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괴력과 매력의 소유자, 삼손과 들릴라 삼손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재미는 물론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지르인’, 곧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이었습니다. 나지르인에게는 지켜야 할 몇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이것은 삼손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부터 지켜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삶이 거룩하여야 했던 나지르인은 일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세 가지 규율을 꼭 지켜야 했습니다. 첫째, 모든 종류의 술을 금할 것. 둘째,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말 것. 셋째,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모나 형제가 죽었더라도 죽은 이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태양’을 의미하는 삼손은 판관기에 등장하는 열두 판관 중 마지막 판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판관기는 실패의 역사를 담은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판관기 전체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인 ‘이스라엘의 죄 - 심판 - 회개 - 구원 - 죄’라는 순환고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어떤 민족으로부터 압제를 받게 되면 고통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부르짖고, 하느님께서는 판관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뢰는 오래가지 못하고 또다시 죄에 빠지는 내용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손 이야기의 독특함은 다른 판관들과는 달리 동맹군 없이 유일하게 홀로 싸웠다는 것입니다. 또한 삼손은 열두 명의 판관 중에서 유일하게 적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삼손은 20년 동안 판관으로 일했으면서도 다른 판관들처럼 적들에 대적하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여인들과 관련된 사건을 통하여 적들을 무찔렀습니다. 삼손 이야기에는 세 명의 이방인 여인이 등장합니다. 삼손과 결혼한 팀나에 살던 필리스티아 여인, 가자에서 만났던 창녀, 마지막 한 명은 치명적 매력을 지녔던 들릴라였습니다. 삼손은 결혼한 팀나의 여인과의 문제를 빌미로 필리스티아인들의 밀밭을 불태우고 천 명이나 되는 필리스티아인들을 죽였습니다. 가자의 창녀와 관련해서는 그를 잡으려 성문에 매복한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성문을 뽑아 헤브론 맞은편 산꼭대기로 옮겨 버렸습니다. ‘가자’라는 지명은 ‘강한 곳’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가자에서의 이 사건은 강한 곳과 강한 삼손의 결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라와 관련되어서는 삼천 명을 죽이게 되는 것이지요. 매번 특별한 무기도 없이 ‘주님의 영’에서 나오는 엄청난 괴력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삼손과 관련되어 있는 여인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진 여인은 유혹의 달인 ‘들릴라’입니다. ‘들릴라’라는 이름은 ‘땋은 머리’라는 뜻입니다. 혹자는 ‘밤’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일라’와 비슷하다며 들릴라의 이름을 ‘밤’, ‘어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환한 태양을 의미하는 삼손이 밤의 연인 들릴라를 만나면서 점차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삼손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하지만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매수되었던 들릴라는 그저 삼손에게 걸려있는 현상금을 노리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집요하게 삼손이 지닌 힘의 원천에 대하여 캐물었습니다. 삼손은 몇 차례 둘러대다가 결국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면 힘을 잃게 된다며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눈이 뽑혀 연자매를 돌리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주님의 영’으로 승승장구하던 삼손이 연자매를 돌린다는 것은 그의 신세가 짐승의 처지가 되어버렸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나귀 턱뼈로 수많은 적들을 쳐부수던 삼손이 이제는 한 마리 나귀처럼 연자매를 돌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삼손이 연자매을 돌리는 장소가 추수마당이 아니라 신전이라는 것이 의아합니다. 사실 필리스티아인들의 신 가운데 하나인 ‘다곤’은 추수와 관련 있는 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손이 신전 감옥에서 짐승 취급을 받으며 연자매를 돌리는 것은 자신들의 추수의 신을 모독했던(추수 밭을 불태워버린 사건) 삼손에 대한 보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눈이 뽑혀 다곤의 신전에서 짐승으로 전락해 버린 영웅 삼손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삼손의 불행을 설명하던 성경은 이야기 말미에 삼손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16,22)며 한 가닥 희망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괴력에 숨겨진 비밀이 정말 머리카락이었을까요? 삼손의 강인한 힘은 머리카락을 깎지 말라고 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힘이었습니다. 이미 삼손 스스로, 목이 말라 주님께 부르짖을 때 자신의 힘과 생명이 하느님의 의지에 달려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15,18) 삼손의 이야기에는 다른 판관들의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백성이 하느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삼손이 두 번 하느님께 부르짖는 장면만 있을 뿐입니다. 삼손이 당나귀 턱뼈로 필리스티아 사람을 죽인 후 목이 말라 물을 청하면서 부르짖었고,(15,18) 또 한 번은 생애 마지막에 적들과 함께 죽을 수 있도록 힘을 되돌려 달라고(16,28) 간청하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삼손의 부르짖음은 그가 백성을 대신하여 대변자처럼 부르짖는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눈이 뽑혀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그에게는 마음의 눈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자기 생명과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것을 보며 하느님의 은총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머리카락이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괴력의 근원이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원수를 갚으며 장렬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성경은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고 알려줍니다.(16,30) 매력의 여인 들릴라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월간빛, 2021년 11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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