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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사도(使徒 ) 참고하세요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3 조회수17,016 추천수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2사도(使徒 )

 
사도 ◆   
한자 使徒
라틴어 Apostolus
영어 Apostle
그리스어 Apostolos
출처 : [용어사전]

   1. 의의 : 사도는 그리스어로 ‘파견된 사람’, ‘소식의 전달자(Apostolos)’라는 뜻이다. 이 칭호는 예수님의 12제자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성서에서 사도로 불린 자는 사도 바오로를 비롯해서 모두 14명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사명과 권한을 이들에게 주시어 온 세상파견하셨다.

   2. 12사도 : 열두 사도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베드로의 동생), 야고보(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의 형, 長야고보), 요한(요한 복음·3개 서간·묵시록의 저자), 필립보(베드로와 안드레아와 같이 벳사이다 출신), 발토로메오(나타나엘), 토마(디디모), 마태오(레위라고도 함, 세리, 마태오 복음 저자),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次야고보), 유다(타데오, 차야고보 형), 시몬(가나안 혁명 당원), 마티아(유다 대신 선택받음) 등이다.

   3. 베드로: 베드로는 사도의 으뜸으로 그에게는 그리스도에 의해 특별하고도 유일한 직무가 주어졌다(마태 16,18).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단교회를 통치하는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랍비들처럼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을 받았고, 그분에 의해 권한을 받았다.

   베드로는 마티아선택할 때 자격을 검토하였다(사도 1,21-22).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단성령 강림절에 후보 마티아요셉 바르삽바(유스도) 중에서 마티아를 사도로 선택한다.

   4. 바오로 : 사도 바오로는 예외였다. 그의 소명은 회개은총과 더불어(로마 1,1)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갈라 1,1).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항상 그의 인격적인 무가치함을 의식했으며(1고린 15,9),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사도 9장) 그가 체험한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에 근거를 두었다.

   5. 임무 : 사도들의 기본 임무는 그리스도 부활의 실재를 증거하는 것이었다(사도 1,8; 2,22; 10,39-41). 이 증거의 행위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목격 증언(사도 10,32)과 느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실재에 대한 그리스교적 신앙의 증거가 그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이 기본 임무는 후계자들에게 이어진다.

   따라서 이들의 후계자인 주교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권위로 조직하고(신품권), 가르치고(교도권), 관리할(사목권)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전 교회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았던 것처럼 그 후계자인 교황도 모든 주교들과 함께 한 단체, 한 몸이 되어 하느님교회 전체에 대한 신품권과 교도권사목권을 갖는다. → 교계 제도

   6. 열둘의 의미 : ‘열둘’이라는 숫자의 중대성은 베드로유다 대신 마티아를 채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마태 19,28; 루가 22,30) 열두 옥좌에 앉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잘못 이해하였다. 사도들은 최후의 심판과 연결하여 생각했으나, 실은 새로운 이스라엘 교회 위에 있는 사도들에게 미래의 권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무관하지 않다. 이 지파들은 생명의 열두 근원이므로 이스라엘의 기초가 된다. 사도들은 새로운 이스라엘교회초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을 계승한 것이라고 요한 묵시록은 말하고 있다(21,12-14). 따라서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로서 그리스도 권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에페 1,20; 1고린 3,11).

 


사도들의 생애

1.‘使徒’란? :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뽑은 12명의 제자로, 어원은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보내어진 자’ 또는 ‘파견된 자’라는 의미. 원래 열두제자는 가리옷 유다가 포함되지만, 유다가 배반하고 죽은 이후 마티아가 제비뽑기를 통해 사도로 정해졌다.
‘부르심’을 받기 전의 사도들은 20대 전후의 청년들(베드로만 기혼자)이었고 우둔한 사람들(마르 4,10)이었으며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성령강림이후 사도들은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받아 열렬하고 용감한 복음 선교사들이 되었다.
초세기 교회에서 사도란 예수의 공생활 기간 동안 직접 그를 모시고 다녔던 사람들에게만 붙여진 호칭이었으며, 또 사도는 예수께서 직접 선발하고 예수 부활의 증인이며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라는 자격조건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공동체의 사도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계시에 따라 자신이 사도가 되었음을 강조했고, 예루살렘 사도들도 바오로의 계시 체험을 그리스도의 현시로 인정하고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 ‘12’가 갖는 상징적 의미 :

 

예수 그리스도는 12사도를 뽑은 다음에도 72명의 제자들을 따로 뽑을 만큼 제자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에서 왜 12명만 사도로 선발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배경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구약의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 12명을 조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유래했다. 모세 또한 12지파를 대표한 12명의 정찰대를 뽑아 맨 처음 약속의 땅으로 보냈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12사도를 선택,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약속’인 복음을 전하도록 새 땅인 온 세상으로 파견하신 것이다. 즉 예수께서 12명을 선택해 사도로 삼은 이유는 12지파로 표상되는 새로운 이스라엘, 새 하느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3. 12使徒와 현재 교회의 연계성 :

 

12사도의 직무는 교회 안에서 주교들을 통해 계승된다. 주교들은 12사도의 후계자로서 사도들이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되어 수행한 그 사명을 이어 받는다. 그러나 사도들이 받은 사명은 단지 주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신분에 따라 나름대로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되고 온 세상에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이것을 사도직이라고 부른다. 사제는 주교의 협조자로서, 수도자는 복음적 권고를 실천함으로써,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복음의 증거자가 되고 하느님나라 건설에 기여함으로써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4. 12사도들의 생애

“나를 따라 오너라(Follow Me)”(루가 9,59-62). 이 한마디 ‘부르심’에 생업을 접고 예수를 선택했던 제자들, 열두 사도. 이후 사도들의 삶은 ‘수난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었으며 ‘예수의 길’이었다. 이들의 생애를 되새겨 본다.

1). 베드로 : 전체 교회 돌볼 ‘반석’, 예수 부활 최초의 증인.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였던 사도 베드로는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마르 1,16-20) 사도가 됐다.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사도단의 으뜸으로서 전체교회를 돌볼 책임을 받았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수난 직전 세 차례나 예수를 부인했으나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 부활의 최초의 증인이 된 아주 인간적인 인물. 충동적이고 분별력이 없고 낙천적인 인물인 사도 베드로는 성령강림 후 주로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소아시아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가 로마에 간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하다.

 

전승 ‘클레멘스의 여행 기록’에 따르면, 베드로는 한 장의 수건을 항상 가슴에 넣고 다니며 넘쳐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 이유는 주님의 다정한 말씀과 주님 곁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억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 새벽 첫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기도를 바치고는 심하게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첫 닭의 울음은 사도 베드로를 상징한다. 어부와 선원, 자물쇠공, 시계공, 대장쟁이, 도살업자의 수호성인이다.
문장은 붉은 색 바탕에 그려진 은색의 천국 열쇠와 황금색의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다. 2개의 열쇠는 베드로가 그리스도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아 하늘문을 여닫을 수 있는 권한을 받았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2). 요한 :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아시아지역 돌며 선교.
복음서 저자이기도 한 요한은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된 인물. 예루살렘 교회의 세 기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승에 따르면 66년 소아시아로 옮겨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파트모스 섬에 유배돼 ‘요한 묵시록’을 썼고 에페소로 돌아와 복음서와 3통의 편지를 썼으며, 기원 100년께 90세로 생애를 마쳤다.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愛弟子인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됐으며, 박해 때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던져졌으나 화상 하나 입지 않고 가마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3). 大 야고보 : 열두제자중 첫 순교자, 스페인 교회 수호성인.
사도 요한의 친형인 사도 야고보는 성령강림 후 갈릴래아에서 선교했고 기원후 44년 헤로데 아그리파 1세 때 순교,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된 인물이다.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데 이는 스페인 선교가 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전승에 기원한다. 그는 ‘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불같이 급한 성격과 사방에 떨친 설교의 위력 때문이다.

4). 안드레아 : 사도 베드로의 친동생, ×자 십자가에 못박혀.
사도 베드로의 친동생인 사도 안드레아는 형과 달리 성실하고 온건하며 신중한 성격의 인물로, 성서에 형 시몬 베드로가 단 한번의 설교로 3,000명을 입교시킨 기록을 남긴 반면 안드레아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큰 어부, 안드레아는 작은 어부로 불린다. 이를테면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해 나눔의 영광을 받았던 사도였던 셈이다. 어부와 그리스, 러시아,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5). 필립보 : 베싸이다 출신의 사도, 프리기아 지방서 순교.
사도 필립보는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에 아무 기록도 없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는 소명 때 외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요한 6,5-7). 베싸이다 출신인 그는 사도 안드레아와 특히 친하게 지냈으며 그와 함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았다. 포목업자와 모자 제조업자의 수호성인.

 

6). 토마스 : 의심 많고 고집 센 사람, 온몸이 창에 찔려 순교.
쌍둥이 형제의 한 사람인 사도 토마스의 별명은 ‘의심 많은 사람’‘증거를 볼 때까지 믿지 않고 고집이 센 사람’‘쌍둥이(양면적 성격 때문에)’등으로 불린다.
의심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진리를 알기 위한 의심이었고, 그는 일단 진리를 알게 되면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따른 인물이다. 침울한 성격이지만 용기 있고 충실하고 헌신적인 사도였으며, 언제나 주님을 위해 죽음을 준비했던 인물이다. 지금의 이란 동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북쪽, 페르시아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온몸이 창에 찔려 순교한 사도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성인이다.

7). 바르톨로메오 : 인도서 복음 선교활동, 산채로 피부벗겨 순교.
성서에서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사도의 명단을 나열할 때뿐이다.(마태 10,3) 요한 복음서에는 그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 기록돼 있는 가나의 나타나엘이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소아시아에서부터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에서까지 선교활동을 했다.

 

 8). 마태오 : 사도이자 복음서 저자, 순종 용기 인내의 인물.
사도이자 복음서 저자인 마태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이후의 행적은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아 그 뒤의 활동은 모두 전승에 의한 것이다. 처음에는 유다인들에게 선교했으나 이란 동북부와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등 다른 지방에서 선교하게 됐을 때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복음을 모국어로 써놓은 것이 '마태오 복음서'다.
전승과 전설에 따르면 사도 마태오는 순종과 용기의 인물이었으며, 참을 수 없는 모욕까지도 이겨낸 인내의 인물이었다. 제자가 되기 전 마태오는 레위라고 알려진 가파르나움의 세리였으며,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이다.

 

9). 小 야고보 : 예수 닮은 '주의 형제', 사도중 처음 미사봉헌.
'주님의 형제'라 불렸는데, 이는 야고보가 그리스도와 얼굴 모양이 아주 닮아서 많은 이들이 그를 예수 그리스도로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올리브 산에서 체포할 때 대사제들, 성전 수위대장들과 원로들이 오해하여 소 야고보를 잡지 않도록 제자중 한 사람인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신호를 삼았다는 성 이냐시오의 편지 증언도 있다. 술이나 육식을 하지 않고 머리도 깎지 않고 향유를 바르지도 않았던 소 야고보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기 때문에 양쪽 무릎이 발뒤꿈치와 같았다고 전해진다. 소 야고보는 특히 사도들 가운데에서 미사를 드린 최초의 인물로 전해진다.

10). 시몬 : 사람 낚는 어부의 상징, 육신이 톱에 잘려 순교.
사도로 선정되기 전에는 바리사이 사람들로 구성된 열혈당원의 일원이었던 사도 시몬은 열두 사도의 명단에서 언제나 끝에 나열돼 있다. 시몬은 언제나 주님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축복 받지 못한 자들을 늘 동정하였기 때문에 가슴에 슬픔을 안고 산 사도였다. 어떤 전승에서는 예루살렘의 제2대 주교 시몬(시메온)과 동일시하고 있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페르시아에서 체포돼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나는 형벌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지며 동방 전승은 에뎃사에서 선종한 것으로 돼 있다.
11). 유다(타대오) : 배 타고 다니며 선교,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타대오(마태 10,3 ; 마르 3,18)로,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기록하고 있다. 이 둘은 같은 사람으로 타대오는 유다의 별명으로 추정된다. 요한 복음서에 ‘가리옷이 아닌 유다’(14,22)라고 한 것은 열두 제자 중 두사람의 유다를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배반자 유다와 구별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그의 행적은 요한 복음서에서 최후의 만찬때 예수께 질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승이다. 유다는 예수께서 승천한 후 에뎃사와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선교했다. 유다는 배를 타고 수많은 항구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다고 전해진다.

 

12). 마티아 : 설교 다니며 기적 행해, 돌에 맞고 목잘려 순교.
배반한 제자 가리옷 사람 유다 대신에 사도로 뽑힌(사도 1,22-26) 마티아는 교회에서 ‘겸손의 인물’로 꼽힌다. 전승에 따르면 마티아는 수덕생활에만 전념했으며, 유다 지방에 설교하러 다닐 때 시각장애자를 볼수 있게 하고 나병을 고쳐주며 악령을 쫓아내는 등 여러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의 한 사람인 마티아사도는 유다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돌에 맞고 목이 잘려 순교했다고 전해지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12사도 교리공부

 

 

 

 

사도 성 베드로(San Pietro Apos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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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6월 29일. 초대 교황. 흔히들 그리스도의 수제자()라고 일컫는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이라는 헬라식 이름이었는데, 예수가 그에게 케파(Cephas: 반석이라는 뜻)라는 아람어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이름을 헬라어로 옮긴 것이 페트로스이다. 그는 요나의 아들 어부로서, 원래는 베싸이다에 살았으나, 예수의 공생활이 시작될 때쯤 결혼을 하여 가파르나움에 살았다. 그는 갈릴래아(또는 베싸이다)에서 예수를 만나 그의 첫 번째 제자 되었다. 성서에는 성 베드로를 출중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의 지도력은 여러 경우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제자들 전체를 대표하며, 그리스도부터 천국의 열쇠를 하사받아 신의 교회의 반석, 즉 교황으로 선택받았다. 예수의 천상 승천 후, 성 베드로는 명실공히 교회의 으뜸가는 지도자 되었다. 로마로 가서 성 바오로와 함께 로마 교회를 세우고, 네로 황제의 치하에서 감히 그리스도와 같은 식으로 죽을 순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려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무덤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다.

 

사도 성 대(大)야고보(San Giacomo detto Magno Apostolo)

 

 

축일 7월 25일. 에스파냐,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수호 성인. 어부 제베대오와 살로메(성모와 인척 관계)의 아들사도 성 요한의 형. 야고보란 '발꿈치를 잡는 자' 란 뜻이다. 갈릴래아 호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가 동생 성 요한과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사도들 중에서도 성 베드로와 성 요한과 함께 스승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측근이다. 그리스도에게 그 거친 성격 때문에 동생 성 요한과 함께 '천둥의 아들들(Boanerges)' 이란 별칭을 받았다. 사도들 가운데 처음으로 순교 여행을 떠났으며,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박해 때에 에스파냐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를 당해 사도들 가운데 최초로 순교당했다. 그의 성 유해는 처음엔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그 후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장되어 모셔졌고, 알폰소 국왕은 그 묘지 위에 웅대한 성당을 건축하여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사도 성 소(小)야고보(San Giacomo il Minore Apostolo)

 

축일 5월 3일. 알패오와 마리아(성모의 친척)의 아들. 야고보서의 저자. 작은 야고보라고도 한다. 예수보다 2, 3세 위이며 예수와 혈통의 인연이 있는 사도이다.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다' 란 뜻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생활을 해 육식과 음주를 하지 않았고, 틈만 있으면 기도에 몰두했다. 율법에 철저한 그는 신전의 예식이나 그 외의 유다인의 선량한 습관을 몹시 존중하며 극히 경건했다. 성 소 야고보는 예루살렘 최초의 주교 되어 야고보서를 서술하였다. 예루살렘 시장 한나 등의 유다인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진 다음에 돌에 맞고, 톱에 잘려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사도 복음사가 성 요한(San Jannes Apostolo ed evangelista)

 

축일 12월 27일. 사랑의 사도. 요한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그 복음의 심오함 때문에 다른 저술가들이 파고 들어가지 못한 높은 곳을 날아오르는 신학의 독수리로 여겨진다. 갈릴래아의 어부 제베대오와 살로메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사도 성 야고보와는 형제로, 성격이 격하여서 예수로부터 '천둥의 아들들(Boanerges)' 로도 불리었다. 당초에 세례자 성 요한의 제자였으나 뒤에 예수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형인 성 대 야고보와 성 베드로와 함께 예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성 바오로는 이 셋을 교회의 기둥들이라 칭하였다. 예수의 고난 때 사도들 중 유일하게 스승을 따랐으며, 아들을 잃은 성모 마리아를 그녀의 임종 때까지 모시며 섬겼고, 헤로데 아그리파에게 박해를 당해 에페소스로 피해 그 곳 소이사의 7대 교회들인 에페소스,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이아 교회들을 지도했다. 제 2의 네로라 불리는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그도 마침내 잡혀 파트모스 섬에 유배를 갔다. 그는 한 평생 사랑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였다. 성 요한이 자기를 해치기 위해서 건네진 독이 든 잔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사도 성 요한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100세의 고령으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사도 성 필립보(San Filippo Apostolo)

 

축일 5월 3일. '필립보' 란 말(馬)의 친구란 뜻이다. 사도 성 필립보는 성 베드로, 성 안드레아와 마찬가지로 겐네사렛 호숫가 부근에 있는 베싸이다 출생으로 본래 세례자 성 요한의 제자였으나, 후에 그리스도가 자기보고 따라오라고 하자 즉시 그대로 따라갔다. 그는 곧 친구인 성 바르톨로메오를 찾아가서 그 역시 사도로 만들었다. 성 필립보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 그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는 헬라인들을 위해 중개를 맡았다. 세상 물정에 능란했던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했고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히에라 폴리스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

 

사도 성 토마(San Tommaso Apostolo)

  

축일 7월 3일. 건축가의 수호 성인. 디디모(헬라어로 쌍둥이란 뜻)의 토마라고도 한다. 강인한 의지와 용기가 있었지만 '의심 많은 토마' 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사도들 사이에서 의심이 많고 질문이 많기로 정평이 났다. 그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다 보니 성격상 다른 이들과 쉽게 융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분명 기질상 쾌활하거나 명랑하기보다는 다소 우울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그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가 예수의 오상을 보고 만져 본 뒤에야 믿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의심과 질문은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의심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하려는 삶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멀리 인도 서남단 지방인 말라바르(Malabar)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손수 교회를 지었다고 하며, 이교도들의 창에 맞아 순교하였다. 시리아 교회도 말라바르인들의 전례를 받아들여 이 날에 성 토마 사도를 경축한다. 이 날은 사도의 성 유해 일부를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시리아의 에데사로 옮긴 날이다.

 

사도 성 안드레아(San Andrea Apostolo)

 

축일 11월 30일. 러시아와 스코틀랜드의 수호 성인. 사도 성 베드로의 동생. 본디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였으며 갈릴래아 호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세례자 성 요한의 제자였다. 사도 성 필립보와 함께 헬라인들을 예수에게 소개했고,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질문했고, 오병이어 기적에서 한 소년이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졌다고 보고하였다. 성령 강림 후, 그는 하로데 아그리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복음을 전했으며, 그 곳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스타키스 주교를 임명하였으며 마침내 그리스의 아카이아의 파트라스 시에서 에게오 총독에 의해 X자형 십자가(일명 성 안드레아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 그의 성 유해는 357년에 콘스탄티노플로 이송, 1208년에 이탈리아의 아마르피로 옮겨졌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초대 세계총대주교로 생각하며, 10월 31일을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다.

 

사도 복음사가 성 마태오(San Mattaeus Apostolo ed evangelista)

 

축일 9월 21일. 은행원, 회계사, 장부 기장자의 수호 성인.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 마태오란 '신의 은덕을 받은 자' 라는 의미다. 갈릴래아 출생으로 알패오의 아들이며 레위족이었다. 본래는 로마의 권력을 위해 자기 동족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리(: 세금 징수 청부인)로서 가파르나움 지방에 근무하였는데, 그 당시 규정된 세금을 거두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부당한 행위를 하며 착취하여 동족들로부터 조국의 반역자로서 미움을 받게 되었고 바리사이파는 죄인 취급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를 불러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성 마태오는 재산이 많이 있었고, 제자들 중 가장 학문과 사교에 뛰어났다.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그 어느 곳에서고 무수한 이들을 개종시켰으며 에우지포 왕의 왕자를 중병에서 치료한 결과 왕족들까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성녀 이피제니아 공주는 평생 동정을 서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히르티아쿠스라는 남자가 왕위에 올라 성 이피제니아를 아내로 취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히 이를 거절하자 대단히 분노하며 그것을 성 마태오의 술책이라고 생각하고 사도를 잡아 갖은 고문과 형벌을 가한 후 땅에 못박아 순교하게 했다. 그의 성 유해는 후에 남 이탈리아의 살레르모에 이송되었다.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San Bartolomeo Apostolo)

 

축일 8월 24일. 치즈 상인, 미장공, 석고 세공인의 수호 성인. 갈릴래아의 가나안 출생하였으며, 바르톨로메오는 톨로메의 아들(바르)이란 뜻이고, 본명은 나타나엘(Nathanael: 신의 선물)이다. 사도 성 필립보의 전도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 리카오니아에서 복음을 선포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는 마침내 아르메니아의 알바노 시에서 이교 사제들의 선동으로 아스티야제스 국왕에게 박해를 받아 산 채로 전신의 피부가 벗겨지고 난 다음 십자가에 못박히고 목이 잘려 순교했다 전해진다. 그이 성 유해는 알바노 시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다라 지방으로 옮겨졌고, 6세기에 이르러서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근처에 있는 리파리 섬에 이송되어 보관되었으나, 사라센 인들의 침략을 받아 이탈리아의 베네벤토와 로마를 거쳐 티베르 강 가운데 있는 한 섬에 건축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의 홍대리석 영구 속에 모셔졌다.

 

사도 성 시몬(San Simone Apos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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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일 10월 28일. 가나안 출신으로 사도 성 야고보와 성 유다 및 요셉의 형제다. 사도로 선정되기 전에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이자 엄격한 율법주의자인 바리사이파인으로서 혁명당(Zeal-ot)의 일원으로 유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테러리스트로서 로마 제국과 싸웠으며, 사도로 선정된 후에는 사도 성 마태오와 다소 적대적인 관계가 있었으리라 추측되나(마태오 성인은 세리였으므로), 스승 예수에 의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근동 지역에서 선교를 했으며 나중엔 페르시아에서 전교를 하다가 체포되어 톱으로 두 동강이 나 순교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 시몬이 에데사에서 평화로이 운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5월 10일을 그의 축일로 정하였다.

 

사도 성 유다(San Giuda Apostolo)

 

 

 

축일 10월 28일. 이스가리옷 유다와는 다른 인물이다. 사도 성 소야고보의 형제로 예수와 친척 관계이다. 타대오(Thaddaeus)라고도 불리며, 열렬한 성격의 논쟁가 사도 성 유다는 최후의 만찬 때, 스승에게 왜 사도들에게만 나타나고 세상엔 나타내 보이지 않는지 질문하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수많은 항구들을 찾아 다니며 아라비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성 시몬처럼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 18세기 말부터 그는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 특히 어려움을 당했을 때 대도(代禱)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도 성 마티아(San Mattia Apostolo)

 

  축일 5월 14일. 기술자의 수호 성인. '마티아' 란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흔한 이름인 마티티아(Mttithiah: 야훼의 선물)의 약칭이다. 예수의 승천 후, 사도 성 베드로의 주재로 자살한 배신자 이스가리옷 사람 유다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새로 선택된 마지막 사도 성 마티아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교도 나라를 순회하며 열심히 전교했는데, 마침내 에티오피아에서 돌에 맞고 큰 도끼에 의해 머리를 잘려 순교했다. 성 마티아의 성 유해는 성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후 성 헬레나 황후에 의해 독일의 트리에르(Trier) 지방으로 운반되었고 노르만족의 침공으로 분실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어 그 읍의 대성당에 지금도 안장되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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