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나자렛 회당 회당은 유다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토라 공부뿐 아니라 재판 같은 여러 활동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자렛이니, 어린 시절 그분이 예배 드리고 말씀을 공부했던 곳은 당연히 나자렛 회당일 겁니다. 성인이 되신 뒤에는 이 회당에서 “은혜로운 해”(루카 4,19)를 선언하시지요. 지난 2000년 대희년과 2016년 자비의 희년이 바로 이 선언에서 기인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나자렛 회당은 십자군 시대에 재건한 것인데요, 그곳에 가면 예수님이 선언하신 은혜로운 해의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언하신 “은혜로운 해”는 레위 25장의 희년 율법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뒤 맞는 대안식년으로서 해방의 해입니다(레위 25,10). 본디 사십구 년째이지만(8-9절) 안식년 주기를 마감한다는 상징성을 위하여 오십 년째로 규정한 듯합니다. 이때가 되면 가난 탓에 가산을 팔고 자기 자신까지도 판 백성이 자유와 재산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흩어지지 않게 하여 백성 전체를 보호하려던 조치인데요, 이를 위해 속량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속량이란, 백성이 땅이나 자기 자신을 팔더라도 언제든 되살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합니다. 본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형제나 친족이 대신 대가를 치러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친족도 능력이 없으면 하느님께서 희년에 친족처럼 행세하여 되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지의 본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23절).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주셨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들 가운데 궁핍해진 형제를 가혹하게 대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스라엘은 임금에게 만 탈렌트를 빚진 자와 같고, 그들 가운데 가난해진 형제는 동료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같은 것입니다(마태 18,23-35). 하지만 희년이 제대로 지켜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식년도 안 지켜졌으니(2역대 36,21) 대안식년인 희년이 지켜졌을 리 만무하지요. 하지만 예언자들은 희년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호탄으로 예고하는데요, 이사 61,1-2이 대표적 예입니다.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봉독하신 뒤 그 자리에서 실현되었다고 선언하신 예언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희년의 의미를 고려해보면 예수님의 선언은 ‘서로를 형제처럼 대하고 과한 재산 욕심에서 벗어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부유해지지 않고 절망적으로 가난의 굴레에 빠지지도 않는 세상, 하느님 나라가 그와 같을 겁니다. ‘재물을 땅에 쌓지 말라.’는 마태 6,19-21의 가르침도 희년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자렛 회당에 가면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는 말씀이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본인의 소유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때, 기꺼이 자기 재물을 나눠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하느님 나라에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월 23일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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