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성구갑을 찬 유다인들 제가 이스라엘에서 살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모세오경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 애쓰는 유다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삶의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율법이 때로는 족쇄처럼 느껴졌지만, 성경에 쓰인 대로 살려 하는 그들의 노력은 조상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았습니다. 그들이 지켜 온 관습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일상에 녹아 있는 것은 바로 성구갑을 착용하는 일입니다. 유다인이던 예수님도 지키셨을 법한 관습입니다(마태 23,5 참조). 유다교에서는 성구갑을 매우 거룩하게 여겨 심지어 하느님도 착용하신다고 믿었습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브라홋 6ㄱ 참조). 성구갑은 조그만 말씀 상자 두 개와 끈으로 구성된 기도 용품입니다. 유다인 남자들이 아침 기도할 때 쓰는데요, 상자 하나는 이마에, 다른 하나는 왼팔 심장 가까운 곳에 끈으로 매답니다. 이 관습은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신명 6,8)는 말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신명 6,5-6) 도와주는 수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사랑은 내가 원한다고 품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지만, 신명기의 저자는 미운 감정을 다스리듯(레위 19,17ㄱ 참조) 사랑도 함양해 나갈 수 있다고 본 듯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감정’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이럴 경우,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율법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구갑은 언제부터 쓰였을까요? 일단 기원전 2세기 저작으로 추정되는 구약외경 『아리스테아스 편지』(159)를 보면 비슷한 물건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원후 1세기 요세푸스의 저서 『유다 고대사』(4,213)에는 이마와 팔에 붙이는 것이 모두 언급되어 있고요.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성구갑이 완전히 자리 잡았던 듯합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성구갑을 넓게 만들며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한 걸 지적하셨는데, 실제로 옛 라삐들은 성구갑의 착용 목적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고 가르쳤으니 흥미롭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민족들이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너희를 두려워할 것”(신명 28,10)이라는 구절을 성구갑과 연결한 결과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주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성구갑과 연관 짓고, 그런 그들을 세상 민족들이 두렵게 여기리라는 뜻으로 풀어낸 셈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질책도 성구갑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자신을 거룩한 사람인 양 포장하려는 허영을 겨냥하셨던 것이지요. 성지에 가면 성구갑을 찬 유다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성구갑을 매고 기도한 뒤 죄 짓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유다인 사회가 죄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약소민족으로서 견뎌야 했을 오랜 질곡의 세월에도 고집스럽게 신앙을 지켜낸 데는 성구갑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