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영역’을 나타내는 여격(與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어휘는 [프네우마](πνεῦμα)입니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영’(마태 4,1; 12,31; 22,43)은 물론이고, ‘하느님과 반대되는 영’ ‘악한 영’을 뜻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인간의 영’(마태 26,41)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예수님의 영과 마음’(마태 27,50; 루카 23,46; 요한 19,30; 마르 2,8; 8,12; 요한 11,33; 13,21)을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됩니다. ‘인간의 영’으로 사용될 때는 인간의 내면세계, 모든 감성과 의지의 근원지를 의미합니다. • “영혼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종종 인간의 생명이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 영혼은 인간의 영적 근원을 가리킨다”(가톨릭교회교리서 363항). • “존재의 심연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도 강조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368항). “마음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문법적으로 여격(與格 : dative case)입니다. 여격은 일반적으로 우리말 ‘~에게’(간접목적어)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여격은 단지 ‘~에게’로만 번역되지 않습니다. 이익/불이익, 목적, 소유, 영역, 도구, 이유, 방식, 시간, 장소, 관계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 때문에, 전체 문장을 헤아리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태 5,3에서는 ‘마음으로’가 문법에 따라 옮긴 적절한 직역인데, 이는 여격 용법 중 ‘영역’에 해당합니다. ‘영역’의 여격에 따르면, ‘영의 영역에서’ 또는 ‘영 자체’라는 의미로 인간 존재와 실존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과 영’이 여격으로 사용된 다른 성경 본문들도 모두 ‘영역’에 해당합니다. • “마음이 부서진 이들”(시편 34,19) • “인내가 자만보다 낫다”(코헬 7,8). •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1코린 7,34)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 11,29) 그런데 이 여격을 ‘영을 통해서’ 또는 ‘영을 사용하여’라는 행위나 상황을 이루는 ‘도구’로 해석하게 되면, 마태 5,3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외적인 결핍에 의한 가난이 아니라, 영혼(인격, 의지, 감성)의 동기로 가난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됩니다. 곧 부자이면서도 겸손해서 가난한 삶의 형태를 다양하게 실천하는 사람들, 내적인 동기가 원인이 되어 가난(검소함)을 선택하는 이들처럼 말이죠. 그러나 성경에서 ‘영과 마음’을 이야기할 때는 도구가 아닌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만 사용됩니다. ‘도구’의 여격이 사용되는 것은 다음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마르 4,33).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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