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특별한 인물들] 결핍의 상처로 얼룩진 인생, 롯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인생의 여정을 항상 같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떠날 때부터 그러했으며,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피난 갔을 때에도 롯이 동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일반적인 삼촌 조카가 아닌 마치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롯의 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삶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었던 시대였기에, 롯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은 롯을 가엽게 여기고 가능한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며, 더 신경을 썼을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피를 나눈 친아버지와는 모든 것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면 자칫 모든 사람이 자신만을 떠받들어주고 무조건 옳다고 봐주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결핍의 상태가 심해지면서 이기적이고 노골적으로 다른 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심적으로 강한 피해 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의 결핍 상태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보상심리를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들 중에도 도움을 주면 처음에는 고맙게 느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받는 것을 당연시하며 오히려 도움이 없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사이도 재산(양 떼와 소, 노비 등)이 많아지자 문제가 생깁니다. 형제자매간에도 결혼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관계의 틈이 생기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싸움은 재물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식솔들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분쟁이 반복되면 동거보다는 분가하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힘을 합해야만 간신히 살 수 있었던 과거의 가난했던 시절엔 오히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분가하기를 권하며 롯에게 먼저 땅의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은 겉이 번지르르한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롯의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했습니다. 겉으로 화려한 소돔은 실제로는 죄가 범람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욕심을 가지고 한 선택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소돔 땅에서 전쟁과 약탈행위가 일어나면서 롯은 가족들과 함께 포로로 사로잡히는 굴욕을 맛봅니다. 그가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재물도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돔 땅을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자신의 재물과 땅이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은 가장 믿었던 재물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는 엄청난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촌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죄책감과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에게 모든 것이었던 재산이 사라지면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는 믿음을 상실합니다. 롯은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중요한 것을 잊고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면 삶의 고통이 가중됩니다.(창세 13~14장; 19장 참조) [2022년 2월 13일 연중 제6주일 서울주보 5면, 허영엽 마티아 신부(홍보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