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입문 (1)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경은 인간이 남긴 기록 유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기록되고 번역되었으며 읽혀온 책이다. 원문 성경을 기준으로 볼 때, 히브리어 구약성경(BHS)은 대략 38,280절 761,913 단어, 신약성경은(NA28) 7,941절 138,014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가톨릭 성경에서 정경으로 분류되는 구약성경의 희랍어 번역 부분(구약성경의 제2경전)까지 더해지면 그 분량은 더욱 늘어난다. 이처럼 워낙 방대한 기록이라서 이 책을 자기 종교의 경전으로 받드는 신앙인들 가운데에서도 평생 성경 전체를 꼼꼼히 다 읽어 보지 못한 신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단순한 인류의 기록유산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이 고백하는 신의 계시, 곧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들에게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성경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단순한 하느님에 대한 ‘정보’(information) 모음집이 아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이 책에 담긴 말씀들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을 ‘길러주는’(formation) 책이다. 곧,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신앙인이 되어간다. 콩나물시루에 깨끗한 물을 자주 부어 주어야 그 싹이 트고 줄기와 뿌리가 자라듯, 신앙 역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시간이나 암기하여 기억하는 내용의 양이 양질의 신앙으로 모두 변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성경에서 얻어내는 ‘정보’를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늘려주는 데에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못한다. 관건은 양성의 책으로서 성경은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란다는 것, 성숙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 곧, 달라짐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성경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 성경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들음으로써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게 해 준다. 더불어 그분께서는 나의 응답을 원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참 성가신 책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사춘기의 청소년에게 부모의 말 한마디가 성가시고 짜증을 내는 것은 나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는 항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 자신을 닮아 투덜거리는 자녀들의 부모가 되면 알게 된다. 세상사는 그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는 것을. 하여 여전히 듣기 불편한 잔소리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당장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잔소리꾼 하느님께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귀를 열어야 한다. 나는 아직 더 자라야 한다. 온전한 내가 될 때까지. [2023년 1월 1일(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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