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지혜서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전통적으로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상선벌악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욥기와 코헬렛에서 의로운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등 고전적 지혜의 가르침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서 지혜서는 답을 주고 있습니다. 지혜서는 집회서와 함께 제2경전에 속한 책으로서 전통적으로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본문 자체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지혜서 초반부의 내용이 헬레니즘 시대의 가치관과 유다교의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과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지혜서는 솔로몬이 활동했던 시대가 아니라 BC 50-30년경에 최종적으로 편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C 50-30년 당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헬레니즘 왕국인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도 헬레니즘 문화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혜서의 최종 편집자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헬레니즘의 문화 안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며, 또 어떻게 유다인들의 신앙 전통을 헬레니즘 문화 안에 토착화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서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1-5장은 인간의 삶과 종말론적인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혜서는 저자는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1.1)라고 이야기하면서 악을 피하고 하느님을 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들의 속마음을 다 아시며, 그들의 그릇된 생각과 행실들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저버리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약자와 노인들을 돌보지 않는 악인들은 죽음과 계약을 맺은 자들로서 그들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며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혜서는 경고합니다. 반면 의인들은 죽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볼 부분은 4장에 나오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의인을 향한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로운 이들이 복을 누리지 못한 채 죽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선벌악, 인과응보라는 전통적인 유다인들의 믿음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지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3,1-4)라고 말하며 내세에서 누리게 될 복락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상선벌악, 인과응보의 원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세에서의 삶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내세로까지 확장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의 삶에서 마주하는 악인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은 모순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으며, 믿음이 흔들릴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6-9장은 지혜의 찬가가 울려퍼집니다. 이 부분은 주로 임금과 권력자들에게 해당하는 권고로 백성의 통치자로서 누리게 되는 모든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니 하느님의 뜻을 따를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6장 22절에서 8장 1절까지 솔로몬의 지혜 찬가를 들려주면서 한낱 인간이었던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혜를 간청함으로써 지혜로운 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7장 22절-8장 1절에는 지혜의 21가지 속성이 등장하는데 21은 7×3으로 이루어진 숫자로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즉 지혜서 저자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완전함을 전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8장과 9장에서는 지혜를 삶의 반려자로 맞아들인 사람이 누리는 행복과 지혜를 청하는 기도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9,17)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와 거룩한 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며 끊임없이 하느님의 지혜를 간청하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0-19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서 지혜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 야곱과 에사우, 요셉과 열한 명의 형제들 등 원조와 성조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지혜를 무시한 이들은 벌을 받았지만 지혜를 섬긴 이들은 하느님이 이끌어주시는 바른 길로 나아가 복을 누리고 영원한 영광 속에 살았음을 강조합니다. 뒤이어 10장 15절에서 11장 20절까지는 이집트 탈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지혜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었으며, 광야에서의 여정을 이끌어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따르지 않았던 이집트 사람들을 벌하심으로써 지혜를 따르는 길에 구원이 있음을 분명히 상기시킵니다. 뒤이어 이집트를 탈출한 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위해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11장 26절에서는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으로서 얼핏 보기에는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을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혜서는 여기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등 악에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은 관대하고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정의로운 분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님, 당신께서는 모든 일에서 당신 백성을 들어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그들을 도와주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19,22)라고 말함으로써 지혜서 서두에 “지혜는 다정한 영”(1,6)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지혜서의 시작과 마침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에 대한 찬양을 이야기하고 현세에 대한 희망을 고취하면서 끝이 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12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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