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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시편 톺아보기: 시편 73편, 떫고 씁쓸하고도 신맛 나는 신앙 이야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2 조회수2,092 추천수0

[시편 톺아보기] 시편 73편, 떫고 씁쓸하고도 신맛 나는 신앙 이야기

 

 

우리는 인생의 역동적인 삶을 나타낼 때 다양한 맛에 빗대어 표현하곤 합니다. 좌절을 겪을 때 ‘인생의 쓴맛’을 봤다고 하고, 고약한 시집살이의 어려움은 고추의 매운맛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또 세상 사는 재미가 쏠쏠할 때는 ‘살맛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편 유달리 얼큰하고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매운맛 좀 볼래?’라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하곤 합니다. 이처럼 맛에 우리 삶을 비유하는 까닭은, 먹는 것이 삶과 가장 밀착되어 있기에 ‘맛’이 우리 인생을 맛깔나게 표현하는데 그저 그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살펴볼 시편은 73편입니다. 저자는 ‘아삽’이라는 인물인데, 그 이름은 ‘모으는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여두른, 헤만과 더불어 유명한 3대 악장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레위인의 지도자로서 성전 예배 때에 찬양대를 이끌기도 하였습니다.(2역대 29,30) 시편 전체에서 아삽의 시편으로 되어 있는 시편은 모두 열두 편입니다.

 

모세오경이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150편의 시편도 다섯 권으로 나누어 묶을 수 있습니다. 시편 73편은 그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시편 가운데 세 번째 권의 첫 시편으로서 세 번째 권 전체의 서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73편은 우리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맛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곧 시편 73편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맛은 씁쓸하고 떫으며 신맛이 강합니다. 시편 73편은 의인은 고통을 받고 악인들은 되레 축복받는 것 같은 불의하게 여겨지는 삶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1절과 13절, 그리고 18절의 ‘정녕’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아아’, ‘아이고’라는 한탄 섞인 감탄사로 표현되어 혼란스러운 저자의 마음을 잘 대변합니다. 저자는 눈 앞에 펼쳐지는 불의한 현실에 대해 정직하게 갈등하고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하느님은 의인에게 복을 내리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신데 오히려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 현실 앞에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편합니다. 그의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신앙적 회의감은 그가 마치 하느님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3절) 그러기에 그가 내뱉는 탄식에서는 세상살이의 억울하고 쓰리고 고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떫고도 시고 쓴맛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시인이 악인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윤기가 줄줄 흐르는 기름진 몸에 목에는 교만이라는 목걸이를 걸고, 폭력을 나들이옷처럼 둘렀으며, 피등피등 살이 쪄 비계로 불거져 나온 눈을 가졌고, 악의에 찬 말을 쏘아 대며, 비웃고, 심술궂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을 즐기는 자들입니다. 오만이 목걸이인 양, 그리고 날개옷인 양 입고 다닌다는 폭력과 악행은, 그들이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멋진 옷을 입고 액세서리로 장식한 것처럼 버젓하게 뽐내는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의인의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들의 만사형통, 승승장구를 보며 자신이 깨끗한 마음으로 죄짓지 않으려 애쓴 모든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집니다. 아삽은 솔직하게 자신이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걸음이 미끄러질 뻔했다고 토로합니다. 불의한 현실 앞에서 낙담과 좌절로 지금껏 믿고 있었던 신앙이 흔들리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럴듯해 보이는 믿음으로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싶었음을 진실되이 고백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그 깊은 고민은 그가 하느님의 성소에 들어간 뒤바뀝니다. 그는 성소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아니라 악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서 있게 하셨고 순식간에 그들을 멸망시켜 사라지게 하심을, 그리고 자신이 미끄러지지 않았음은 하느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하느님의 오른손이 그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악인들의 호의호식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운 마음에 이 모든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새로운 고백을 합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반석이시고 하느님이 자신의 피신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절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모든 구원 업적을 선포하리라는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느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의 저자는 믿음을 흔드는 신앙적 갈등을 통하여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간 것입니다.

 

시편 73편은 하느님께서 왜 부조리와 악덕을 방임하시냐는 불만도 품어 보고, ‘까닭 없이’ 받아야 하는 고통으로 휘청거려 보기도 한 저자의 ‘영적 성장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승승장구하는 악인들, 그들을 보며 신앙인들도 갈등과 혼란을 겪기도 하고 때론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가장 오해하는 때가 바로 이럴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심에서 신뢰로 넘어선 시인이 들려주는 떫고 씁쓸하고도 신맛 나는 신앙 이야기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살맛’으로 변화됩니다.

 

[월간빛, 2022년 7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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