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검지만 아름다운 포도원지기(아가 1,6) 이스라엘에서 유다인과 아랍인을 벗 삼아 오래 살다 보면 중동인 특유의 외모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도 상상해보게 되지요. 까만 눈동자에 곱슬 머리, 해에 그을린 피부. 아가 1,5-6에 등장하는 소녀가 딱 그 외모인 듯합니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케다르의 천막처럼 솔로몬의 휘장처럼. 내가 가무잡잡하다고 빤히 보지 말아요. 햇볕에 그을렸을 뿐이니까요.” 중동의 태양은 정말 지독해서, 연탄 검댕이 묻은 듯 피부가 거뭇거뭇해집니다. 창백한 서양인들은 적갈색 피부가 멋지다고 하지만, 피부가 검은 사람은 흰 피부를 동경하는 법이지요. 아가의 소녀가 가뭇해진 건 포도원에서 오래 일한 탓입니다(아가 1,6). 가족의 생업을 돕느라 제 몸 가꿀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소녀는 자기 피부를 “케다르의 천막”과 “솔로몬의 휘장”에 견주는데요, 둘 다 검은 염소 털로 만들어 흑진주 색이기 때문입니다. 케다르는 옛 아라비아의 부족 가운데 하나인데(에제 27,21) 창세 25,13에 따르면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케다르는 ‘검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다르’와 철자도 같습니다. 피부색뿐 아니라 그들이 살던 천막(예레 49,29; 시편 120,5 등)도 검었음을 드러내듯 말이지요. 활 솜씨가 뛰어났던 이들(이사 21,16-17)은 에돔 땅 동편의 광야에서 방목하며 염소 털 천막을 집 삼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 탈출 뒤 광야에서 머물 때 주님 성막 위에 씌울 천막을 염소 털로 만들었지요(탈출 26,7). 2000년 전 어린 마리아의 모습도 떠올리게 해주는, 아가에 나오는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실 아가는 노골적이고 색정적인 애정 표현이 많아 정경에 들어가는 데 논란이 많았지만, 아가의 연인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예수님과 교회로 풀이되면서 경전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실제로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아가 2,16)이라는 고백은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말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한 레위 26,12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게다가 아가의 두 연인은 서로에게 ‘죽음만큼 강한 사랑’(아가 8,6)을 고백하는데요, 이런 사랑을 몸소 펼쳐 보인 인물도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으니 참으로 죽음만큼 강한 사랑이지요. 아가 2,1에서 소녀는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에 비유합니다. 이는 지중해안에서 주로 피는 꽃으로 이후 예수님의 상징으로 발전합니다. 놀랍겠지만 우리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도 사론의 수선화 중 한 종류입니다. 악조건에서도 끈질기게 피는 ‘영원한 꽃’이지요. 몸을 사리지 않고 이스라엘 포도원을 가꾼 수선화 소녀와 죽음만큼 강한 사랑을 펼쳐 보이신 예수님의 수선화 그리고 오래 이어진 한민족의 무궁화.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요즘 알 수 없는 이유로 무궁화가 천대받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사론의 수선화를 더 많이 심고 사랑할 것도 생각해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8월 7일(다해)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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