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의 12 순간들 (1) 출애굽 혼인한 부부가 둘의 과거를 회상할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가 될까? 여러 순간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은 ‘첫 만남’이 아니었을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는다면, 아마 하느님과의 ‘첫 만남’, ‘원체험’이라 불리는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이집트 탈출과 하느님 체험은 구약 신앙의 근본 바탕이 되었다. 이후 백성들은 힘든 광야에서도, 수난의 삶 속에서도, 고된 유배 생활에서도 자신들을 해방시키셨던 하느님을 기억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원체험’이라고 부른다. 출애굽은 단순히 종살이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출애굽의 파스카 사건과 갈대 바다 사건은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 이끌고자 하셨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파스카 사건은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던 대표적인 사건이다. 죽음의 천사가 온 이집트를 휩쓸며 모든 맏이의 목숨을 거두어갔지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식들에게는 죽음의 칼날이 머무르지 않고 건너갔다. 이것은 후에 예수님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져 예수님 당신이 파스카의 어린 양이며, 이 어린 양의 피로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건너가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예표가 되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갈대 바다 사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에서 물은 혼돈과 죽음을 의미한다. 창조 이전 물로 뒤덮여 있던 태초의 상태도, 노아 때 홍수로 뒤덮여버린 온 세상도, 결국 혼돈과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 사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예수님의 초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다. 반면에 땅은 생명을 의미한다. 구약의 백성들에 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었다. 땅에서 생명이 움터 나온다. 농경사회에서 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하느님께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 역시 땅이었다.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갈대 바다 사건을 보라. 백성들 앞에서 ‘물’이 갈라지며 마른 ‘땅’이 드러난다. 죽음을 갈라 구원을 이루신다. 이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문학적 표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왜 파스카 성야 미사 때, 이 갈대 바다 기적 이야기가 들어있는 3독서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지 우리는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물로 세례를 받았다. 물을 통해 우리는 모두 죽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도 아마 세례와 같은 의미이지는 않았을까? 죽음과 같았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새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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