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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티오키아 논쟁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30 조회수1,219 추천수0 신고

바오로의 선교 여정/ 제1차 선교 여정 ⑪


안티오키아 논쟁


바오로가 베드로를 꾸짖음

초대교회 안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발생한 일명 안티오키아 논쟁이다.

이는 49년 제1차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있고 얼마 안 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사도행전에는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바오로가 쓴 갈라티아서를 통해서 이 논쟁을 알 수 있다.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

입니다.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받

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나머지 유다

인들도 그와 함게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

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 (갈라 2,11-14)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이방인 출신 신자들에게 믿음 이외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올바른 결정

을 내린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방문하게 된다. 일종의 사목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공동체에 머무는 동안 이방인 출신 신자들과 어울려 성찬과 애찬의 식탁친교

를 나눈다. 성찬은 미사 중에 이뤄지는 것이고, 애찬(사랑의 식사)은 미사 전에 신자들이 실제로 함께하

는 식사를 가리킨다. 초대교회는 성찬이 있기 전에 먼저 애찬을 나누었다.


베드로가 유다인 출신 신자들은 물론이요 이방인 출신 신자들하고 친교의 식사를 나누던 중에, 예루살

렘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내려온다. 베드로는 그들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과 친교의 식사를 나누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안티오키아 공동체와 누

렸던 일치와 사랑을 깨버린다. 바오로는 베드로의 이러한 행위를 보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위선자라 몰

아붙이며 꾸짖는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전한 메시지

야고보에게서 파견받아 안티오키아에 온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베드로가 이방인 출신 형제들과

친교의 식사를 중단했을까? 아마 그들은 다음과 같은 야고보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님, 당신이 할례도 받지 않고 음식 금기법이나 정결예식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 그리스도인

들과 어울려 식탁친교를 나누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가 전해들었습니다. 당신의 그러한 행위가 이곳 예

루살렘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신앙이 없는 유다인들이 당신의 행동을

좋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이방인 형제들과 식탁에서 어울린다면, 우리가 유다인

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난번 코르넬리우스 사건 때 요한의 형 야보고가

죽임을 당하고, 당신이 감옥에 갖힌 것과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형제요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던 야고보가 앞서 있었던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정에

대해서 뒤늦게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은 없다. 이 점은 성경본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의 이방인 출신 형제들에게 할례나 율법준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야고보의 메시지를 베드로에게 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 바오로가 화를 내며 베드로를 공격할 때,

야고보가 사도회의 결정사항을 파기했다고 공격하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베른트 콜만, 「요셉 바르나바 」43)


하지만 야고보의 메시지가 갖고 온 여파는 엄청났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거부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이방인 형제들을 부정한 죄인으로 간주한 것이나 다름없다. 베드로가 식

사 도중 슬며시 물러나자 바르나바도 그를 따른다. '바르나바까지도'란 표현은 바오로의 어마어마한

실망을 드런낸다. 자신과 같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르나바조차 실망스럽게 베드로와 같은 행

동을 한 것이다.


바오로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이유

바오로가 베드로를 꾸짖은 사건은 어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줄 수 있다. 지역 교회 지도자에 불과한 바

오로가 예루살렘 모교회(母敎會) 대표자 중의 하나이며,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인 베드로를 다른 사

람들이 보는 앞에서 위선자라 부르면서 공개적으로 책망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바오로는 베드로에게

은덕을 입은 사람이다.


갈라티아서 1장 18절에 따르면, 바오로는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와 함께 보름 동안 지

내면서 예수님의 지상 삶과 가르침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들었다. 베드로는 바오로와 만난 뒤부터 이방

인을 위한 복음 선포에 저극적인 후원자 역활을 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는 유다 보수파를 거슬러

바오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앙에서 선배요 길잡이며 후견인인 베드로를 바오로가 굳이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책망했다는 점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바오로는 개인적 사연에서나 교계 지위에서나 베드로를 존중해야 되는데도 그를 공적으로 책망한 것은,

베드로의 행위가 교회 일치와 발전에 엄청난 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이방인들

을 향한 복음전교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베드로는 사도단의 수위권을 갖고 있는 제자다. 그가 이방

인 출신 신자들을 향해 어떤 태로를 갖느냐에 따라, 그의 태도는 온 교회의 기본노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

다.


사실 바오로와 늘 같은 노선을 걷던 바르나바조차 이방인 출신 신자들과 식탁친교를 중단한 것은, 베드

로의 영향력이 바르나바에게 크게 미쳤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안티오키아의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받기 전까지는 유다인 출신 신자들과 결코 성찬례를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오로는 베드로를 사적으로 꾸짖기보다 공적으로 꾸짖었던 것이다. 그로써 이방인 출신

신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바오로와는 사뭇 다른 베드로의 처지

이제는 베드로의 처지에서 헤아려 보자. 베드로의 행동은 어쩜 야고보의 사람들을 자극하면 더 큰 문제

가 발생할지도 모든다는 위험의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야고보가 파견한 이들을 만나는 그의 내면 상태

는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갈라 2,12)라고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행동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

레스타인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방인 형제들과 식탁친교를 중

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전체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이방인 출신 형제들과 함

께 식탁친교를 가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앞서 갈라티아서 2장에서 보았듯이,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베드로는 우선적으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오로는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합의했다.(6월호, 22쪽) 그러니 유다인들에

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의 처지는 이방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바오로의 처지

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


송봉모 신부 / 예수회,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 출처 ; 야곱의 우물 2015년 7월호<= 바오로서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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