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두 번째 광야 여정(민수 11-21장) 시나이산자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곧 파란 광야에 도착합니다. 이번 여정은 시나이산의 오른쪽으로 펼쳐진 광야를 따라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비록 광야를 거쳐 가야 하는 여정이기는 하지만 여행이 순탄하게 이루어진다면 곧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시나이산에서 아카바만의 입구에 있는 에츠욘 게벨 항구(오늘날의 에일랏)까지는 약 192.4Km로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이 광야에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 이집트를 떠났던 1세대가 모두 이 광야에서 죽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광야 1세대의 죽음은 약속의 땅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탐욕과 교만, 불신앙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이 순례 여정을 통하여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온갖 탐욕과 죄악에서 죽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두 번째 광야 여정에서도 이스라엘의 불평과 반역은 계속됩니다. 이 시기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꼽자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건(민수 12,1-16), 정탐꾼을 보낸 일과 관련된 사건(민수 13-14장), 아론의 사제직에 대한 도전(16-17장), 므리바의 물 사건(20장), 그리고 불뱀 이야기(민수 21,4-10)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그에 따라오는 불행한 결과들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두 번째 광야 여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번째 광야 여정 때와는 조금 다른 요소들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광야 여정에서나 두 번째 광야 여정에서나 백성들이 불평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시는 하느님의 태도는 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광야 여정 때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광야의 거친 삶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들의 불평에 진노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여정에서는 하느님께서 불평하는 백성들을 벌하십니다. 이 때문에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면 모세는 하느님께 중재기도를 바칩니다. 곧 두 번째 광야 여정에서는 불평과 벌, 모세의 중재라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차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본문은 첫 번째 광야 여정과 관련된 탈출 16,1-13과 두 번째 광야 여정에 관한 민수 11,1-23.31-34입니다. 두 본문 모두 메추라기의 기적에 대해 언급하지만, 불평하는 백성을 대하시는 하느님의 태도는 달라 보입니다. 또 첫 번째 광야 여정과 관련된 탈출 17,1-7과 두 번째 광야 여정에 관한 민수 20,2-13의 본문은 둘 다 므리바의 물 사건을 다룹니다만, 여기에서도 하느님의 태도는 차이가 납니다. 첫 번째 광야 여정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울부짖을 때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셨는데, 왜 둘째 광야 여정에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것일까요? 민수기 11장에 따르면, 만나에 그만 싫증이 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울부짖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진노하셨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시기는 하셨지만 메추라기 고기가 아직 그들의 잇새에 있을 때 그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변하신 것일까요? 성경 곳곳에서 하느님의 한결같으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변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시나이산에서 맺은 계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첫 번째 광야 여정이 시나이 계약을 맺기 이전의 일이라면, 두 번째 광야 여정은 계약을 맺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두 번째 광야 여정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에 따라오는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는 계약의 백성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계약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본문을 이렇게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