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4) 자유와 종살이(4,21-31) 세 번째 논증(4,8-31)의 세 번째 단락(4,21-31)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락에서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되었음(4,7)을 밝히기 위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사악과 이스마엘)과 그들의 어머니(사라와 하가르)에 관해 언급합니다(창세 16-21장 참조). 앞선 두 단락(4,8-11; 4,12-20)이 갈라티아인들의 경험에 따른 논증의 바탕이었다면, 이번 단락은 권위 있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논증을 펼쳐 나갑니다. 바오로는 이미 갈라 3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길”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믿음임(3,6-14 참조)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갈라티아인들은 이미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설명했습니다(3,29). 이제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려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4,31).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롭게 되었기에 자유인답게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태어난 배경을 밝힙니다(4,23).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사악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고, 하가르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육에 따라” 태어났습니다. 이사악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출생했다면(창세 21,1-3 참조), 이스마엘은 사라와 아브라함의 의도, 곧 후손을 보고자 하는 인간적인 필요성으로 태어난 것입니다(창세 16,2 참조).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태어난 배경에는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적 필요성이라는 서로 다른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대 신앙인들의 서로 다른 삶의 양식 또한 나타냅니다. 약속의 결과로 태어난 이사악은 “성령에 따르는” 이들을, 반면에 인간의 필요성에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은 “육에 따르는” 이들을 상징합니다(4,29: 5,16 이하). 성령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믿는 삶이며, 육에 따르는 삶은 필요성에 따르는 삶, 예를 들면 의롭게 되기 위해 율법이 요구하는 것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삶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가 이 두 가지 생활 양식이 병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갈라티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율법 준수의 삶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라티아인이 “이사악과 같은 약속의 자녀”(4,28),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4,31)라는 점은 그들이 “육”이 아닌 “성령에 따라”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5,16).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학다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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