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여인들] 밧세바 밧세바는 솔로몬의 어머니였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는 주님의 눈에 거슬린 것이었고(2사무 11,27) 이스라엘은 그 관계를 죽음으로 다스리는 범죄로 여겼다(레위 20,10; 신명 22,22).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탐하고 범했던 다윗의 행동엔 그 어떤 변명이나 핑계가 필요치 않다. 더불어 밧세바가 다윗의 청을 뿌리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밧세바 역시 다윗을 받아들였다는 식의 해석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윗은 임금이었고 다윗은 권력을 움켜쥔 사람이었다. 밧세바는 다윗의 욕정과 탐욕의 희생자였다.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고, 밧세바는 다윗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지만, 주님은 그 아들을 치셨다(2사무 12,18). 죄의 참혹함은 희생에 또 다른 희생을 쟁여 놓아 삶의 일상을 슬픔과 아픔으로 휘저어 놓고야 만다. 역사 속에서 메시아 가문으로 상징되는 다윗의 삶은 이렇게 어지럽고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런 다윗에게 예언자 나탄은 가난한 이를 약탈하는 부자의 횡포를 담대히 전한다. 가난한 이가 아끼던 양을 부자는 자신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뺏어 온다. 부자는 많이 가졌지만 가난한 이에겐 그 양 하나만 있었다. 가난한 이는 그 양을 딸처럼 여겼고, 그의 품 안에서 양은 잠을 청했다. ‘딸’은 히브리어로 ‘밧’이다. 가난한 이의 팔에 안겨 잠들던 그 ‘양’, 곧 ‘밧’은 다윗의 팔에 안겼던 ‘밧-세바’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가족처럼 아끼던 그 양이, 그 딸이 희생되고 죽어간 이야기를 듣고 난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2사무 12,5).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 나탄의 날카로운 직언이다. 희생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었지만 다윗은 죽지 않았다. 다윗은 나탄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 죽음은 하느님의 자비로 비켜갔지만, 다윗과 그 집안은 그 후로 줄곧 어지럽고 위태로웠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누이 타마르를 범하고,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의 군대에 의해 죽어갔다. 메시아의 집안은 다윗의 약함과 악함 속에 지독히도 고단하고 힘겨운 역사를 써 내려 갔다. 누군가에게 유일하고 소중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범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는 게 세상 일인가 보다. 이런 삶에 대한 서로의 괴리가 죄를, 악을 잉태하는 건 아닐까. 타인의 삶을 싱겁게 여길 때면 다시 자세를 고쳐 밧세바를 떠올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제 품에 안겨 잠을 청하는 딸을 둔 어버이의 마음에 행여 대못을 박아놓은 게 아닐까, 조심조심, 하루하루를 참회한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대구주보 3면,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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