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마태 5,5의 행복선언,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은 시편 37,11과 유사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큰 평화로 즐거움을 누리리라.” 이 시편에서 언급된 “가난한 이”는 히브리어로 [아나윔]인데, 이를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프라우스](πραΰς)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마태 5,5에 나오는 “온유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던 마태 5,3의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는 [프토코스](πτωχός) 또한 히브리어 [아나윔]에 해당합니다. 이를 보면,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온유한 사람”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은 정의로운 이들과 불경건한 이들의 행동과 그들의 운명에 관하여 묘사합니다. 그리고 온유한 사람, 곧 [아나윔]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줍니다. 시편에서, 온유한 사람의 특성은 충돌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는, 부정적 행동들을 유발하며 파멸적인 행동을 일삼는 악인과 대비됩니다. 그런데 온유한 사람은 성품이 부드럽고 자비로운 일을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행동으로 옮기는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특징지어집니다. 시편 37편에는 온유한 사람이 행하지 말아야 할 금지 명령이 여섯 번 언급됩니다: ① “너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 때문에 격분하지 말고” (1절) ② “불의를 일삼는 자들 때문에 흥분하지 마라.” (1절) ③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 때문에 격분하지 마라.” (7절) ④ “노여움을 그치고” (8절) ⑤ “성을 가라앉혀라.” (8절) ⑥ “격분하지 마라.” (8절) 온유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이들과 그들의 성공을 마주하게 될 때 그들에 대한 혐오감이나 부정적 감정에 끌려다니도록 자기를 놓아두지 않는 이입니다. 그래서 그는 질투나 분노를 피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시편에 나오는 온유함이란 악을 저지르는 이들과 불의한 이들의 만행에 맞서면서도 분노와 화라는 또 다른 악행으로 대항하는 것과 전혀 다른 능동적 행위입니다. 이는 악행을 무조건 참는 수동적 무반응이 아니라, 악을 악으로 되갚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악행을 피하는 의지적 행동입니다.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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