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특별한 인물들] 자신의 자리를 망각한 하가르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가르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집트 노예인 하가르를 남편의 침실로 들여보내 후사를 잇게 하였습니다. 사라가 생각하기에 하인들 중에서 뽑은 하가르는 믿음직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라는 하가르가 심성이 착하고 순종적이라 아이를 낳은 후에도 자기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가르도 처음에는 주인 사라의 환대가 눈물 나게 고마웠을지도 모릅니다. 사라가 자신을 선택해 주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상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갖게 되자 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신분 상승을 하게 돼 하가르 본인도 얼떨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왜 그럴까요? 시간이 흐르자 하가르는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 가문에 아들을 낳아 주게 되면 아무도 나를 업신여기지 못할 거야. 사실 그동안 나는 너무도 당하면서 살았어.” 시간이 흐르면서 하가르의 사라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불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가르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동을 하여, 결국 총애 받던 여 주인 사라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처음 하가르와 사라는 서로에게 아주 좋은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서로 나쁜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대상관계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가르는 여주인 사라의 자리를 넘보며 금지된 경계선을 넘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선을 넘는 행동이 일어났을 때 생기는 결과는 뻔합니다. 갈등과 싸움만이 남습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한 하가르의 태도는 곧 화를 불렀습니다. 멸시당한 사라는 아브라함과 담판을 벌입니다. 결국 아브라함도 마음이 아팠지만, 사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나는 당신 뜻을 따르겠소.” 하가르의 교만한 행동은 대가를 톡톡히 치릅니다. 하가르는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자기 고향인 이집트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자기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사라에 대한 원망, 아브라함에 대한 실망감,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탄에 휩싸여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채로 광야를 헤매다 지쳐서 샘물 곁에 쓰러집니다. 그때 하가르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질문을 합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가르는 그제야 자신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하가르는 자신의 자리가 여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분수없이 교만하게 행동하면서도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보다는 사라의 학대 때문이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자기방어적으로 생각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다시 네 주인에게 돌아가라. 그곳이 네가 있을 자리다.”라고 말해 그녀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와 들나귀와 같은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자리가 있고 다른 이와 맺는 관계가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이탈하여 대상관계를 혼동할 때, 인간은 고통과 시련, 멸시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과연 나는 나의 올바른 자리에 늘 서 있습니까?(창세기 16장, 21장, 25장을 읽어보세요.)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서울주보 5면, 허영엽 마티아 신부(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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