연구는 힉소스인이 외부에서 침공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 살던 셈족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수가 많아지는 이스라엘 백성은 더 큰 위협이었겠네요. [2021년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3)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벽돌 만드는 일을 시킨 것입니다. 벽돌을 만드는 작업은 고된 일이었으며, 개인별 하루 할당량도 정해져 있어서 농땡이를 피울 수도 없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혹사해 쇠약하게 만들고 많은 자손을 양육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집트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하는데(탈출 1,16), 그 이유에 대해 타르굼 차명 요나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파라오가 저울 위에 이집트 땅과 양 한 마리가 올려진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양 한 마리의 무게가 온 이집트 땅보다 더 무거웠다. 파라오의 마술사들은 이 꿈을 한 이스라엘 사내아이가 온 이집트를 파괴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파라오는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세는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태어납니다. 모세 또한 다른 히브리 사내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자마자 죽을 처지에 놓였으나, 이집트 공주에 의해 나일강에서 건져져서 왕궁에서 길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탈출 2,10은 모세의 이름이 ‘건져 내다’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만, ‘자식을 갖다’라는 뜻의 이집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모세와 예수님이 비슷한 점을 여러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이 부분도 그러합니다. 모세는 이집트 공주에 의해 구해졌고, 아기 예수님은 이집트로 피신하여 살아남습니다.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하던 모세가 히브리인을 때리던 이집트인 하나를 죽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유다 전승 미드라시는 모세의 살인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고 살해된 이집트인이 히브리 노예의 아내를 강간하던 현장을 남편에게 들키자 오히려 그를 폭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 살인을 우상 숭배에 맞서는 참 종교의 투쟁으로 상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모세가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보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처벌을 피하고자 미디안으로 달아나는데, 미디안은 시나이반도 동쪽, 에돔 남쪽 광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얼마나 겁이 났던지 시나이반도 너머까지 멀리 도망간 것입니다. [2021년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4)

 

 

미디안에서 모세는 미디안 사제 르우엘의 딸 치포라와 결혼하여 아들 게르솜을 낳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장인 이름은 르우엘(탈출 2,18), 이트로(탈출 3,1; 4,18; 18,1-12), 호밥(판관 4,11) 등으로 다양하게 나와서 독자를 헷갈리게 합니다. 이 이름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르우엘은 야훼계 전승에 속하고, 이트로는 엘로힘계 전승에 속한 것으로 봅니다. 다른 이들은 르우엘은 개인 이름으로, 이트로는 사제의 칭호로 보기도 합니다. 르우엘은 모세의 장인, 이트로와 호밥은 처남으로 보거나, 르우엘은 장조(丈祖), 이트로는 장인, 호밥은 처남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랍비들은 르우엘과 이트로는 동일인으로서 모세의 장인이고 호밥은 모세의 처남으로 봅니다. 공동번역성서 민수 10,29에도 호밥이 모세의 처남으로 나오지만, 우리말 성경 민수 10,29은 호밥이 모세의 장인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 머무는 동안 이집트의 파라오가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할 도구로 모세를 선택하십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난 곳은 호렙산 혹은 시나이산입니다. 호렙이라는 명칭은 엘로히스트계와 신명기계 전승에 속하며, 시나이는 야휘스트계와 사제계 전승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보입니다. 해발 2,285m의 시나이산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역삼각형의 시나이반도 남쪽 끝부분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한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불은 강한 에너지를 내며 접촉하는 것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불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느님 권위의 상징이 됩니다. 또한, 모든 나무 가운데 가장 작은 떨기나무는 비천한 노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며, 불에 타지만 소멸하지 않는 떨기나무는 비록 이스라엘이 지금 고통 중에 있지만 멸망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알려줍니다.

 

불타고 있으나 소멸하지 않은 떨기나무는 나중에 우리 교회 전승에서 예수님을 출산했으나 동정을 잃지 않은 성모님의 상징이 됩니다. [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5)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탈출 3,5) 신발을 벗는 것은 종이 주인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기도 했지만, 사제는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때 부정한 것을 묻혀 가는 것을 피하려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또한, 죽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 자체도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에 적절치 않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기는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전이요, 모세는 사제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출 3,7-10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부르시는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양식은 여섯 요소로 구성됩니다: 하느님과 만남, 소개말, 임무 부여, 거부, 안심시키기, 표징. 따라서 모세는 예언자로 불림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목자로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목자는 이스라엘에서 왕에게 부여된 명예로운 호칭이었습니다. 앞으로 모세는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대등한 왕처럼 맞서고, 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모세에게서 왕, 사제, 예언자의 모습이 모두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이름 야훼를 알려주십니다.(탈출 3,14)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이름은 야훼, 엘로힘, 엘, 엘로이, 엘 샤다이, 엘 엘리온 등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구약성경에 6천 8백 번가량 나오는 야훼는 ‘나다’, ‘나는 나다’, ‘나는 있다’ 혹은 ‘나는 있는 나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주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하느님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엘로힘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은 이미 창세기 2장부터 성경 저자에 의해 등장하지만, 여기서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처음으로 야훼라는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탈출 6,3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나타났으나, ‘야훼’라는 내 이름으로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즉, 야훼는 무엇보다 출애굽 사건과 관련된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파라오의 폭정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야훼라는 이름은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2021년 9월 12일 연중 제2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6)

 

 

모세는 처음에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소명을 거부합니다. 탈출 4,10절에서 모세는 입과 혀가 무딘 것을 거부의 이유로 드는데, 미드라시 하가다는 모세의 입에 문제가 생긴 까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세가 세 살 때 파라오의 왕관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이를 본 이집트 제후 발라암이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임금님, 현인들이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 파라오의 왕관과 왕국을 빼앗을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모세가 지금 임금님의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발라암의 말을 듣고 두려워 원로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 가운데는 원로로 변장한 가브리엘 천사가 끼어 있었다.

 

모두가 동요하여 모세를 죽이려고 공모할 때, 변장한 가브리엘 천사가 나서서 말하였다. “모세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그를 시험해 봅시다. 모세 앞에 금덩어리와 발갛게 타는 석탄을 놓고 그가 무엇을 고르는지 보고 결정합시다. 만일 금을 만지면 모세가 파라오의 왕관은 물론 금의 값어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니, 그때는 그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석탄을 만지면 어린아이가 파라오의 왕관을 장난감 정도로 여긴 것이니, 살려 둡시다.” 원로들이 이 시험에 동의하여 반짝이는 금덩어리와 발갛게 타는 석탄을 모세 앞에 두었다.

 

어린 모세는 금이 있는 쪽으로 손을 들려고 하였으나, 가브리엘 천사가 몰래 재빨리 모세의 손을 찔러 모세가 석탄을 잡게 했다. 다행히 시험은 무사히 통과하였지만, 아이들이 그렇듯이 모세는 타는 석탄을 입에 물어 혀를 데었고, 그 뒤로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설령 모세의 말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하느님의 일의 성취는 인간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소명을 받아들인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조차 모세를 믿지 않자 의기소침한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파라오에게 하느님처럼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탈출 7,1) 이것은 모세가 하느님의 단순한 대변인이 아닌 대리자로서 이집트 신들의 대리자인 파라오에 맞설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실 재앙들은 단지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주요 신들의 수만 해도 80이나 되는 이집트 신들을 심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탈출 12,12) 곧 진정으로 참된 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우주적 대결입니다. [2021년 9월 19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7)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세의 나이는 80세입니다.(탈출 7,7) 80은 성경에서 충만한 한 세대를 상징하는 수인 40의 배수입니다. 사도 7,23과 7,30에 따르면 모세는 인생의 첫 40년은 이집트에 있었고, 두 번째 40년은 미디안에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40년을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 머물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120세에 죽을 것입니다.(신명 34,7)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놀라운 기적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시작은 파라오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뱀은 지혜롭고 마술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의 적대자로서 최고신 레조차도 혼자서는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아포피스도 뱀의 형상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집트 요술사들이 불러낸 뱀들을 아론의 뱀이 모두 삼켜버린 것은 아포피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부적까지 지니던 이집트인들에게 매우 불길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피라미드의 벽화는 상부 이집트가 하부 이집트를 정복한 사건을 한 왕관이 다른 왕관을 삼키는 모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관에서는 삼키는 행위에 삼켜진 대상의 능력을 흡수하는 효력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론의 뱀이 이집트 요술사들의 뱀들을 삼킨 것은 이집트인들에게 아론의 신이 자신들의 신들을 압도하고 무능하게 만든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을 보고도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는 것을 거부하자 물이 피로 바뀌는 재앙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집트의 강(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과 땅(세 번째부터 여섯 번째 재앙까지)과 하늘(일곱 번째부터 열 번째 재앙까지)에 닥칠 열 개의 우주적 재앙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성경에서 10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로서, 파라오는 열 개의 재앙이 모두 일어난 뒤, 즉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완성된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에서 풀어주게 될 것입니다.

 

나일강물이 피로 변하는데, 이집트는 나일강 덕분에 존재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일강은 6,650㎞를 흐르며 주기적인 범람을 통해 비옥한 퇴적토를 운반하여 농경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생활용수로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0월 3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8)

 

 

첫 번째 재앙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 크눔, 하피 등의 신이 나일강을 보호하고 축복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서 이 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사제들은 매일 이른 아침 신상들을 씻었는데, 그마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자신들의 몸조차도 씻지 못하는 무능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집트의 요술사들도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데(탈출 7,22), 이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행위로써 이집트의 물 사정은 더 악화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되돌릴 능력이 없으며, 반대로 하느님의 일을 돕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힘의 원천인 이집트 신들이 하느님과 대등한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떼가 온 이집트를 뒤덮은 것입니다. 이집트 신들 가운데 삼신할미처럼 출생을 관장하는 헤케트 여신의 상징이 개구리이기에 개구리떼가 하느님의 명을 따른 이 기적은 하느님께서 그를 압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 요술사들은 또 이 기적을 모방합니다. 그러나 역시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악화시키면서 그들의 무능을 드러낼 뿐입니다.

 

물이 피로 변한 데 이어 개구리 떼까지 온 땅을 뒤덮자 파라오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모세의 청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개구리가 비록 위험하지는 않지만, 매우 성가셨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개구리는 헤케트 여신의 상징이어서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분의 절대적 권위를 깨달았기 때문으로 봐야겠습니다(탈출 8,4). 하지만 재앙이 사라지자 파라오는 곧 마음을 바꿉니다.

 

그래서 세 번째 재앙이 내리는데, 땅의 먼지가 모기로 변한 것입니다. 앞의 기적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집트 신들을 패배시키셨듯이 땅의 먼지를 이용한 이 기적을 통해서는 대지의 신 게브에게 승리하십니다. 즉, 땅의 통제권도 게브가 아니라 하느님께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집트 요술사들이 하느님의 권능을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탈출 8,15) 그러나 파라오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2021년 10월 10일 연중 제28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9)

 

 

네 번째로 등에의 재앙이 내리는데, 이와 관계되는 이집트의 신은 파리의 신 우아티트입니다. 파리의 신이 쇠파리의 통제권을 하느님께 빼앗긴 것입니다.

 

이 재앙을 겪으며 파라오는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허용하되 이집트를 떠나는 것은 막는 것입니다.(탈출 8,21)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인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을 혐오하기에 광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로 바치던 황소, 암소, 숫양은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5세기에 나일강 상류의 엘레판틴에 거주하던 유다인들이 이 동물들로 제사를 지냈다는 이유로 이집트인들에게 학살당하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말, 나귀, 낙타, 소, 양 등의 우유, 고기, 의복을 제공하고 농경과 수송에 이용되는 가축들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병에 걸려 죽는 것입니다. 재앙의 위험성이 매우 높아졌죠. 이전의 재앙들은 직접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처음으로 죽음으로 직결되는 재앙이 내립니다. 동물들이 죽는 이 재앙도 이집트 신들의 패배를 상징합니다. 많은 이집트 신들이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는데, 특히 황소는 아피스 신과 므네비스 신, 암소는 하토르 신, 숫양은 크눔 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재앙은 그을음이 종기가 된 것입니다. 이 재앙을 통해 하느님께 패배한 이집트의 신들은 의술의 신 임호텝과 이시스, 질병의 신 세크멧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은 우박입니다. 이 재앙으로 사람, 동물, 식물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마치 앞의 재앙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패배한 이집트 신들은 하늘의 신 누트와 호루스, 비와 이슬의 신 테프누트, 곡식의 신 오시리스, 대기의 신수 등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재앙들을 내리신 목적을 알려주시는데, 온 세상에 하느님과 같은 신이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 즉 온 세상의 유일무이한 하느님이심을 밝히시는 것입니다.(탈출 9,14)

 

이 재앙을 겪은 파라오가 처음으로 하느님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탈출 9,27)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마음이 완고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0)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 떼입니다. 메뚜기 한 마리는 매일 자기 몸무게만큼 먹습니다. 메뚜기 한 마리 무게가 2g을 넘지 않으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1920-30년대 메뚜기 떼가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미국 땅의 두 배 정도 되는 1천 3백만 제곱킬로미터를 황폐화시킨 적도 있습니다. 이 재앙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농경의 신 오시리스, 추수의 신 세트, 곡식의 신 네프리, 들의 신 아누비스, 메뚜기의 신 세라피아 등을 물리치십니다. 고대 이집트의 타니스 비문에는 ‘신들이 메뚜기 떼로부터 보호한 풍요로운 들판’이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신들은 하느님의 권능 앞에서 우박의 재앙 뒤 이집트 땅에 얼마 남지 않은 곡물마저 지키지 못합니다.

 

아홉 번째 재앙은 암흑이 온 이집트를 사흘 동안 뒤덮는 것입니다. 이 재앙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최고 신이자 파라오의 아버지로 여겨진 아몬 레를 비롯한 태양신 아텐, 아툼, 세케트, 호루스, 하늘의 신 눗, 하토르, 일몰의 신 템, 햇빛의 신 수, 달과 별의 신 프타 등 최고 서열의 신들을 패배시키십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인들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죽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숫자 10은 충만함을 의미하는 완전수입니다. 이제 이 재앙으로 이집트에 내리던 일련의 재앙은 모두 끝납니다. 더 이상의 재앙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집트인들은 단 한 집도 이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탈출 12,30) 랍비 문학은 이 참혹한 재앙을 더욱 생생히 묘사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살아남으려 이스라엘 백성의 집으로까지 피신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파스카 양의 희생으로 재앙을 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재앙으로 죽음의 신 오시리스, 저승의 신 아누비스, 생명을 수호하는 신 이시스, 재생의 신 민, 출산의 신 헤케트를 패배시키십니다.

 

이제 왕권을 이어받을 맏아들까지 잃은 파라오는 더는 하느님의 권위를 거스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무조건적 항복을 선언합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1)

 

 

마지막 재앙에서 유다교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하나인 파스카 혹은 과월절의 기원이 나옵니다. 파스카는 ‘지나가다’, ‘건너뛰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사흐’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맏이를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그냥 지나가신 데서 유래한 기억의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로 이어집니다. 또한, 자신을 희생해 이스라엘 백성을 살린 파스카 양은 우리를 위해 대속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의 상징이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하느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납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자 파라오는 마음을 바꿔 병거 부대를 이끌고 그들을 잡으러 옵니다. 고대 전쟁에서 기동력과 돌파력을 갖춘 병거는 오늘날의 전차와 같은 역할을 하는 무서운 군사 무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던 아람 군대가 이집트 군대의 병거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날 정도였습니다.(2열왕 7,6-7) 그러니 이집트의 병거 부대와 마주친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떤 것은 당연하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여러 차례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대신 절망에 빠져 그분을 원망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앞으로 보여주실 기적은 이집트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당신이 누구신지 알리는 일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 군대로부터 도망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앞을 가로막는 바다를 가르십니다. 갈라진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건너고 난 뒤 다시 합쳐져 파라오와 이집트 군대는 수장되고 맙니다. 고대 이집트 비문은 파라오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며 ‘그를 거스르는 자는 무덤도 갖지 못하고 물속에 던져질 것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정작 물속에 던져진 이는 하느님을 거스른 파라오 자신입니다.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2)

 

 

물이 갈라져 그들을 구원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모세와 백성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탈출 15,1-18)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는 것이 마뜩잖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탈무드는 이때 천사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자 하느님께서 ‘내 피조물들이 수장당했는데, 너희는 노래를 부르느냐?’라고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이집트인들의 죽음을 축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구원을 기뻐하고 하느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시편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흥미로운 점은, 가나안 땅의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것과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성전을 세우는 것이 과거형으로 되어있는 점입니다. 이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세는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느님의 영원무궁한 주권을 믿고 있기에(탈출 15,18) 그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곧장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리라 기대했겠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길고 험난한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그들이 참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데, ‘다바르’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이 누구신지 배워나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흘 길을 걷는 동안 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강우량이 적은 광야에서 물은 곧 생명인데, 사흘을 목마름에 시달리고 겨우 마라라는 곳에 도착해서 찾은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청하는 대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아직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편 106,7은 ‘저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고 당신의 크신 자애를 기억하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갈대 바다에서 당신을 거역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나무를 넣자 쓴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교회 전통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생명을 준 이 단물을 세례수의 원형으로 보았으며, 그 물을 만든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석했습니다.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3)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으로 가기 전 마지막 기착지인 르피딤에 다다릅니다. 이곳에는 시 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와 울창한 대추야자나무 숲이 있어 ‘시나이의 진주’라 불립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불평하고,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 대한 반란은 결국 하느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갈증의 고통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기적들을 끊임없이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하느님을 신뢰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완고한 백성을 포기하거나 벌하는 대신 그들이 필요한 물을 주십니다.

 

탈출 17,6에는 ‘호렙의 바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호렙은 시나이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시나이산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여기서 호렙의 바위는 시나이산 부근 어딘가에 있는 바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호렙의 바위는 하느님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유익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창세 49,24)이시며, ‘우리 구원의 바위’(시편 95,1)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1코린 10,4은 물이 흘러나온 이 바위가 옆구리에서 물이 흘러나온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 일이 일어난 장소의 이름이 마싸와 므리바로 지어지는데, 탈출 17,7에 그 지명의 유래가 나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지 아닌지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시험에 실패했지만, 하느님은 물을 주심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시험을 통과하십니다. 시험을 뜻하는 히브리어 ‘니싸’에서 마싸라는 지명이 유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시비한 것은 곧 하느님과 시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리브’에서 므리바 지명이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리브는 소송을 의미하는 법적 용어입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원로들이 재판관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가 원로들을 모은 행위는 재판정을 연 것입니다.(17,6) 이 재판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누가 유죄를 선고받았는지는 자명합니다. [2021년 11월 21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4)

 

 

이스라엘 백성이 르피딤에 있을 때 에사우의 후손들인 아말렉족이 쳐들어와 전투가 벌어집니다.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익숙한 아말렉족에게 맞서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 지팡이를 쥐고 손을 뻗자 전세가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힘이 빠져 손을 내리면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후르가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까지 모세의 양쪽에서 두 손을 떠받쳤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전투가 벌어진 르피딤에 ‘떠받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세의 행위를 전쟁 지휘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전장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서 마치 장군들의 지휘봉처럼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가 수신호를 통해 병력 이동을 지시했다는 것이죠. 모세가 이집트 왕자였던 시절 전술에 대해 배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성경에서 팔은 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가 팔을 든 행위는 하느님의 권능이 이스라엘 백성 위에 내린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에서 기적들을 일으키는 데 사용한 지팡이를 손에 쥔 것 또한 이 전투에서 싸우신 분이 바로 이집트인들을 물리친 하느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탈출 17,15에서 모세는 승전을 기념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제단을 쌓습니다. 이 제단을 쌓는 목적은 단지 기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제단에서 제사를 바침으로써 후손들도 여기서 드러난 하느님의 힘을 끌어내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제단의 이름은 ‘야훼 니씨’(주님은 나의 군기)입니다. 이집트인들도 신들의 이름을 따서 부대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문 부대, 세트 부대 등입니다. 그리고 각 부대의 깃발은 그 신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군기는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도 부대별로 모일 수 있게 해주는 기준점이었으며, 부대의 수호신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장기(大將旗)가 부러지면 전쟁에 진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참고로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박해받던 교회에 자유를 가져다준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군대의 깃발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2021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5)

 

 

이집트를 떠난 지 삼 개월 뒤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시나이산에 도착합니다. 시나이반도에는 여러 산이 있기에 시나이산의 위치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갈라 4,25를 근거로 시나이산이 아라비아 반도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 시대 로마제국의 아라비아 주(州)는 시나이반도까지 포함했습니다. 4세기부터 전통적으로 믿어왔고 오늘날도 가장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장소는 시나이반도 남부의 제벨 무사(해발 2,285m)입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법의 토대 없이 국가가 존속할 수 없기에 당연히 수메르,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등 모든 고대 근동 국가들도 법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기원전 18세기에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은 특이하게도 절대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 법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법은 사례법의 형식을 띠고 있었습니다. 사례법은 ‘만일 X라면, Y한다’와 같이 조건절과 종속절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절대법은 어떤 예외나 조건도 허용치 않는 무조건적 명령이나 금령을 담고 있습니다. 이 형식은 법전보다는 고대 근동의 국제 조약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조약을 유지하기 위해 쌍방이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들이 명령과 금령의 형식으로 기록된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십계명의 절대법 형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명을 무조건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다 전승은 십계명을 핵심으로 하는 토라(율법)가 이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만들어져 하느님의 보물 창고에 구백일흔네 세대 동안 감추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라는 천사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것을 질투할 정도로 귀한 것이었으며, 토라가 주어질 때 하느님께서 일흔 민족(세상 모든 민족)에게 일흔 가지 언어로 그 소식을 선포하셔서 모든 민족이 떨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라가 수여됨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이 값진 십계명을 기쁘게 받아들였을까요? 탈무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위에 시나이산을 들어 올려 만일 그들이 이 계명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산을 떨어뜨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규정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겠죠. [2021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6)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에 머무는 동안 백성들은 아론에게 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모세에게 어떤 흠이있어 신벌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낯설고 위험한 광야에서 하느님의 보호와 이끄심이 절실히 필요한 백성들은 직접 그분과 통교할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게 되었는데, 사실 가나안에서 소의 상 자체가 신들의 형상은 아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청동이나 합금으로 만든 황소상들을 보면 그 등위에 신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황소상이 신들이 지상에 내려올 때 발판 혹은 옥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금 송아지도 하느님의 발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를 만든 행위 자체가 그들이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금 송아지와 하느님의 관계는 사마리아에서 발굴된 도자기에 적힌 ‘야훼의 송아지’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기원전 10세기 북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임금 예로보암은 금 송아지 둘을 만들어 베텔과 단 성소에 두고 하느님께 제사를 바쳤습니다.(1열왕 12,28-32)

 

그러나 기원전 8세기에 호세아 예언자는 금 송아지를 여러 번에 걸쳐 강하게 비난하는데, 이때는 금 송아지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바알 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상숭배의 경향이 시나이산 아래에서 벌써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탈출 32,6은 금 송아지를 만든 백성들이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방 종교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바칠 때 하던 행위입니다. 여기서 ‘놀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하크’는 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로서, 가나안에서 행해진 제의적 매춘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가나안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이 금 송아지 위에 서 있는 하느님을 원하는 순간 이미 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7)

 

 

시나이산 아래에서 금 송아지를 만든 사건으로 관계가 깨어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화해를 위해 모세가 중재에 나섭니다.

 

탈출 33,11의 ‘주님께서 모세와 얼굴을 마주한다’라는 표현은 모세가 실제로 하느님의 얼굴을 뵈었다는 말이 아니라, 친밀하고 솔직하며 허심탄회한 관계를 가리키는 관용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탈출 33,20에서 하느님은 당신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기도드리자 하느님은 모세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탈출 33,14) 이 구절을 직역하면 ‘내 얼굴이 너와 함께 갈 것이다’가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은 모세의 청을 받아들이시겠다고 대답하십니다.(탈출 33,17)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느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탈출 33,18) 고대 그리스어 사본은 이 구절을 ‘당신 자신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시킨 모세조차도 하느님과 마주 서서 그분의 얼굴을 뵐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초월적인 하느님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당신을 더 잘 알고 싶다고 한 모세의 청을 들어주셔서 신적 속성들을 밝혀주십니다. 여기 나오는 속성은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고, 분노에 더디시고, 사랑이 충만하시고, 충실하시고, 용서하시고, 정의를 실현하시는 등 7개입니다.(탈출 34,6-7)

 

중재에 성공한 모세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의 증거인 십계명이 적힌 돌판 두 개를 시나이산에서 다시 받아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이 빛납니다.(탈출 34,29절) 그런데 400년경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빛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란’을 뿔을 뜻하는 라틴어 ‘꼬르누따’로 잘못 옮겼습니다. 이후 교회 전승은 시나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이마에 뿔이 생겼다고 전해왔습니다. [2021년 12월 26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8)

 

 

어느덧 하느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 땅 근처에 이른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정찰병들을 파견합니다. 정찰병들이 40일 동안 가나안에서 정찰한 것은 여섯 가지입니다: 1. 군사적 능력 2. 인구수 3. 지리적 특성 4. 방어력 5. 토양의 질 6. 강수량 (민수 13,18-20)

 

그런데 정찰병들은 가나안 민족들이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이집트의 기원전 13세기 파피루스 아나스타시 I에는 민수 13,28에 나오는 아낙족이 키가 2,1-2,7m나 되는 사나운 전사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비록 이 기록이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치더라도, 아무런 근거 없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기에 정찰병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 이해는 됩니다.

 

정찰병들의 말을 들은 백성은 가나안에서 죽고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이집트 종살이로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김으로써 또다시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당신에 대한 끝없는 불신에 분노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겠다고 하시자, 모세가 다시 중재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마음을 돌이킬 네 가지 이유를 댑니다: 1. 이집트인들의 평판 2. 다른 민족들의 평판 3.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4. 자비와 정의에 대한 하느님 자신의 말씀(민수 14,13-19)

 

모세의 중재에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자비를 동시에 실현하시는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먼저 하느님을 신뢰한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한 10명의 정찰병은 백성을 선동한 죄의 대가로 즉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열 번이나 시험(10은 완전수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끝없는 불신을 강조합니다)한 20세 이상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20세 미만의 어린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대교체를 위해, 즉 20세 이상의 성인이 모두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40년간 방랑하게 됩니다. 이 기간은 가나안 정찰 기간 40일의 각 날을 1년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19)

 

 

광야를 방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오아시스 지역인 카데스 바르네아에 도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당연히 그곳에서 물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또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가 불평합니다. 불평의 내용은 이전보다 더욱 기가 막힙니다. 이들은 또다시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하느님께 죄를 지어 광야를 떠돌다가 죽은 자기 윗세대 사람들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합니다.(민수 20,3-5) 모세의 중재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들이 이렇게 배은망덕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랍게도 모세마저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위에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만 하셨는데, 모세는 백성에게 마치 자기가 물을 주는 듯이 말하고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친 것입니다(민수 20,10-11). 자기 손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자신 안에 힘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일까요?

 

이로써 백성은 물을 얻게 되었지만, 정작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론까지 함께 벌을 받은 것은 그가 모세에게 동조 내지는 방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민수 20,12의 모세가 믿지 않았다는 하느님의 말씀은 모세의 교만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그의 교만한 행동으로 하느님의 거룩함을 가렸습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약속의 땅을 빼앗겼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이름은 ‘므리바’입니다. 이 단어는 다툼을 뜻하는데, 민수 20,13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시비하였기에 생긴 이름이라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원래 이곳이 고대로부터 유목민족들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던 장소였기에 유래한 이름으로 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곳은 탈출 17장에 나오는 시나이산 근처의 므리바와는 다른 곳입니다.

 

어쨌든 40년의 광야 생활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가 다 되어가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 세대보다 더 못난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모세까지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더욱 집중적이고 역동적인 신앙교육을 하시게 됩니다. [2022년 1월 9일 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20)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남쪽의 갈대 바다를 향해 내려가다가 동쪽으로 에돔 땅을 우회해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게 하십니다. 이에 기껏 가나안 근처까지 와놓고는 다시 척박한 광야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는 백성은 불평합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불평하는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십니다. 이것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주는 맹독성의 뱀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등에 붉은 반점이 있는 뱀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성이 뉘우치자 모세가 하느님께 중재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께서 용서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시키신 대로 모세가 불 뱀처럼 붉은빛을 띤 구리로 뱀의 모형을 만들어 기둥에 달자, 그것을 본 백성은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이 기둥에 매달린 뱀은 치유의 상징이 되어 오늘날 유럽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응급차에 그려져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어떤 위험한 것의 형상이 그것 자체를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네겝 광야에 있는 팀나의 미디안족 신전에서 발견된 기원전 12-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구리 뱀 모형이 이런 용도로 사용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뱀 모양의 부적을 몸에 지니면 뱀에 물리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불 뱀으로부터 구한 것은 구리 뱀 자체의 주술적인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구리 뱀은 백성의 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죠.

 

광야에서 만든 이 구리 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도 보존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불행히도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2열왕 18,4) 죄를 기억해야 할 대상을 두고 또 다른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아라비아 숫자가 없던 시대에는 히브리어 알파벳이 숫자의 기능을 했습니다. 이 숫자를 분석하는 유다 주석 방법을 게마트리아라고 하는데, 초대 교회도 이 흥미로운 유다 주석 전통을 받아들였습니다. 게마트리아 분석에 따르면, 메시아의 철자가 가리키는 수를 모두 더하면 358인데 이것은 뱀(히브리어로 나하쉬)의 철자가 가리키는 수를 합한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초대 교회는 기둥 위에 달린 구리 뱀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연결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구한 뱀을 온 인류의 생명을 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형(豫型)으로 보았습니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21)

 

 

드디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야에 도착합니다. 이제 요르단강만 건너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가 출애굽 제40년 11월 1일이니(신명 1,3),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에서 유랑 민족으로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참고로 고대에는 2022년과 같은 절대적 연대를 사용하지 않고 아무개 왕 통치 몇 년, 어떤 중요한 사건 후 몇 년 같은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므리바에서 교만의 죄를 지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했다고까지 표현될 정도로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그분의 뜻을 필요할 때마다 알려줄 지도자가 더는 이스라엘에 없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전해 준 율법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지금부터 스스로 율법을 해석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야 합니다. 야훼 종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40년간 동고동락한 백성을 홀로 떠나보내야 하는 모세는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되고 크게 번성하기를 바라며 신신당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4-6)

 

전 존재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이 구절은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 말씀으로서 아침저녁 기도 때 이마와 왼쪽 팔에 부착하는 성구갑인 트필린과 문설주에 달아놓는 메주자에 들어갑니다.

 

모압 평야에는 해발 835m의 느보산이 있습니다. 느보산 정상에서 요르단강 건너편의 예리코를 내려다보며 모세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간청했지만(신명 3,25),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모세가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원죄 이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최고 수명인 120세를 다 채우고 죽었기 때문입니다.(창세 6,3)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강렬한 교훈을 주고자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2년 1월 23일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모세 (22)

 

 

결국,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때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미드라시는 이렇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자. 네가 죽을 날이 가까웠다.” 그러자 모세는 자루 옷을 입고 재 속에서 뒹굴며 간구하였다.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분께서 천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려가 하늘 궁창의 모든 문을 잠가라. 모세의 기도는 장애물 없는 칼과도 같아 문을 찢고 자를 수 있다.”

 

모세가 아뢰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고작 이스라엘이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기까지 제가 고생한 사십 년 노동의 대가란 말입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이 선고는 취소할 수 없다.”

 

모세가 아뢰었다. “주님, 제가 살아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요셉의 유골이 들어간 것처럼 저도 그렇게 들어가겠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됐다.”

 

그러자 모세는 하늘과 땅, 해와 달, 별과 행성, 바다를 찾아가 말하였다.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다오.”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 정도면 우리가 우리한테 자비를 베풀겠다.”

 

거룩하시고 찬미 받으실 분께서 말씀하셨다. “모세야, 내가 두 가지를 맹세한 바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고자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네가 죽어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한 맹세는 네가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해서 너의 간청 때문에 취소하였는데, 지금 너는 다시 나의 맹세를 취소하고 네 간청을 들어 ‘부디 건너가게 해 주십시오.’ 하는구나. ‘건너가게 해 주십시오.’를 지키고자 하면 ‘용서하여 주십시오.’를 취소하고, ‘용서하여 주십시오.’를 지키고자 하면 ‘건너가게 해 주십시오.’를 취소하여라. 모세는 듣고 그분 앞에 아뢰었다.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 모세가 죽겠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누구든 손톱 하나도 다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 모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실제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닿고자 했던 약속의 땅을 바라만 보면서 죽어야 했던 모세의 고뇌를 절절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백성의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위대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2022년 1월 30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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