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의 목자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광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그곳에는 목자가 많아,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이들이 목자라는 점(루카 2,8-14)은 퍽 자연스럽습니다. 히브리어로 베들레헴은 ‘베잇 레헴’인데 ‘베잇’은 ‘고장’, ‘레헴’은 ‘빵’입니다. “생명의 빵”(요한 6,35)이신 예수님께서 ‘빵의 고장’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상징적이지요. 그런데 고대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기초하면 ‘레헴’은 ‘고기’입니다. 이는 베들레헴이 가축을 많이 키운 동네였다는 뜻인데요, “착한 목자”(요한 10,11) 예수님께서 ‘가축의 고장’에서 탄생하셨다는 점도 상징적입니다. 다윗도 어린 시절 베들레헴(1사무 17,12-15)에서 목자로 살았지요. 혹자는 광야에서 무슨 짐승을 키우냐며 의아해하지만, 여기엔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에는 농부와 목자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애써 경작한 밭을 가축이 와서 망칠까 봐 경계하였고(예레 12,10), 갈등 끝에 목자는 인적이 드문 광야로 방목지를 옮겼습니다. 정착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농부가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요. 이런 배경을 반영하듯이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풀 뜯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우기에는 광야에도 풀이 나므로, 풍요롭지는 않아도 방목이 가능합니다. 성경에 목자와 양떼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광야에서 양을 보면 야릇한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양은 겁이 많고 소심해 무리 짓는 걸 좋아합니다. 목자가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가축이라서, 예부터 임금들은 목자에 비유되었습니다. 고대 바빌론에는 ‘임금 없는 민족은 목자 없는 양떼와 같다.’라는 속담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목자가 다 선한 건 아니었지만요. 옛 유다 법전 『미쉬나』(바바 캄마 10.9)에는 삯꾼 목자에게 양털이나 젖을 구입하지 말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주인 허락도 없이 양떼를 착취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삯꾼은 보수에만 관심 있어서 위험이 닥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요한 10,12-13). 옛 예언자들은 불성실한 이스라엘 임금을 이런 악한 목자에 견주고(예레 23,1-8; 에제 34,1-10) 선한 목자이신 하느님을 본받으라고 질책하였습니다(에제 34,11-16). 그리고 회복의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이상적인 다윗 후손을 목자로 주시리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었습니다(에제 34,23-24; 37,24). 실제로 다윗은 어린 시절 목동이었기에 목자의 심상을 쉽게 불러일으킵니다. 이후 이 예언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에게서 실현되는데, 참 목자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습니다(요한 10,14-15). 지금도 광야에서 방목하는 양떼를 보면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하고 노래한 다윗의 찬송이 떠오릅니다. 그도 자신에게 의지하는 양을 키워 보았기에 이런 시편을 읊을 수 있었겠지요. 짐승이든 사람이든 오롯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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