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맛들이기] 공동체의 일치와 분열(코린토 첫째 서간을 중심으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초기 교회가 이방인 사회에서 당면했던 여러 가지 실제적 문제들을 알기 위한 귀중한 문헌 자료입니다.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뤄진 문제들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초기 교회의 생생한 모습과 바오로 사도의 사목적 배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이 겪었던 다양한 문제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 교회의 실질적인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오로가 자신이 세운 공동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분열’이 아닌 ‘일치’의 길로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그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당시 코린토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생긴 여러 갈등으로 인해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갈라져 당파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1코린 1-4장 참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바오로가 제시하는 기본 원리는 ‘십자가의 어리석음’, 즉 ‘십자가의 복음’(1코린 1,18-31)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고,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기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에게(바오로, 아폴로, 케파 등)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내세우는 이들에게 바오로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상기시킵니다(1코린 1,23-25 참조). 그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약한 것을 택한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7) 앞에서 누구도 자신의 힘이나 권세나 지혜를 자랑할 수 없기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오로지 십자가의 복음에 의지하며 성령이 거처하는 거룩한 공동체(1코린 3,16-17)와 일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공동체의 분열 문제에 대한 바오로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바오로의 말씀은 특히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나 봉사자들이 얼마나 말과 행동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고, 복음의 근본적인 정신,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얼마나 깊은 깨달음과 확신을 가져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바오로가 신앙공동체를 향해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9)라고 말한 목적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봉사자들의 본래의 역할과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데 있습니다. 즉, 바오로와 아폴로처럼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받은 이들은 ‘믿음으로 이끈 일꾼’(1코린 3,5),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1코린 4,1)이며, 또한 그들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인 신앙 공동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일꾼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그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주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총 덕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앙공동체의 주인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이시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 지도자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하느님께서 내세울 것 없는 우리를 부르신 그 동기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코린 1,28-29). 지금 우리 공동체에도 힘든 모습이 있다면 꼭 한 번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2022년 11월 13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교구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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