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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벳자타 못과 안식일 논쟁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14 조회수1,562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벳자타 못과 안식일 논쟁

 

 

제가 예루살렘에서 살 때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집에 갇혀 심심한’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다인들과 같이 살아서 안식일 아침에는 찬 음식을 먹고, 전기와 가스는 자동 타이머가 들어오는 시간에만 쓸 수 있었습니다. 버스도 끊기고 상점도 죄다 닫아 독서와 산책 말고는 할 게 없었지요. 나중에는 집에서 푹 쉰다며 나름 위안할 만큼 발전했지만, 안식일을 지키려 가방도 들지 않는 유다인들을 보면서 벳자타 못에서 일어난 안식일 논쟁도 떠올리곤 하였습니다. 벳자타 못은 예수님께서 오랜 병자를 낫게 하신 곳입니다(요한 5,1-18). 하필 그날이 안식일이라 논쟁이 벌어졌지요.

 

벳자타 못은 정결 예식터였습니다. 유다인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 몸과 봉헌 제물을 씻던 저수지입니다. 성전 주변에는 이런 예식터가 여럿 있었는데, 실로암(요한 9,7)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벳자타 못은 기원전 8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걸로 추정됩니다. 이후 기원전 200년에 대사제 시몬이 물 공급량을 늘리려고 저수지를 하나 더 만들어 두 개가 됩니다. 요한 5,2에서 벳자타 못은 주랑 다섯 채가 딸린 곳으로 묘사됩니다. 곧 주랑 다섯 채가 저수지 둘을 감싸는 ‘해 일’(日)자 모양인데, 예루살렘 성 북동쪽의 “양 문”(2절) 바깥에 있었습니다. 양 문은 제물로 쓸 양을 성전에 데려갈 때 통과한 문이라 붙여진 이름인데요, 그 전에 양을 벳자타에서 정결하게 씻었습니다. 주랑 아래에는 못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물이 출렁거리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저어주는 거라고 여겨(공동번역 참조) 치유 효과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오랜 병자를 보시고 “건강해지고 싶으냐?”(6절)하고 물으십니다. ‘물이 출렁일 때 자기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그가 답하자 예수님은 “네 들 것을 들고 걸어가거라.”(10절)는 말씀으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이를 알고 예수님을 박해합니다(16절). 여기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게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들 것을 들고 걸어가게 하신 것’이 문제였습니다(10절). 중병인 경우에는 치료 행위가 율법에 저촉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 짐을 나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예레 17,21-22에 나오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유다인들은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령에는 숨은 뜻이 있었습니다. 노동하는 백성이나 종에게는 안식일이 은혜로운 날이지만, 그들을 부리는 부유층에게는 환영받는 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 파기는 부유층의 욕심 탓에 일어났을 공산이 크므로, 안식일에 짐 나르는 행위는 약자 착취에 해당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벳자타 못 가의 병자가 들 것을 나름으로써 율법을 어겼다는 것은 너무 편협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마태 12,12)고 선언하시며 형식주의에 따른 안식일을 개혁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안식일이 이런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바로 창조 때부터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날이므로 너무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정기적으로 영육간의 휴식을 취해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8월 14일(다해) 연중 제20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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