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브라함을 찾아온 세 손님 헤브론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곳으로 순례 갔던 날 팔레스타인 데모가 일어나 사방에서 돌이 날라 다녔기 때문입니다. 헤브론은 1967년까지 요르단의 영토였다가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로 넘어간 곳이라 분쟁이 잦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외국인 순례자들은 거의 들어가지 못하지만,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살았고 그의 가족이 묻혀 있는 고을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나자 무덤으로 막펠라 동굴을 사들입니다(창세 23장). 이후 자신도 그곳에 묻히고(25,7-11) 이사악과 레베카, 야곱과 레아도 같은 곳에 묻힙니다(49,31; 50,13). 벤야민을 낳다 산고로 죽은 라헬만 베들레헴 입구에 따로 잠듭니다(35,16-20).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광야에 인접한 도시입니다. 지명 뜻은 ‘연합하다’ ‘묶다’로 추정되는데요, 주변의 정착촌 넷이 연합했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헤브론의 옛 이름 “키르얏 아르바”(창세 23,2; 여호 14,15) 역시 ‘넷의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창세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헤브론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 살던 시절 길손 셋이 방문해옵니다. 당시 길손은 바깥 소식을 듣게 해주는 반가운 존재였지만, 그들이 방문해온 때는 “한창 더운 대낮”(1절), 곧 외출을 꺼리고 낮잠을 자던 시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귀찮은 기색 없이 손님들을 맞아 발 씻을 물을 내어놓습니다(4절). 당시에는 샌달을 주로 신고 다녀서, 광야 주변을 오래 걷다 보면 발이 쉽게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발의 피로를 풀도록 물을 제공하는 건 큰 환대였습니다(창세 24,32; 루카 7,44). 아브라함은 빵도 좀 가져오겠다며 천막으로 들어가 풍성한 식사를 준비해 나옵니다. 세 길손이 어디서 온 누군지는 모르지만, 먼 길 오느라 시장했을 마음을 헤아린 까닭입니다. 이런 환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길손은 사라의 잉태소식을 전해주는데요, 아브라함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것도 바로 이때인 듯합니다. 수태고지를 접한 사라가 숨어 웃는 걸 알고 길손이 꾸짖자(창세 18,12-13) 그들이 천사들임을 인식한 것이지요. 이를 암시하듯 2절에서는 길손이 “세 사람”으로 나오는데, 13절에서는 “주님”으로 호칭이 바뀝니다. 구약 시대에 신적 존재들은 요즘 우리가 상상하는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일반인의 모습으로 발현했기에 아브라함처럼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브 13,2에서는 아브라함의 예를 암시하며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곧 누가 주님께서 보내신 천사인지 알 수 없으니,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허투루 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마므레가 유적지가 되었지만, 각박해진 현대인들에게 헤브론은 인간미 넘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떠올려주고 그를 본받도록 일깨워주는 성지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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