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가난한 이들의 기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에서 사용된 여격은 ‘도구’의 여격이 아닙니다. 즉,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 또는 겸손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선 ‘영역’의 여격이 사용되어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 ‘실제로 완전히 가난한 이’을 말합니다. 결국,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나빔’(anawim)으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입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은 그 존재 자체, 곧 의지와 감성 등 모든 것이 가난하여 하느님 외에 어떠한 것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수 있는 이들이기도 합니다(마르 12,41-44; 루카 21,1-4 참조). 성경에서 가난한 이는 사회에서 짓밟히고 억눌림 당하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아모 2,7; 4,1; 5,11; 8,4 참조): “너희의 집은 가난한 이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가득하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백성을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짓뭉개느냐?”(이사 3,14-15)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시편 25,16; 40,18; 69,30; 86,1; 109,22 참조): “저는 가련하고 불쌍하니, 하느님, 어서 제게 오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당신이시니,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70,6). 시편에서 확인되듯,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도움이 절실하며 오직 하느님만이 자신을 어려움에서 해방하여주실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청하고 그분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구약의 시편에는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대신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실제적 결핍을 겪는 이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그분 안에 희망을 두며 그분께 의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가난한 사람과 반대되는 이들에 관해서도 성경은 말합니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라는 말은 ‘마음(영)이 부유하여 자만한 내적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존재로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마음(영)의 가난함’을 상실했음을 질책받습니다.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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