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게라사인들의 지방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는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게라사인들의 지방(이하 게라사)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던 광인을 구하시려 악령을 돼지 떼로 쫓아내 주신 곳입니다(마르 5,1-20; 루카 8,26-39). 돼지는 율법에서 식용이 금지된 동물입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레위 11,7). 그런데 게라사에서는 이를 떼로 키웠으니, 그곳이 이방인의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르 5,20에서는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합니다. 데카폴리스는 열 개의 성읍을 뜻하는데요, 로마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와 요르단강 유역의 도시 열 개를 따로 구분하여 붙인 명칭입니다. 데카폴리스는 셈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 그리스-로마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하였고, 그래서 이방문화와 토착 셈족의 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곳입니다. 문화 차이 탓에 갈등도 일어났지만, 서로 섞이며 그리스-로마 문화 전파의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게라사가 이런 데카폴리스에 속하였으니, 이방인이 많이 살고 있었던 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구해주신 광인은 무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과 정신을 점령한 악령은 수가 많아 “군대”라 일컬어졌는데요, 예수님은 그 악령을 마침 옆에 있던 돼지 떼로 쫓아내 광인을 구하십니다. 돼지들은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죽고 말지요. 실제로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편의 골란 고원 중턱에 자리해 있어, 돼지들이 비탈을 내달려 호수로 빠져 들었을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흥행했던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도 악령을 퇴치하려는 부제가 돼지를 안고 한강으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퇴마 사제와 부제가 힘을 합쳐 목숨을 걸고 악령을 몰아냈는데, 예수님은 한 마디 말씀으로 그 많은 악령을 쫓아내셨으니, 가히 그 권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악령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마르 5,7)이라 칭했지요.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마을 주민들이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반응이지만, 돼지를 잃은 주민들이 또다시 물질적 피해를 볼까 두려워한 탓일까요? 별 볼일 없는 미친 사람 하나를 구하려고 자기들 재산을 축냈으니 요즘 같으면 피해보상 소송이라도 일으킬 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이웃에 사는 광인을 예수님이 측은히 여기시어 그를 구하시려고 내 재산을 몽땅 날려버렸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말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나에게 손해나지 않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겐 있는 듯합니다. 사실 삼라만상이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풀 한 포기조차 진정 내 소유라 주장할 수 없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나 봅니다(마태 6,19-21).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 자리한 게라사의 유적은, 과연 나의 마음이 어느 보물을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1월 15일(가해) 연중 제2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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