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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와디 룸과 에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24 조회수2,304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와디 룸과 에돔

 

 

이스라엘의 동쪽에 자리한 요르단에는 붉고 노란 모래로 빛나는 광야가 있습니다. 홍해에서는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와디 룸’입니다. 이곳에 한 번 다녀오면 상사병에 걸린 듯 한동안 와디 룸 앓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발목까지 빠지는 모랫길을 걸으면, 여기가 바로 에사우의 후손 에돔의 땅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붉고 노란 모래 빛깔이 ‘붉다’라는 뜻을 지닌 에돔과 그 조상 에사우(창세 36,1)의 피부색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뱃속 싸움에서 승리해 선둥이로 태어난 에사우는 신체 조건이 야곱보다 좋았지만, 선택받은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의 무게가 덜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약삭빠른 야곱보다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에사우에게 더 동정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배고픈 형에게 그냥 줘도 됐을 콩죽으로 장자권을 앗아가고 형으로 분장하여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에 비해, 야뽁 강에서 동생을 재회하였을 때 호방히 용서할 수 있었던 에사우의 형다운 모습(창세 33,4)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의 허기 때문에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아우에게 발목을 잡힙니다. 실제로 에돔은 선둥이의 후손답게 이스라엘보다 왕국을 먼저 세우지만(창세 36,31), 다윗에게 정복당합니다(2사무 8,14). 이로써 야곱이 가로챈 장자권의 효력이 증명되고요.

 

에사우는 장정을 사백 명이나 거느릴 정도로 세력이 컸습니다(창세 33,1). 그가 정착한 곳은 세이르 지방인데요(창세 32,4), 본디 그는 가나안에서 살았지만 가산이 많아 야곱과 함께 살기에 좁아서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었습니다(창세 36,5-8). 그 뒤 세이르는 에돔을 대표하는 영토로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데(민수 24,18; 에제 35,15 등), 그곳은 와디 룸보다 좀 더 북쪽으로 자리한 산악 지대입니다.

 

에사우는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뒤 살인을 생각할 정도로 오랫동안 앙심을 품었습니다(창세 27,41). 그의 원한은 야뽁 강에서 야곱을 재회했을 때 사라진 듯했지만, 은연중에 자자손손 이어져 에돔의 적대 행위로 표출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사악이 야곱에게 한 축복처럼 에돔은 끝내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망하자, 에돔은 마침내 자기 목에서 이스라엘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게 됩니다(창세 27,40).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유배살이하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남부 지방으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 뒤 이스라엘 남동쪽이던 위치도 바뀌고, 이름도 ‘이두매아’로 일컬어지게 됩니다(1마카 5,3).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로데의 아버지가 바로 이두매아 출신입니다. 그리고 이두매아 출신 헤로데가 유다인들의 임금 자리를 꿰차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에돔은 헤로데를 통하여 과거의 역사를 묘하게 설욕한 셈입니다.

 

붉고 노란 모래 속에 에사우의 후손 에돔의 흔적을 간직해온 와디 룸! 그 위로 빛나는 태양은 지금도 그들이 주름잡았던 광야의 현장을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0월 23일(다해)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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