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복음서로 보는 주님 수난 (2) 성전 정화
하느님의 집 정화하고 치유의 선행 베풀어 - 엘 그레코 작 ‘성전 정화’ 1600년경.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저물자 제자들과 함께 베타니아로 되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튿날, 교회력으로 ‘성주간 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고 한다.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마르 11,15-19) 그리고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요한 2,14-15) 예수님께서는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신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이사 56,7)하며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나선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빌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예레 7,11 참조)고 성전 장사꾼들을 꾸짖으셨다. 변질된 것을 금하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 입구 광장인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났다. 이방인의 뜰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올리브산 사이의 지름길로 이용됐다. 예수님 시대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유다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하던 로마 제국의 주화에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유다인에게 있어 황제 초상은 율법에 따라 우상 숭배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뜰에서 성전 안에서 사용 가능한 화폐로 환전해서 그 돈으로 성전에 바칠 제물과 예물로 짐승들과 기름, 포도주, 소금 등을 장만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사고파는 이들을 내쫓으심으로써 성전 구역이 시장이나 길로 쓰여 속된 것으로 변질된 것을 금하신 것이다. 곧 이방인의 뜰 역시 성전 안 ‘이스라엘인의 뜰’처럼 거룩한 곳으로 정화하신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성전 정화’에서 중요한 것은 행위 뒤에 감추어진 근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행위는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집에서 주님을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 경배할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과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공통된 경배 공간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나자렛 예수」 2권 33쪽 참조) 곧 성전의 오용을 막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율법에 맞갖은 행동이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로 성전 정화의 정당성을 증명하셨다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강조한다. 성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하며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다음날 곧 전례력으로 ‘성주간 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또다시 성전을 찾으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원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유다인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인데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고 말씀하셨다. 성전을 허무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시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예레미아 예언자 시대에도 그랬듯이 성전을 파괴하는 이들은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 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종말을 고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당신 자신이 인류의 새 성전이 되셨다. 성전 상인들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눈먼 이들과 절름거리는 이들을 고쳐주셨다.(마태 21,14) 짐승을 사고파는 것과 금전 거래에 맞서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선행으로 대응하셨다. 참된 ‘성전 정화’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3월 2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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