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리야에서 일어난 일 예루살렘 구 도시의 동쪽에는 성전 산이 있습니다. 한때 주님의 집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2역대 3,1에 따르면 그곳은 모리야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슬람교의 선지자 모하메드의 승천을 기념하는 사원이 지어져 있지만, 모리야는 본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입니다(창세 22,1-19). 지금도 사원 안에는 그 전승의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모리야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큰 의문거리입니다. 인신제를 금하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 데다 이사악은 당신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상태였는데(21,8-21) 이사악마저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마태 10,37의 말씀이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창세 22,1은 이 일이 주님의 시험임을 밝힙니다. 시험의 의미는 마태 4,1-11과 연결해서 보면 쉽게 이해되는데요, 하느님께서 하신 시험의 예가 여기서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1절) 광야에 나가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지요. 이는 결국 하느님께서 하신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시험하신 목적은, 예수님이 소명을 잘 완수할 수 있을 것임을 보여주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그가 당신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품은, 그래서 당신의 구원 사업에 적합한 동반자임을 이후 백성에게 증명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설사 이사악이 죽는다 해도 주님께서 그를 다시 일으키실 거라 믿었습니다(히브 11,17-19). 하느님께서는 숫양을 준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바친 뒤 그곳을 ‘야훼 이레’라 칭하였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보시다.’ ‘주님께서 살펴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모리야라는 지명도 ‘보다’라는 어근에서 파생한 걸로 추정되기에, ‘이레’와 어근이 같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모리야 땅을 찾아갔고(창세 22,2-3),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당신의 동반자임을 증명해 ‘보이도록’ 이끄신 셈입니다. 이때 이사악은 번제 나무를 직접 지고 가는데(6절), 이는 이후 형틀 나무를 메고 죽음의 언덕으로 가신 예수님에 대한 예표가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주님 무덤 성당 안, 십자가의 길 10처 성화에는 이사악의 번제 장면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모리야에서 일어난 일이 시사해주는 메시지가 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사악의 희생을 막고 대신 숫양을 준비해 주셨듯이, 이스라엘도 주변 민족들이 행하던 인신제를 따라 하지 말고 동물 제사만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서 인신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당신께서 당신 아들을 제물로 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자께서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제사를 완성하신 뒤에는 동물 제사마저 필요 없게 되었으므로(히브 7,27) 이 역시 야훼 이레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축하하는 요즘, 모리야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좋은 묵상거리를 전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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