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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압의 후손, 룻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23 조회수2,697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압의 후손, 룻

 

 

이스라엘에서 사해 맞은편 동쪽에는 모압 산지가 자리해 있습니다. 모세를 장사 지냈다는 느보산(신명 34장) 언저리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모압 산지를 보면, 롯의 두 딸에 얽힌 사연(창세 19,30-38)이 떠오릅니다. 소돔의 유황불에서 살아남은 그네들이 천륜을 어기고 부친과 동침해 자식을 얻은 우여곡절 말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은 이랬습니다.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을 방문한 천사들(창세 18장)이 소돔의 타락상을 살피려고 들어갔을 때 소돔인들이 그들을 능욕하려 몰려듭니다(19,1-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에 자기 두 딸을 대신 내어놓으려 하였습니다. 성경 시대 여인들은 집이 가난해지면 종으로 팔리기도 하였고(탈출 21,7), 당시 사람들은 자기 지붕 밑에 거하는 손님 보호를 명예가 걸린 임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를 한껏 고려한다 해도, 제 명예를 위해 딸들을 위험에 빠뜨린 롯에게서 비정한 아비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끝난 뒤,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근친상간이라는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그가 그토록 지키려 한 명예를 한 번에 무너뜨립니다. 그들 나름대로 한 맺힌 복수를 한 셈이지요. 아버지가 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듯, 딸들도 아버지가 인사불성 되어 아무것도 모를 때 두고두고 수치가 될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롯은 이스라엘의 숙적이 될 모압족과 암몬족의 조상을 낳게 됩니다. 첫째 딸이 낳은 아들은 모압이고, 둘째 딸이 낳은 벤 암미는 이후 암몬의 선조가 됩니다.

 

하지만 모압족은 하느님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신명 23,4-5).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뒤 모압 평야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임금 발락이 발라암이라는 자를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민수 22-24장). 이 일로 모압족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면 안 된다는 금령(신명 23,6-7)까지 생깁니다.

 

그런데 룻기에 따르면, 모압족의 이런 잘못을 대신 갚으며 금령을 무력화한 이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모압 여자 룻입니다. 판관 시대에 기근이 들어 나오미 부부가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을 때 남편과 두 아들이 그곳에서 죽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인 며느리 오르파와 롯을 보내주며 새 인생을 살아가게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곁을 끝까지 지켜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섬기게 됩니다. 곧 룻은 모압의 후손이지만 이스라엘인 시어머니가 가장 어려울 때 동반자가 되어준 것이지요. 가장 위태로울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환난을 겪을 뻔한 롯의 딸을 위로라도 하는 듯 말입니다. 상심한 시어머니를 한결같이 봉양한 룻은 성모님을 예표하는 여인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예루살렘의 성모 영면 성당에는 룻의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룻은 보아즈와 수숙혼(嫂叔婚)하여 다윗과 구세주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니,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 끝에 모압을 탄생시킨 롯의 딸의 말 못할 아픔을 씻어주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7월 24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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