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무화과나무 무화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자라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더 흔히 볼 수 있는, 가나안의 일곱 토산물(신명 8,8) 가운데 하나입니다. 옛 유다 전승에 따르면 선악과가 무화과였다고 하지요. 원조들이 금단의 열매를 먹자 마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7)는 내용 때문입니다. 가나안 토산물이자 에덴동산에서도 자란 무화과는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세 9,10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나셨을 때 “무화과나무 맏물”을 발견하신 듯 기뻐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무화과와 관련된 지명도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하신 “벳파게”(마태 21,1)는 ‘덜 익은 무화과의 동네’를 뜻합니다. 그 근처에 자리한 베타니아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셨지요(17-19절). 사실 철이 아닌데 열매가 없다며 나무를 말라죽게 하신 이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화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해를 못하면 오해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그 나무가 상징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는 일종의 상징 행위였습니다. 곧 양질의 열매를 내지 못하고 들포도로 변질되었음을 꾸짖는 이사 5,2.7; 예레 2,21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의 첫 열매는 5-6월에 나오고요, 일반적인 수확은 8월 중순 이후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는 성경에서 “여름 과일”(아모 8,1; 미카 7,1)이라고 자주 일컬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건 과월절 전에 일어났으니 무화과 철이 아니지요(마르 11,13). 하지만 여기서 “철”은 ‘때’를 뜻합니다. ‘때’의 의미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때’는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알아보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열매가 없다는 꾸짖음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고요. 겉으로는 잎도 무성하고 건강해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입니다. 예레 8,13에는 이런 질책이 나옵니다. “내가 거두어들이려 할 때 (…)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하나도 없으리라. 이파리마저 말라 버릴 것이니 내가 그들에게 준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이스라엘이 주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결실을 맺지 못했으니 당신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는 예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하게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리리라는 선언으로(마르 11,14) 강도들의 소굴처럼 변질된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셨습니다(13,2). 언뜻 보면 성전에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희생 제물을 바치는 등 많은 활동을 하는 것 같지만, 정작 공정과 정의는 맺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예고대로 성전이 파괴된 뒤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이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무화과나무는 소리만 요란한 수레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1테살 5,2) 닥칠 것이니 늘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2월 27일 연중 제8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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