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 구세사 1
하느님 구원 계획이 계시되고 실현된 역사 - 구세사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역사의 사실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묵상하려는 신앙 태도이다. 역사 사건을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한 구세사의 배경을 알아야 성경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조토,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세사(救世史)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 몇 차례에 걸쳐 성경 속 구세사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려 합니다. 구세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계시되고 실현되어온 역사입니다. 구세사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신 것에서 시작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 왕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성됩니다. 성경은 구세사 가운데 창조부터 사도 시대 교회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요한 묵시록을 통해 구세사의 완성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구세사의 정점 곧 하이라이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 사건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당신의 영원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인간을 위해 당신 구원의 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신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430항) 가톨릭교회는 구세사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하느님의 주권으로 성취된 하나의 구원 역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전(聖傳) 안에서 일관되게 ‘예형론’에 기초해 신ㆍ구약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단일성을 천명해 왔습니다. 이 단일성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과 계시의 단일성에서 비롯됩니다. 예형론(typologia)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이 구약의 역사 안에 이미 예표(豫表)로 나타나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신약 성경을 구약 성경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러한 예형론적 성경 읽기는 구약 성경의 내용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구약 성경이 자신의 고유한 계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형론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때 이루어질 하느님 계획의 완성을 향한 역동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성조들에 대한 부르심이나 이집트 탈출 사건이 하느님 계획의 중간 단계라고 해서, 하느님 계획에서 그 고유한 가치를 잃지는 않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0항) 이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형론 관점의 성경 해석 사례 몇 가지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담은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상징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그리스도교의 세례 성사를 미리 일러주는 사건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생활하며 바위에서 솟아 나오는 물로 갈증을 푼 것은 바로 주님의 성체 성사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본형(本型)이고, 구약의 아담이나 광야의 만나, 바위의 물 등은 모두 예형(豫型)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예형론 입니다. 성경의 역사 곧 구세사는 창조와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시작해서, 묵시록에 묘사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모든 인류가 마지막 심판을 통해 구원받아 새 하늘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 날까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전개되는 역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구세사 개념을 일부 학계에서는 그리스도교 신학이라고 국한하지만, 대다수 학자는 일반 세계사와 구세사와의 관계를 ‘사실과 그 사실의 해석’으로 이해합니다. 곧 일반 세계사는 ‘역사의 사실’를 말하는 것이고, 구세사는 ‘그 사실을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사도 시대 초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문자로 기록된 성경의 역사는 일반 세계사와 연관된 역사인 동시에 그와 다른 범주 속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은 엄연한 역사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집트 탈출이나 예수님의 수난 사건은 이집트 역사서나 공식 문서, 그리고 로마 제국의 연대기나 공식 문서에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은 지리나 연대기적으로 분명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기원전 1298~1235년 람세스 2세 통치 시절 피톰과 라메세스 건설을 위해 강제 노동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수천 명의 노예가 탈출한 것이 이집트 입장에서는 기록에 남길 만큼 큰 사건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탈출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 지상에 탄생시킨 획기적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제국 문서에 단 한 줄도 기재되지 않은 그의 십자가 처형은 당시 중죄인들에게 흔히 집행되던 형벌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다인의 왕으로 자처한 예수를 반역자로 처형한 것은 로마 제국사에서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 주님의 십자가 수난보다 더 중대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구세사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역사의 사실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묵상하려는 신앙 태도입니다. 역사 사건을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한 구세사의 배경을 알아야 성경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월 1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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