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성서 이야기] (2) 예수님은 누구이실까? 복음서 중 제일 먼저 기록된 마르코 복음서 첫 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하지만 공교롭게도 복음서 전반에는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날 때마다 함구령이 나온다.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기원후 92년경 플라비우스 요세프스는 그의 저서 유대고대사에서 예수님께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한편 예수라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는데 너무나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선생이었다.”(유다 고대사, 18-3)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는 행하신 많은 기적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세계와 물질세계, 영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놀라운 기적을 35회 이상이나 행하셨다. 이는 왜곡되고 변질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구원 활동으로 여겨진다. 놀라운 일,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의 구원활동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와 사두가이파와 같은 종교 집단은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 가는 예수님이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실 때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파견하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의 활동을 주시하였다. 그들은 회당에 진을 치고 있던 악의 세력도 쫓아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루카복음서에는 바리사이파들 중에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세례자 요한마저도 그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인지, 그분이 메시아이신지 믿음과 확신이 필요했었다. 감옥에 갇힌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확인을 한다. 예수님께서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보게 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루카 7,20-23). 요한복음서 3장에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라는 니코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가 나온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2).” 그는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니코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지지 발언을 하는(요한 7,51) 숨은 제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뒤에는 왕의 장례를 연상할 만한 많은 몰약과 침향을 섞은 향유를 가져오기도 한다(요한 19,39). 니코데모가 가져온 향유의 양은 백 리트라쯤이라고 하였는데 1리트라는 약 0.737 킬로그램이다. 그러니 70 킬로그램이 넘는 향유를 가져온 것이다. 예수님의 놀라운 일은 당신이 부르시고 선택하신 제자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신 일이 있었다. 그들이 기뻐하며 돌아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자신들에게 복종’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셨다. 파견된 제자들의 활동을 보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17-24)라고 하셨다. 요한복음서는 주님을 알아본 제자들의 증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2022년 7월 10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원주주보 들빛 5면, 김경랑 귀임마리아 수녀(복음화사목국 성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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