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예수님의 빈 무덤 예루살렘의 구 도시(old city)에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순례지가 있습니다. 본시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시작해 골고타 언덕까지 이어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신 ‘고통의 길’입니다. 옛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지금은 시끄러운 시장이 되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며 골고타까지 가다 보면 순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상인과 행인들의 눈길이 꽂혀옵니다. 2000년 전, 십자가 형틀을 진 죄인의 행렬도 구경거리였겠지요.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하며, 메시아가 저럴 수는 없다고 혀를 찼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골고타는 성 바깥이었습니다. 그곳에선 죄인들의 형집행이 이루어졌고 ‘해골터’라는 의미처럼 무덤도 있었습니다. 당시 형벌 가운데 가장 잔인한 건 십자가 형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이 형벌이 두려워 예수님과 한패가 아니라고,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지요.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은 2-3일가량 고통에 시달리다 서서히 죽었다고 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당일 운명하셨던 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마르 15,44). 예수님의 시신을 거둔 이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인데요, 신명 21,22-23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리는 형벌을 받고 죽은 이는 오래 방치하면 안 되고 반드시 그날 묻어야 했습니다.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던 요셉은 빌라도에게 청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둔 뒤,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모시고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습니다(마르 15,43-46). 옛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매장 방식 그대로입니다. 매장 방식은 이랬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부유층은 보통 가족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여력이 없는 빈민들은 그냥 땅에 묻었고요. 산 기슭을 깎아 만든 동굴에 방을 여럿 만든 뒤 방마다 돌 판을 두었습니다. 돌 판에 망자를 누이고 살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별도로 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냄새가 나오지 않게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지요. 일년 뒤 후손이 들어가 뼈를 추려 동굴 안 따로 마련된 구덩이에 넣습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은 모두 같은 절차를 거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온 가족의 뼈가 한 구덩이 안에 모이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성경에는 ‘조상과 함께 잠들다.’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1열왕 2,10 등). 그러다 신약 시대에 장례 방식이 조금 바뀌는데요, 이때부터는 가족의 뼈를 한 구덩이에 모으지 않고 관을 만들어 각자의 뼈를 따로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시신에 향료나 몰약을 발라 악취를 줄였는데요, 마르 16,1-2에서도 여인들이 주간 첫날 새벽, 예수님의 무덤으로 갈 때 향료를 준비하였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거기서 빈 무덤만 발견하고 당황했지만, 이는 주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무덤은, 기원후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신전을 세우며 파괴되었습니다. 4세기에 비로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예수님의 무덤 터를 다시 찾아 성전을 봉헌하지요. 이때부터 성 바깥에 있던 골고타는 성 안에 포함되면서 예루살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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