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 우리는 성경에서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탈출 3,8)이라고 들어왔습니다. ‘젖’을 내는 가축과 ‘꿀’ 같은 열매로 풍부한 옥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면 젖과 꿀은커녕 돌만 굴러다니는 땅처럼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 영토의 절반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비옥한 땅은 갈릴래아 지방으로 올라가야 볼 수 있지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평한 건 그나마 주변 나라들에 비해 훨씬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척박하지만 특별한 곳입니다. 혼돈과 창조가 공존하는 땅입니다. 신명 16,12; 24,18에는 ‘너희는 이집트에서 종이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의 어떤 민족도 타국 노예였음을 밝히며 자신들의 역사를 시작하는 예는 없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목적이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증명하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종으로 살아온 이스라엘이 “사제들의 나라”(탈출 19,6)로 거듭난 장소가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창조의 땅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발현하시어 당신에 대해 알려주신 장소도 광야에 자리한 호렙산입니다(3,1). 호렙은 ‘물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뒤 홍해를 건너 가나안 입구인 “모압 벌판”(민수 22,1)까지 가는 동안 줄곧 광야를 지납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시험을 받고 하느님을 시험하는 불충도 범하며 그분의 백성으로 사는 법을 익힙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에서 보낸 세월은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요, 하느님을 믿고 따른 이상적인 시절이자(예레 2,2; 호세 2,16-17) 반역 기질을 단적으로 드러낸 시기입니다(탈출 16,2-3; 신명 9,7 등). 백성이 보인 이런 이중성은 광야의 특성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여건이 너무 열악해 양 떼가 목자를 따르듯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런 환경에 오래 머물다 보면 불평불만의 구렁에도 빠집니다. 말하자면, 광야에서는 하느님과 사탄을 동시에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광야 역사가 비슷하게 되풀이됩니다. 예수님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뒤 사십 일 단식하시고 하느님의 시험과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곳이 광야입니다(마태 4,1-11). 사실 복음서에는 ‘하느님의 시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성령의 인도로”(1절)라는 표현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시험대로 이끄셨음을 알게 합니다. 1절의 그리스어 동사 [페이라조](πειράξω)도 이런 메시지를 암시해줍니다. 이 단어가 ‘유혹’뿐 아니라 ‘시험’이라는 뜻도 지니기 때문입니다. 곧 하느님은 예수님을 시험하셨고 사탄은 유혹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몰락을 꾀했지만, 하느님은 예수님을 시험하심으로써 그분이 소명에 적합한 인물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광야를 닮았습니다. 삶 안에 도사린 사탄 때문에 유혹에도 빠지지만 결국 하느님을 만나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그 여정 끝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로 온전히 거듭나리라는 희망을 안고 말이지요.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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