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네 번째와 여덟 번째 행복 선언은 의로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굶주리다’(πεινάω)와 ‘목마르다’(διψάω)는 일반적으로 강한 욕구로 음식과 음료를 직접 먹고 마시는, 단순하면서도 자연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자연스럽게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 삶에서 특별한 행위나 의식이 아니라,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 욕구이며 본능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동사들은 자주 같이 사용됩니다(마태 25,35.37.42.44; 1코린 4,11; 묵시 7,16 참조). 그런데 마태 5,6을 제외하고 이 동사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의 대상, 곧 직접목적어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직접목적어에 해당하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함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봤을 때, 직접목적어가 있는 것 같은 문장도 있지만, 문법적으로는 직접목적어가 아닙니다: •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시편 42,3). 여기서 ‘하느님’은 목적격 전치사(πρός) 다음에 사용되어 직접목적어가 아닙니다. •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시편 63,2). 여기서 ‘당신’은 문법적으로 여격이지 직접목적어가 아닙니다. 따라서 마태 5,6은 이들 동사에 직접목적어가 사용된 유일한 구절입니다. 의도적으로 직접목적어인 “의로움”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음식과 음료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이라는 문자적 차원을 넘어 ‘인간이 의로움에 대해 강한 기본적 욕구를 갖는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아모 8,11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이 밖에 요한 4,14; 6,35; 7,37; 묵시 21,6; 22,17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마태 5,6에 나오는 행복한 이들은 의로움의 욕구와 필요성을 내면에 간직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의로움은 인간의 존속을 위해 공급되어야 할 음식이나 물과 같습니다. 의로움은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모든 순간 갈망의 대상입니다. 두 동사의 현재 분사형으로 표현된 ‘의로움에 굶주리는 사람’ ‘의로움에 목마른 사람’은 인간의 일상적 특성과 그 열망을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의로움은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서만 떠오르는 게 아니라, 생명 유지를 위해 먹고 마시듯 매일의 일상에서 찾고 구해야 하는 간절함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022년 6월 5일(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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