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맛들이기] 유다인들 삶의 중심이자 믿음의 표지인 ‘안식일’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일을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요즘처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쉼과 여가의 의미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살고자 하는 종교적 가치였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으로 표현되었고, 그 말씀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율법과 계명으로 구체화되어 유다인의 삶을 지배해 왔습니다. 바빌론 유배 이전의 이스라엘에서는 일곱째 날을 휴일로 지내는 것과 종교의식으로 안식일을 지내는 것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유다인들에게 삶의 중심이자 믿음의 표지였습니다. 안식일의 성격이 분명하게 굳혀진 때는 바빌론 유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유배 상황 속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주요한 표지였고(에제 20,12),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드러내는 ‘징표’가 되었습니다(탈출 31,13). 이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 되어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될 자격을 잃었고, 반드시 사형에 처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였습니다(탈출 31,15; 민수 15,32-36 참조).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하느님이 직접 정한 규범이며 선물이라고 명확히 밝혀줍니다(창세 2,2-3; 탈출 16,22-30). 안식일은 천지창조 때의 일곱째 날을 기념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한 것과 하느님께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 시켜주신 것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신명 5,12-15 참조). 이런 면에서 안식일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를 나타내는 증거로써, 이스라엘의 각 세대에게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그들의 뿌리를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탈출 31,13.16-17; 에제 20,12-20 참조).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였습니다. 신약의 시대에도 안식일 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더욱 세분화되어 복잡해지고 많은 규정이 부과되었습니다(마태 12,1-8; 요한 5,9-18 참조). 신약 성경을 보면 안식일 규정 때문에 예수님과 특히 바리사이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야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태 12,1-14; 요한 5,1-18 참조). 물론 예수님께서도 기본적으로는 안식일 법을 존중하고 따르셨지만(마르 6,2; 루카 4,16.31 참조), 율법의 세부적인 조항에 집착하여 그 근본정신을 흩트려 놓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인 태도에 맞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임금이 배고픔을 겪는 일행을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행위를 보여 준 점을 예시하는 것으로 바리사이들의 감춘 위선의 탈을 벗겨 버리기도 하셨습니다(루카 6,1-5 참조). 안식일은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느라고 바빴던 일상을 멈추고, 그동안 잊고 지내기 쉬운 하느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제정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해야 할 일들,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과 머무는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진정한 쉼이 아닌 소모와 탕진으로 얼룩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콜로 1,22). [2022년 10월 2일(다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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