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로마로 호송되는 여정의 도시들 (2) 크레타섬 - 크레타의 남쪽 해안(BiblePlace.com) 로마로 호송되는 바오로 일행은 소아시아 남서부 연안 도시 크니도스까지 가지만 맞바람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살모네 쪽으로 향합니다. 간신히 살모네를 지난 배는 라새아 시(市)에서 가까운 ‘좋은 항구들’이라는 곳에 닿습니다(사도 27,7-8; 지도 참조). 살모네는 크레타섬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곶(串)으로, 오늘날에는 시데로(Sidero)라고 부릅니다. ‘좋은 항구들’은 크레타 섬 서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로 오늘날에도 말 그대로 ‘좋은 항구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칼로이 리메네스’(Kaloi Limenes)라고 부릅니다. ‘좋은 항구들’은 만(灣)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배들이 폭풍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라새아는 좋은 항구들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도시였는데 좋은 항구들로 피신한 배들이 물품을 조달받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좋은 항구들에서 한동안 머무르다 보니 ‘단식일’도 이미 지나 버려 항해하기가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대로 항해를 계속하는 것은 짐과 배뿐 아니라 목숨까지 위험하고 큰 손실을 볼 것이라고 백인대장을 비롯한 선원들에게 경고합니다(사도 27,9-10). 사도행전이 여기서 전하는 ‘단식일’은 유다인들이 일곱째 달 초열흘날(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 사이)에 지켜야 하는 속죄일을 가리킵니다(레위 16, 29-32 참조). 이 시기가 지나면 지중해의 파도가 거세어져 항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10월부터 이듬해 2~3월까지 배들은 항해를 중단하고 쉬었습니다. 바오로는 이미 두 차례의 선교 여행을 통해 지중해 바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미 항해에 위험한 계절이 시작됐으니 무리하지 말고 ‘좋은 항구들’에서 겨울을 나고 출발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호송 책임자인 백인대장은 바오로의 말보다는 항해사와 선주의 말을 더 믿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페닉스까지 가서 거기에서 겨울을 나기로 의견을 모읍니다. 페닉스는 크레타섬 남서쪽 무레스라는 곶(串)에 있는 항구로, 당시 섬 남쪽에 있던 몇 안 되는 항구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겨울철의 크레타섬 산맥에서 불어오는 거센 북동풍을 막아 주어 사계절 내내 항구 기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남풍이 불자 뱃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페닉스로 갈 수 있다고 여겨 크레타 남쪽 해안에 바짝 붙어 서쪽으로 항진해 나갑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에우라킬론’이라는 폭풍이 몰아칩니다. 에우라킬론은 크레타섬의 이다 산맥에서 남쪽 바다로 몰아치는 바람입니다. 배는 폭풍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섬에서 남쪽으로 30여 km 떨어진 카우다라는 작은 섬까지 떠내려와서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 간신히 보조선을 붙잡아 본선에 동여맬 수 있었습니다(사도 27,11-17ㄱ) - 라세아 발굴터(좌)와 지중해에 쏟아지는 폭우(BiblePlace.com) 배는 좌초되지만 이백육십칠 명은 모두 살아남아 하지만 선원들은 또 다른 복병이 두려웠습니다. 배가 폭풍우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시르티스 모래톱에 좌초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시르티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있는 시르티스 만의 이름을 딴 것으로 바닷바람에 의해 해류가 영향을 받으면 수심이 얕아져 모래톱이 때로는 수백㎞까지 펼쳐지기도 하는 아주 넓은 해역을 말합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배의 짐을 일부 바다에 내던지고 배에 딸린 도구들도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이 잦아들지 않은 채 여러 날 계속되자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맙니다(사도 27,17ㄴ-20). 그러자 바오로가 다시 나섭니다. 자기 말대로 좋은 항구들에서 겨울을 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나서 그러나 배는 잃겠지만 아무도 목숨은 잃지 않을 것이니 용기를 내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간밤에 본 환시를 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 우리는 어떤 섬에 좌초하게 되어 있습니다.”(사도 27, 21-26). 아드리아해에서, 곧 크레타섬과 시칠리아섬 사이의 지중해에서 거센 바람에 떠밀려 다닌 지 열나흘째 밤이 되었을 때 선원들은 배가 육지에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를 내려 재어보니 실제로 점점 더 뭍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보조선을 배에서 내려 달아나려는 낌새를 알아챈 바오로의 말을 들은 백인대장은 군사들에게 밧줄을 끊어 보조선을 그냥 떠내려 보내게 합니다(사도 27,27-32) 날이 밝기 시작할 때까지 바오로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고합니다. 열나흘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은 채 버텨왔으니 살아남으려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모든 사람 앞에서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떼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용기를 내어 음식을 먹었고, 배불리 먹은 다음에 남은 밀을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날이 밝자 해변이 보였고 선원들은 배를 해변에 대려고 했지만 배는 모래 언덕에 박혀서 마침내 좌초하고 맙니다. 백인대장의 지시에 따라 배에 탄 사람들은 헤엄을 치거나 널빤지 등을 이용해 뭍으로 나옵니다. 배에는 로마로 호송되는 죄인들을 포함해 이백육십칠 명이나 타고 있었는데 모두 무사히 살아남은 것입니다(사도 27,33-44). 이 뭍에 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열나흘이나 표류하다가 그날 밤에 바오로가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그것을 떼어서 먹고 배에 탄 사람들도 모두 배불리 먹은 후 밀을 바다에 던져 버린 이 대목은 묘하게도 구약의 출애굽 그리고 신약의 최후 만찬과 파스카를 떠올리게 합니다. - 좋은 항구들(BiblePlace.com) 크레타섬은 고대 유럽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 바오로가 한동안 지냈고 또 그곳에서 겨울을 난 다음에 출항하자고 주장했던 크레타섬 ‘좋은 항구들’은 오늘날에는 지중해를 오가는 선박들이 배에 사용할 기름을 보충하거나 물자들을 옮겨 싣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작은 어항도 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시대의 유적들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래된 교회 터가 있는데 그 터 위에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는 작은 경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또 경당에서 아래쪽으로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이 동굴에서 바오로가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바오로의 말을 무시하고 선원들이 겨울을 나고자 했던 페닉스는 아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옛 요새 유적을 비롯해 고대와 중세 시대 유적들을 일부 볼 수 있습니다. 페닉스의 서쪽은 휴양지로 적합한 해변이 펼쳐져 있고, 동쪽은 ‘루트로’라고 하는 어촌 마을이 있습니다. 고대에는 이곳 수심이 오늘날보다 최고 6m 이상 더 깊어서 큰 선박들의 정박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로마로 호송되던 바오로가 거센 바람을 피해 한동안 머물렀던 크레타섬은 고대 유럽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고대 철학자 에피메니데스 그리고 ‘오르가스 백작의 죽음’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가수 나나 무스쿠리(1934~ )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인 크레타섬은 그리스 영토에 속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8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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