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무력으로 정복했을까? 이번 순례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호 11,23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그대로 “모든 땅을 정복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무력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였을까요? 사실 성경의 보도를 보더라도 서로 모순되는 정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 13,1-7은 여호수아가 이미 늙고 나이가 많았는데 아직도 차지하지 못한 땅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의 전 지역과 시돈인들의 땅은 차지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판관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과정을 여호수아기와 다르게 설명합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먼저 땅을 상속받고, 그 후에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하였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지파들마다 해당되는 지역의 주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고학적 연구는 이 시대에 대해 무엇을 알려줄까요? 첫째, 기원전 13세기 말에 제작된 파라오 메르넵타의 비문은 파라오가 가나안 땅을 침공한 결과를 알려주는 승전비인데, 여기에 “이스라엘은 씨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메르넵타의 재위 기간이 기원전 1213년에서 1203년이므로, 이 무렵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미 가나안 땅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문은 성경 밖에서 이스라엘이 최초로 언급된 중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이 비문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것이 기원전 1250년경이라는 추산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둘째, 고고학적 탐사를 통해 여호수아가 정복하였다는 도성인 예리코와 아이, 헤스본이 기원전 1400년에서 1200년경에는 폐허 상태로 비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한편, 베텔과 하초르, 라키스와 같은 도성은 여호수아 시절에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당시에 불에 타다 남은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파괴는 가나안 내부의 원인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외부 침입에 의한 파괴라면 가나안에서 유래하지 않은 유물들이 발견되어야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유물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기원전 13세기에 가나안의 중앙 고원지대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물이 부족한 중앙 고원지대보다는 주로 해안 지방을 따라 사람들이 정착하였는데 갑자기 인구가 고원지대로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발굴된 그릇들의 패턴을 조사할 때 가나안 밖에서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나안 해안 지방을 지배하던 이집트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해안 지방에 살던 이들이 고원지대로 대거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볼 때 여호수아기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과정을 이상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모세의 영도력을 반사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일치단결하여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가나안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온전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땅을 분배할 때 제비뽑기를 하였고,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라합과 기브온족의 이야기는 그들 가운데 섞여 사는 이방인들의 유래에 관한 이상적인 설명입니다.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이 일치단결하여 회복을 위해 매진할 필요가 있었던 유배 시대에 과거를 이상화하여 설명함으로써 회복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를 읽으면서 하느님이 선민인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의 원주민을 쫓아내고 죽인 분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이 과연 그런 분일까요? [2022년 10월 30일(다해) 연중 제31주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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