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셈’ 가문의 영광, 아브라함 가계(家系)마다 각 가문의 계통과 혈연관계를 보여주는 족보가 있습니다. 개인의 집안 내력과 뿌리를 알 수 있는 역사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족보가 지니는 가치는 더욱 큽니다. 창세기도 이처럼 족보를 통하여 구원의 내력과 뿌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구원역사 안에서 그분의 약속이 어떻게 각 개인에게 주어졌는지, 또 하느님의 구원활동이 어떻게 중단 없이 지속되어 왔는지를 족보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족보는 창세기 전체를 구성하는 뼈대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큰 틀인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경 속 족보에는 발음하기조차 쉽지 않은 이름들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나열되고 또 무미건조한 구절이 반복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따분한 내용’이라고 낙인찍히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족보가 지닌 그 외형적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족보는 한 세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대를 시작할 때, 즉 새로운 장면으로 바뀌는 전환점에서 사용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족보가 하고 있는 역할이 단순히 세대의 나열이 아니라 앞의 이야기와 뒤에 이어질 새로운 사건의 연결 고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선악과 사건, 대홍수, 바벨 탑 등 굵직굵직한 사건 이후 선택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 어김없이 그 사람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족보는 마치 새로운 이야기의 전개를 앞두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쉼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창세기의 족보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양상은 바로 ‘선택과 배제’ 혹은 ‘불특정 다수 중에서의 선택’이라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아벨의 죽음 이후 카인과 셋에서 카인이 배제되고 ‘셋’이 선택되는 것이라든지,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는 ‘셈’이, 또 테라의 세 아들 가운데에서는 ‘아브라함’이 선택되는 것이 그러합니다. 이처럼 특별히 선택된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 구원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족보’입니다. 또한 구원사에서, 그리고 창세기에서 전환점을 구성하는 인물인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원역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합니다. 바벨 탑 사건 이후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졌음을 알려주면서 특별히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지는 ‘셈’ 가문의 족보가 기술됩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먼저 그의 족보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가 한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벨 탑 건축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셈’은 히브리어로 “이름”을 뜻합니다. 이제 ‘셈’ 가문의 영광인 아브라함의 “이름”이 드높여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드높여지는 것은 죄와 반역이 가져온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보이시는 자애입니다. 아울러 만민을 위한 구원의 도구인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자만과 오만에 가득 찬 인간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속해있는 ‘셈’의 족보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10개의 족보 중에서 다섯 번째 족보입니다. 셈의 족보는 위-아래의 수직관계(11,10ㄴ-25)로 긴 세대를 나열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합법적인 후손의 나열이기도 합니다. 셈의 족보에서 조상의 선후 항렬을 나열하던 수직적 계보가 갑자기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의 족보(11,26)에서는 수평적 족보로 바뀌며 테라의 세 아들이 기술됩니다. 바꿔 말하면 수직적 족보에서 수평적 족보에로의 전환점이 바로 아브라함의 탄생인 것이지요. 이처럼 아담에서부터 시작되는 원역사는 아브라함의 출생으로 끝맺습니다. 아담의 족보(5장)와 셈의 족보(11장)는 원역사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족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셈까지의 족보이고 ‘셈의 족보’는 셈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입니다. 두 족보 모두 똑같이 10세대를 기록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담의 족보와 셈의 족보에는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인간 수명의 변화입니다. 홍수 이전과 이후에 평균 수명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급감하는 족장들의 수명은 홍수와 더불어 인간에게 내려진 무거운 벌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아담의 족보에서 마치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선언이 셈의 족보에서는 생략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누구를 몇 살에 낳고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선언구가 셈의 족보에서는 간략하게 ‘낳았다.’라는 말로 축약되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후 그 벌로 죽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셈의 족보에서는 누락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셈의 족보가 ‘죽음’이 아니라 ‘출생과 미래의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분명 인간의 수명은 줄어들었지만 ‘생명의 역사’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지요. 아울러 셈 의 족보에서 ‘죽었다’라는 선언이 생략된 이유는 그 족보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아브라함의 등장’을 알리는 구속사의 여명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느님 구원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셈’의 족보는 아담의 족보와는 달리 많은 불필요한 서술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셈의 족보가 오로지 수직적 족보의 구성으로 긴 세월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이유는 독자들의 시선이 가능한 빨리 아브라함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은 아닐까요? 또한 셈의 족보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의 죽음을 통보하며 원역사의 문을 완전히 닫아 겁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의 등장이 가져오는 대전환이 구원사의 새로운 문을 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모든 민족에게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셈’에게서 시작되어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이 족보는 이들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구원의 정점을 이룰 것입니다.(루카 3장) [월간빛, 2021년 8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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