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 감옥 예루살렘의 시온산에는 ‘베드로 회개 성당’이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대사제 카야파의 집으로 추정되는 장소로서 겟세마니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이 끌려 오신 곳입니다. 빌라도 법정으로 넘겨지기 전 밤새 갇혀 계셨던 감옥도 이곳으로 전해집니다. 이때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였지요(루카 22,54-62). 물 저장고를 개조하여 만든 이곳의 감옥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간 예레미야도 떠올리게 하는 유적입니다. 예레미야도 이런 감옥에 두 번 갇혔지요. “요나탄 서기관 집에 있는 구덩이”(예레 37,15)에 한 번,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38,6)에 한 번 갇힙니다. 이런 저수 동굴은 대개 병 모양이라,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왕궁이나 유력자의 집에 이런 감옥이 있었는데,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혐의자를 가둬 두는 용도로 주로 쓰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감옥에 갇히며 고초를 겪은 건, 그가 전달한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시나이산 계약을 어긴 백성의 죄가 쌓여 멸망과 유배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하자, 온 나라가 분노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레미야는 예수님과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고향(아나톳과 나자렛)에서 환영받지 못한 점(예레 11,21; 루카 4,24), 평생 독신으로 산 점(예레 16,2),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을 꾸짖고 그 파괴를 예언한 점(예레 7,11.14; 마태 21,13; 23,38)이 그렇습니다. 성전 파괴 예고에 화가 난 종교 지도자들이 예레미야를 사형에 처하려 한 일(예레 26,8-11)은 신약 시대 유다 기득권층이 예수님을 최고 의회에 세우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선언하는 대목(마태 26,57-66)에서 되풀이됩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고발당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도 성전을 두고 하신 말씀(마태 26,61)이 신성모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당신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일부에선 “예레미야”(마태 16,14)라 한다고 답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예수님의 예표이긴 했지만 그분의 경지에는 다다를 수 없는 한 인간이었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박해자들을 두고 하느님께 복수를 청했기 때문입니다(예레 11,20; 17,18 등). 그에 비해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마태 5,43-45) 실제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를 보시고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하고 감싸주셨으니, 과연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 감옥을 순례하노라면 윤동주 시인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이는 사무치는 고통을 복으로 돌려주신 역설과 신비를 표현하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겪으신 그 지독한 고초를 하느님 나라라는 복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셨고, 그로 인해 당신께서도 기뻐하셨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1월 20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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