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나인 마을 과부 매년 봄 이스라엘에는 개양귀비와 아네모네가 흐드러지게 피어 군데군데 꽃동산을 연출합니다. 빨간 이 꽃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영화로운 솔로몬보다 더 잘 차려 입었다고 말씀하신 나리꽃(마태 6,28-29)으로 추정됩니다. 나인 마을에도 해마다 붉게 피어 외아들을 잃었던 과부의 슬픔(루카 7,12)을 표현해주는 듯합니다. 나인은 나자렛 근처에 자리한 갈릴래아의 한 고을입니다. 지금은 아랍-이슬람교인들이 사는 시골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인의 성당은 마을 한가운데 있지만 지켜주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없습니다. 마치 옛날 과부의 처지와 비슷해 보입니다. 고대에는 과부가 가장 소외되고 불쌍한 약자에 속하였지요. 남편이 없으니 소작도 어려워 타인의 동정에 의존해야 한 점이 과부에게 수치가 된 듯합니다(이사 54,4). 모세오경은 이런 약자를 위해 소출의 일부를 나누어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신명 14,28-29). 또한 수확 시기에는 이들이 이삭 줍는 것도 허락하였습니다(신명 24,19; 룻 2,2). 약자에 대한 이런 배려는 이스라엘 주변 나라에도 존재하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 가운데 하나인 함무라비 법의 맺음말에는 함무라비가 ‘신들이 자신을 지명해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고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옛 가나안의 한 설화에서는 ‘단엘’이라는 임금을 고아와 과부를 보호한 정의로운 인물로 칭송합니다.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라는 독려가 많았다는 건 그만큼 학대하기 쉬웠다는 반증일 터입니다(에제 22,6-7 등). 루카 7장에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백인대장의 하인을 치유해주신 뒤 나인으로 가신 일이 서술됩니다. 오늘날 자동차로는 30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인데, 마침 나인에서는 과부의 외아들 장례 행렬이 있었습니다. 이를 미리 알고 가신 것일까요? 남편을 잃은 뒤 하나밖에 없는 자식도 떠나 보낸 과부의 절망을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되살려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구약 시대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의 아들을 되살려주었듯이 말입니다(1열왕 17,1-24). 사렙타는 티로와 시돈 사이에 자리했던 옛 페니키아의 성읍인데, 현재는 레바논 땅입니다. 엘리야가 사렙타에서 일으킨 기적은 후대에 깊은 인상을 남겨, 예수님도 나자렛 회당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루카 4,26). 루카 7장의 군중이 예수님을 보고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16절)며 칭송한 것도 엘리야만큼 대단한 일을 한 예언자가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나인 마을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15절)고 기록하여 엘리야가 일으킨 옛 기적(1열왕 17,23)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나인의 성당은 이 일을 기념하여 봉헌된 곳입니다. 하지만 성직자도, 신자도 없이 홀로된 모습이 여전히 과부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요한 14,18)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우리 역시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홀로 방치해두면 안 된다는 당부로도 다가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8월 28일(다해) 연중 제22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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