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 :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마태 16,13-20) 지난 겨울, 개인 피정을 하면서 홀로 성전에 앉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머물러 보았습니다. 의외로 선뜻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나름 꽤 오랜 시간 외국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논문을 쓰면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마태 1,23; 28,20 참조)이시라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정작 예수님과 마주 대하며 ‘너에게 나는 도대체 누구니?’라는 저를 향한 예수님의 개인적인 질문에는 쉽게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고 마음도 움직이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생각해 낸 답은 ‘당신은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라는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저의 구원자, 창조주, 메시아여야만 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소의 길에 들어온 지 신학교 십 년, 유학 십 년, 이렇게 적어도 이십 년 이상을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예수님은 저에게 그러해야만 했습니다. 한편으로 참 죄송했습니다. 금방 답하지 못해서 죄송했고, 예수님을 그렇게 저에게 맞추어야만 했던 사실에 죄송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그럼 저는 당신께 누구입니까?’ 곧장 제 마음 속에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이다. 내 기쁨이다. 그리고 내 친구, 내 형제다. 내가 너를 불렀고, 너와 함께하고 싶다.’ 그 순간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비록 제 상상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상상마저도 주님께서 주셨기에, 이 역시도 주님의 선물이라 믿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말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할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16,13)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질문은 이제 제자들 각자를 향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5)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예수가 아니라,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열두 사도를 대표하여 베드로가 말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 이는 즉 ‘예수님 당신은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생생히 현존하시는 주님이시며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구세주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그에게 주시고 하늘과 땅의 맺고 푸는 권한을 맡기십니다. ‘맺고 푸는 권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특권이며, 구체적인 사랑과 용서로써 실행됩니다. ‘모임, 집회, 회중’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할’에서 파생된 ‘에클레시아(교회)’라는 낱말은 복음서에서 단 두 번, 이곳과 18장 17절에서만 쓰이는데, 이제 이 용어는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전하며, 특별히 죄의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한 이 단락(16,13-20)은 예수님의 갈릴래아와 그 주변에서의 활약상(3,1-16,20)을 마무리하며 복음서 전체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16장 21절부터 수난과 부활이 세 번에 걸쳐서 예고되고(16,21-23; 17,22-23; 20,17-19)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어 그곳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의 파스카 사건을 완성하시기 때문입니다.(16,21-28,20) 이 여정의 시작에서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유일한 길, 바로 십자가의 길로 제자들을 초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16,24)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냥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일치하며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에게 누구십니까? 또한 저는 예수님께 누구입니까?’ 깊어가는 이 가을에 예수님과 마주 앉아 진솔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한번 가져 보시면 어떨까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5) [월간빛, 2022년 10월호,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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