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6) 그리스도와 할례(5,1-12) 맺음(5,1-6,10)의 첫 번째 단락(5,1-12)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락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할례가 병행할 수 있다는 갈라티아인들의 확신을 논박합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 율법을 준수한다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곧,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두 번째 논증 – 3,1-4,7) 더이상 육(필요성)이 아니라 성령에 따르는 자유로운 삶(세 번째 논증 - 4,8-31)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갈라티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자유로운 삶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할례는 외적 규정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종살이에 속합니다(4,8-11 참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할례가 병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종살이의 멍에”(5,1)란 표현은 이러한 바오로의 논점을 잘 드러냅니다. ‘멍에’(ζυγόϛ)란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로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바오로에게 있어 ‘멍에’란 갈라티아인들이 현재 지니고 있는 확신,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할례가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바오로는 갈라디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다시는 종살이의 명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티아인들이 지닌 확신은 그들을 단지 종살이로 이끌 뿐이므로 그러한 생각을 더이상 갖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이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네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할례를 받아 율법으로 의로움을 얻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깁니다(2-4절);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아닙니다(5-6절); 셋째, 갈라티아인들이 지닌 확신은 하느님에게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자들에게 온 것입니다(7-9절); 넷째, 바오로는 할례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한다는 사실입니다(10-12절). 이 단락에서 바오로가 할례(와 율법)에 관해 말하면서 갈라티아인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신앙인의 삶의 방식(modus vivendi)입니다. 그리스도교적 삶은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5,16) 것으로 외적 규정에 의지하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할례는 외적 규정, 곧 육(필요성)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그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단락(5,1-12)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는 다음 단락(5,16-25)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광주주보 숲정이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학다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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