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이집트를 떠나 바닷가에 이르다(탈출 13,17-14,14) 서른 번째 순례 여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했던 그 어떤 여정보다 더 가슴 떨리고 흥분된 여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여장을 단단히 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서둘러 길을 떠납시다. 그들은 니산 달 14일 밤에 길을 떠납니다. 성경의 저자는 그들이 “빵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반죽 통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탈출 12,34) 떠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길을 떠나기 전에 그들은 그동안의 노예살이에 대한 대가라도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에게서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가지를 받아냅니다. 이렇게 하여 창세 15,13-14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 이들은 어린이를 제외하고 장정만도 60만 명이었고, 많은 외국인도 여기에 가세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집트에 머물던 외국인 노예들이었을 것입니다. 장정이 60만 정도면 여기에 여인들과 어린이들의 수까지 합하면 대략 250만 명이 됩니다. 이 정도의 인구라면 시나이반도 전체가 사람으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하늘의 별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던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주셨던 땅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라므세스를 떠나 수콧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지름길인 해안도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해안도로를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무렵인 기원전 13세기에는 아직 필리스티아인들이 그 땅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약 백 년 후인 기원전 12세기 경에 팔레스티나의 해안가에 정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안도로를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파라오가 그들을 추격해올 때 두려운 나머지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되돌아가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탈출 13,17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수콧을 지나 에탐에 진을 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보호를 받으며 행군을 계속한 그들은 믹돌과 바알 츠폰 앞 바다 사이에 있는 피 하히롯 앞에 진을 쳤습니다. 이때 마음이 완고해진 파라오가 병거 육백 대의 정예부대와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집트인들의 말발굽 소리와 병거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혼비백산합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놓였고, 뒤로는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해오는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이 여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 그들은 억지로 여행을 따라나선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불평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을 익히 체험하였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어 주셨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구원 체험에 바탕을 두고 현재의 위기를 해석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모세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그들을 참된 믿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몸소 싸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탈출 14,13-14). 우리는 어떻습니까? 곤란과 어려움 가운데 하느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줄 압니까? 시련과 위기가 신앙의 성숙에로 이끄는 하느님의 초대장임을 압니까?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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