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맛들이기] 원죄 설화의 성경적 · 신학적 이해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추방에 관한 이야기(창세 2~3장)는 창조 역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작성된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적 성격을 가진 신학적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교회에서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원죄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도 아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교리(가톨릭 교회 교리서 402-404항 참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원죄에 대한 교리는 초세기부터 교회 공동체가 익히 알고 고백해왔던 중요한 구원의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원죄 교리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죄 설화(창세 2~3장)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신학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경 전체는 고통의 현장에서 부르짖으며 구원을 희망한 이스라엘과 그들을 만나주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진술이며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죄와 고통에 대한 원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죄에 대한 신학을 제시한 창세기 3장에서 얘기하는 죄란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는 대신 스스로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거스르고, 외면하고, 등지며, ‘하느님처럼’ 되려는 것(창세 3,5 참조)’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저자가 묘사하는 첫 인류의 범죄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제쳐두고 구원과 멸망을 자기 주관으로 택하려 한 창조주 하느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 탐욕적 본능으로 세상에 군림할 때 필연적으로 도래하게 되는 결과는 생태적 무질서와 혼란, 인간성 훼손임을 이미 신학에서는 예견해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과의 단절은 온갖 불행과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실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바로 이러한 비극을 원치 않으셨던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원죄 설화는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아담을 보호하시고 살려두시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창세 3,21; 4,1). 교회는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안고 있는 이 원죄가 세례성사를 통해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원죄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원죄 교리는 인간이 하느님을 거슬러 범한 죄가 크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총이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참조).’는 성경 말씀은 큰 위안과 힘이 됩니다. 원죄 교리 안에 들어 있는 성경적 진실과 신학적 메시지를 알아보지 못한 채 원죄 설화의 이야기에만 집착하여 원죄를 설명하면 상식에도 못 미치는 교리를 강요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제2대리구 복음화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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