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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기브온 사람들의 구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22 조회수1,886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기브온 사람들의 구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리를 분별하는 혜안을 지니고 생존을 도모하면 하늘이 길을 열어준다는 걸 우리는 여호 9장의 기브온 사람들에게서 확인합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9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옛 성읍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민들과 계약을 맺으면 안 되었지만(신명 7,1-4), 기브온 사람들은 예외를 만들어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 안에 들어오는데, 낡은 신과 해진 옷을 입고 와 먼 고장 사람인 양 가장하였던 것입니다(여호 9,4-5).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 성읍은 멸하지만, 가나안 바깥의 성읍과는 화친을 시도한다(신명 20,10-17)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남루한 행색은 이스라엘에게 광야 방랑 시절을 회고하게 해주었을 테지요. 그런 식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동질감도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정말 먼 고장 사람이라면 애초에 안전 보장을 청해올 필요조차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가나안 바깥의 성읍은 화친을 제의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여호수아는 순진하다 싶을 만큼 그들의 말에 넘어갑니다. 너무 어이없이 속아 기브온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 발동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화친하려고 속임수까지 동원한 이유로 그들이 내놓은 설명이 압권입니다. 이방인답지 않게 하느님을 주님이라 칭하며 그분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이유라고 답합니다(여호 9,24).

 

죄 때문에 땅에서 물러나야 했던 가나안인들과는 다르게(창세 15,16 참조) 기브온이 구원받은 건, 한편 야곱의 아들들이 스켐 사람들에게 가한 폭력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 9,7과 11,19에서 “히위”족으로 소개되는데,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해 문제를 일으킨 스켐이 “히위”족입니다(창세 34,2). 그런데 족장 하모스의 아들인 스켐이 디나와 혼인하고 싶어 했음에도, 야곱의 아들이자 디나의 오빠인 시메온과 레위는 그 족장의 공동체 모두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릅니다(34,25-31). 이를 가만 생각해보면, 기브온의 구원이란 야곱의 후손이 히위의 후손에게 가했던 폭력을 기워 갚도록 하느님께서 이끄신 섭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여호수아기는 가나안 정복을 다루지만, 참 하느님을 알고 따르려 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숨겨 놓은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초기에 기브온 사람들처럼 경계를 넘은 이방인들이 이미 존재했음은 세상 만방으로 퍼져 나갈 주님 가르침에 대한 예고가 됩니다. 그래서 기브온 유적지에서는, 사도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 뒤,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진 야생 가지처럼(로마 11,17)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1월 22일(가해) 설(하느님의 말씀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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