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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다윗(1사무 16장 - 1열왕 2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13 조회수2,186 추천수0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다윗 I (1사무 16장 - 1열왕 2장)

 

 

예수님의 족보를 여는 첫 말마디는 “다윗의 자손”(마태 1,1)입니다. 다윗의 이름은 그의 14대(代) 조상인 아브라함보다도 먼저 불리고 있지요. “다윗의 자손”은 전통적으로 메시아를 뜻하는 고유한 호칭인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복음의 첫머리부터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다윗은 탁월한 시인이자 음악가인 동시에 강인한 용사요 군사가로서, 후대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1열왕 11,4.6; 15,3.11) 이스라엘 최고의 성왕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많은 왕들 가운데 오직 다윗만이 “임금”(마태 1,6)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은 그의 독보적인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실패한 임금 사울 대신 통일 왕국의 첫 임금이 되어 당신 백성을 인도할 사람으로, 유다 베들레헴의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명을 받은 사무엘 예언자는 이사이의 일곱 아들들 중 가장 늠름한 맏이 엘리압을 내심 점찍었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맙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하신 하느님은 그를 깨우치셨고, 들판에 남아 양을 치고 있던 막내 다윗에게 도유하게 하셨지요. 학자들은 일곱 형들이 아닌 ‘여덟째’ 다윗이 기름부음 받았다는 사실에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의 이름(그리스어 예수스 ΙΗΣΟΥΣ : 숫자로는 888)을 찾거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일곱째 날) 다음 날인 “여덟째 날”(‘주일’ : 가톨릭교회 교리서 2174항 참조)에 부활하셨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느님께서 장차 예수님의 조상이 될 다윗에게서 보신 그 ‘마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리도 갖길 열망하는 바로 그 마음 말입니다.

 

어쩌면 그 마음이란, 하느님을 거칠게 모독하는 거인 전사 골리앗 앞에 서서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1사무 17,45)라고 외치던 다윗의 그 믿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거대한 악과 임박한 죽음 앞에서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요한 16,32)라고 하셨던 예수님을 닮은 그 마음 말이지요. 그리고 정적(政敵) 사울을 죽일 기회마다 부하들이 다윗을 종용하던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냐? 나는 그에게 손대지 않겠다.”(1사무 24,7.11; 26,9.11.23) 하며, 자신의 억울함과 고된 도피 생활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우선했던 다윗이었지요. 또 임금이 된 이후 하느님의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던 날은 어떠했나요? 행렬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던 그를 아내 미칼이 체통머리나 지키라 조롱할 때, “(주님 앞에서)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오.”(2사무 6,22) 하며 오직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온 마음을 기울였던 다윗이었습니다. 영원을 한순간처럼 꿰뚫어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기름부어 세우시던 그때, 평생 오직 당신만을 향할 그 다윗의 귀한 마음들을 미리 앞당겨 보고 계셨던 것이었겠지요.

 

하느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신 우리 주님의 탄생과 그분의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약속해 주신 것은, 다윗이 자신의 도성에 하느님의 성전을 지어 그분의 현존 속에 살고자 강렬히 열망했던 바로 그때였음을 되새겨봅니다(2사무 7장). 우리의 하루가 때로는 산골 양치기같이 남루하고, 때로는 골리앗처럼 거대한 장애 앞에서 무력감에 젖기도 할 테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버티다 지쳐버리지 말고, ‘당신을 향한 내 진실된 마음’ 그 하나만을 보시는 하느님, 나를 기름부어 세우셨고 한순간도 나를 놓지 않으신 하느님과 ‘늘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간직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왕 다윗을 닮아 인생의 승리자로 살아가는 복된 날들을 힘차게 이어가길 기원합니다. [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다윗 II (1사무 16장 - 1열왕 2장)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이’(히브리어 ‘메시아’) 성왕(聖王) 다윗의 인생에도 죄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은 있었습니다. 수천 년간 많은 신앙인들이 다윗을 사랑해온 것은, 그가 처음부터 완벽하기만 한 초인(超人)이 아니라 우리처럼 유혹에 빠져 죄짓고 가슴을 치기도 했던 범인(凡人)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젊은 시절의 다윗은, 혈안이 되어 자신을 죽이려던 정적(政敵)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고(1사무 24; 26장), 사울과 그의 장수 아브네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2사무 1,1-12; 3,28-39)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들의 죄를 물었으며(2사무 1,13-16; 1열왕 2,5-6), 사울의 손자 므피보셋을 곁에 두어 보호하는 등(2사무 9,1-13) 주위에 짙게 드리워진 폭력의 사슬을 끊으려 그토록 애썼던 정의롭고 온유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죄와 유혹에 빠져 스스로 폭력을 자행하는 이가 된 것은, 오히려 필리스티아와 암몬과 아람 등 주변국들을 복속시킨 후 ‘평화롭고 안정된 일상이 찾아든 때’였지요.

 

다윗이 당시 임금의 최우선 임무였던 출전(出戰)을 사령관 요압에게 미루고, 선두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기보다 왕궁에 머물며 편안한 일상에 안주했던 일은(2사무 10,7; 11,1) 그의 인생에 치명적인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게으름은 악마의 일터이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영육의 나태함은 인간을 쉽게 유혹으로 이끄는 법이지요.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을 저지르고 그 남편마저 사지로 내몰아 죽게 한 다윗에게(2사무 11,1-27) 예언자 나탄은 하느님의 엄중한 징벌을 예고했고(2사무 12,10-12), 과연 그 예언대로 다윗 가문에는 참혹한 일들이 닥쳤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를 범하고(2사무 13,1-22) 셋째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는 패륜을 저질렀으며(2사무 16,20-22), 자식들의 죽음과 서로 간 살육이 끊이질 않았지요(2사무 12,15ㄴ-18; 13,23-37; 18,14-15; 1열왕 2,13-25). 성경 저자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다윗 왕실의 역사를 그가 지은 죄에 따른 인과응보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죄를 깨닫고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며 참회했을 때 분명 하느님은 즉시 그를 용서하셨는데(2사무 12,13), 앞서 예고되었던 징벌은 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대로 주어졌던 것일까요?

 

다윗은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이후 이어지는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회개자’로서 자신 또한 원수를 용서하고 관용하는 삶을 충실히 살아갑니다. 다윗은 소중한 맏아들 암논을 죽이고 반란까지 일으킨 압살롬을 용서했고(2사무 14,33; 17,5; 19,1-5), 그 반란 때문에 오른 피난길에서 돌팔매질하며 자신을 저주하던 시므이에게도 관용을 베풀며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한껏 낮추었지요(2사무 16,11-12).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라는 말 한마디로 치유와 용서의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남의 것을 빼앗고 내 것을 지키기보다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길 택했던 그 ‘회개와 보속의 세월’을 거쳐서야 비로소 다윗은 참 성인(聖人)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윗과 같은 성왕에게도,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가 쏟아지는 시기’와 쓰디쓴 ‘단련과 훈육의 시기’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였음을 되새겨봅니다. 혹여 힘겨운 시간이 이어지고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온 듯한 고독을 느낀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나를 버려두셨다거나 그분과 나쁜 관계에 있다고 쉽게 판단하며 용기를 잃어선 안되겠습니다. 그때야말로 하느님의 깊은 은총이 나를 비추고 있는 특별한 구원의 때임을 기억하며, 성왕 다윗처럼 쉼 없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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