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삼손 (1) 판관 삼손은 신자든 아니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을 마흔 해 동안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판관 13,1)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죄를 반복해서 짓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크레타섬에서 가나안으로 와서 5개의 도시국가 연합체를 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던 이스라엘이 이들을 대적하는 것은 힘들었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었을 때 단 지파에서 삼손이 탄생합니다. 불임의 여인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는 성경에 여러 번 나오지만, 삼손의 탄생이 특별한 이유는 부모의 청이 없이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신 점입니다. 삼손은 단순히 한 가문의 대를 잇도록 주신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구원을 위해 내리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민수기 6장이 규정하는 나지르인들과 다릅니다. 이들은 자기 의지로 보통 한정된 기간 나지르인의 서원을 하였으며, 세 가지 의무를 지켜야 했습니다. 첫째, 포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먹거나 마시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둘째, 주검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이 가운데 마지막 의무만 지키면 되었고(첫째 의무도 어머니를 통해 삼손에게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이미 모태에서 나지르인으로 정해졌으며 그 기간은 죽을 때까지입니다. 다시 말해, 삼손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나지르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선택한 삶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삼손은 나지르인의 사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외적 의무는 지켰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판관이 지녀야 할 내적 자세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리스티아 여인과 혼인한 일입니다. 사실 그리스 문화와 가나안 문화를 함께 물려받은 필리스티아 여인들은 이스라엘 여인들보다 훨씬 멋지고 세련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혼인을 통해 삼손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필리스티아인들에 맞서 싸우는 판관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삼손 (2) 삼손이 혼인 잔치에 참석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상을 걸고 수수께끼 하나를 냅니다. 신랑이 하객들에게 술과 음식뿐 아니라 유흥을 제공하던 필리스티아인들의 관습을 따른 것입니다. 수수께끼는 고대인들이 즐기던 취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수수께끼의 답을 신부를 협박하여 알아냅니다. 이것은 당연히 공정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사실 게임의 규칙을 어긴 쪽은 삼손이 먼저입니다. 수수께끼는 보편적인 상황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했으며 그 안에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있어야 했는데, 삼손은 자기 외에는 아무도 맞출 수 없는 문제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자기의 잘못된 행위는 생각하지 않고 필리스티아인들의 부정에만 분노하여 그들의 동족을 학살한 뒤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나중에 삼손이 아내를 찾으러 다시 갔지만, 그 여인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삼손은 이 상황에서 남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혼인식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필리스티아인들의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보복을 피해 유다 지파의 영역까지 도망친 삼손을 필리스티아인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그러자 필리스티아인들이 두려웠던 동족들이 그를 사로잡아 넘겨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필리스티아인들이 달려드는 순간 삼손은 포박을 끊어버리고 당나귀 턱뼈로 그들을 모두 쳐 죽였습니다. 여러 편의 영화 제목처럼 삼손과 항상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들릴라라는 이름의 여인입니다. 들릴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필리스티아 사람인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비록 셈족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당시 필리스티아인들 중에서도 셈족 이름을 사용하는 이들이 적잖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삼손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그와 관계된 여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된 들릴라는 삼손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매수된 들릴라 때문에 삼손이 잡혀가게 됩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그를 죽이기보다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과 모욕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은 두 눈을 빼앗기고 마치 짐승처럼 다루어지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삼손 (3) 삼손이 놀라운 힘을 드러낼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다.”(판관 14,6. 19; 15,14) 삼손의 힘의 진정한 원천은 그 자신이 생각하듯이 긴 머리카락이 아닙니다.(판관 16,18) 그의 힘은 하느님한테서 왔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것인 머리카락을 힘의 원천으로 여겼으니, 승리를 스스로 이룬 것인 양 자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나귀 턱뼈로 나 그들을 마구 두들겨 팼다네.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을 쳐 죽였다네.”(판관 15,16) 삼손은 그의 삶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하느님께서 그의 힘이심을 깨닫고 나지르인으로서의 사명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지만(판관 16,22), 더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께 힘을 청합니다: “주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십시오.”(판관 16,28) 그리고 하느님께서 돌려주신 힘을 필리스티아 다섯 도시의 통치자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데 사용합니다. 삼손은 자기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유일한 판관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판관의 시대는 끝이 납니다. 삼손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판관 14,3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판관인 삼손이 이방인 여인과 결혼하며 “그 여자가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그 여자가 제 눈에 옳게 보입니다.”입니다. 구전 율법이 최초로 문서화 된 미쉬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눈을 따랐다. 그래서 필리스티아인들이 그의 눈을 도려낸 것이다.” 여기서 미쉬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의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눈이 뽑힌 삼손은 하느님의 눈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흡족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습니다.’(판관 17,6)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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