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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생활 속의 성경: 돌아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1 조회수2,347 추천수0

[생활 속의 성경] 돌아옴

 

 

그날, 작은아들이 유산을 챙겨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기세로 문을 나섰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루카 15장 참조). 며느리라면 가을 전어라도 구워 돌아오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이 녀석은 며느리가 아니다. 하긴 가을 전어로 돌아온다 한들 가을이 지나면 다시 집을 나설 것이 너무 뻔하다. 가을 전어로 집에 들어왔다면, 가을 전어 때문에 집을 나갈 것이다. 유산을 나눠 녀석 손에 쥐여주기 전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잡아 묶어 놓은 다음, 정신머리를 고쳤어야 했다는 통한의 후회가 아버지 마음 한구석에 있지 않았을까. 전혀 알 길 없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의 결단은 작은아들의 자유를 존중한 모양새다. 가늠조차 어려운,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 켜켜이 끼워져 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버지의 결단이 작은아들의 ‘돌아옴’을 만들어냈다.

 

주보 ‘숲정이’ 2592호에 실린 ‘떠남’에 이어 살펴볼 주제는 ‘돌아옴’이다. 성경에는 ‘돌아옴’이 차고 넘친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공간적인 장면도 있고 계절이 지나 다시 봄이 돌아오는 시간적인 장면도 있다. 물론 악하였다가 다시 선인으로 돌아오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는 시편 126편은 ‘돌아옴’을 잘 표현한다. 이 시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비극이었던 유배이다. 점령된 도시와 파괴된 성전을 넋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처지와 자유를 포함해 누리고 있던 수많은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살던 땅을 떠나야 했다는 이야기가 시편 뒤에 흐른다. 사실 겉으로 보자면 이 사건은 하느님과 그들이 맺은 약속에 역행하는 것이자 그 약속이 근본적으로 거짓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하느님과의 ‘약속’으로 이스라엘이 얻게 된 땅은 민족의 ‘소유’로 주셨다는 의미만큼이나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겠다는 ‘보호’의 의미도 있었다. 그렇기에 땅을 잃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약하시거나 하느님이 약속을 거짓으로 하셨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시편의 다른 구석에서 이런 마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신께서 저희를 잡아 먹힐 양들처럼 넘겨 버리시고 저희를 민족들 사이에 흩으셨습니다. 당신께서 당신 백성을 헐값에 파시어 그 값으로 이익을 남기지도 않으셨습니다.”(시편 44,12-13)

 

모든 ‘소유’를 잃어버린 유배의 사건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시편 저자는 유배를 마치 눈물로 씨 뿌리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올 수확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런데 과연 눈물로 씨 뿌리는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곡식 단은? 유배에서 돌아옴이 시작된다고 시편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짧은 문장이 지칭하는 유배의 긴 시간 이후,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각이 변화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해주세요”에서 “있어 주세요”로.

 

파견한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온전히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신다(루카 9,10-11 참조).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 다양한 조건을 가진 토양에 씨를 뿌렸을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상패 수여식 정도는 있어야 했지 않았냐는 섭섭함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스승과 늘 함께 있음을,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 그 어떤 것도 들어서서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일이다.

 

떠남과 돌아옴은 반복된다. 이 가운데 사랑하는 이가 나를 변함없이 기다린다는 사실은 위안이자 행복이다. 작은아들은 가을 전어가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상훈 안토니오 신부(노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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